05 For The Time Being | 코치-무지리스 비엔날레
이번 코치-무지리스 비엔날레의 주제인 “For The Time Being”이라는 문장을 처음 마주했을 때, 한참을 그 의미를 곱씹게 되었다. 전시 주제가 ‘당분간’이라니… 그러나 전시를 관람할수록 이 문장이 품고 있던 의미의 겹들이 하나씩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팬데믹을 거치며 우리는 미래에 대한 감각이 근본적으로 변화했음을 느끼고 있다. 한때 우리는 과학과 기술이 미래를 예측하고, 어떤 위기가 오더라도 결국 해결책을 제시해 줄 것이라는 믿음을 공유하고 있었다. 미래는 불확실할지언정 결국 통제 가능한 영역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팬데믹은 그 믿음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과학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더 이상 미래를 완전히 보장하는 마법은 아니었다. 설령 약속된 미래가 있다 해도, 그것이 모두에게 동일한 방식으로 주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 또한 분명해졌다. 이제 우리는 안다. 미래는 예측한 대로 오지 않으며, 우리가 계획할 수 있는 시간은 막연한 먼 미래가 아니라, 지금으로부터 이어지는 ‘당분간의 시간’이라는 것을.
우리의 몸 또한 그러하다. 몸은 영원하지 않으며, 우리는 유한한 시간을 살아가는 존재다. 병들고, 늙고 죽음에 이르는 것은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이 꼭 절망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취약성과 시간의 유한함을 받아들이는 순간, ‘지금’이라는 시간이 훨씬 더 선명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영원이 아니라 바로 이 순간이야말로 우리가 실제로 존재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For The Time Being”은 영원을 전제로 하지 않는 시간, 확실성을 약속하지 않는 시간, 그리고 오직 지금만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의 조건을 드러내는 말이다.
이러한 점에서 몸은 예술의 장이자, 동시에 예술을 구현하는 도구가 된다. 예술은 몸을 통해 드러나고, 몸은 예술적 실천을 통해 다시 의미화된다. 몸은 단순한 살덩어리가 아니라, 기억과 경험이 층층이 쌓이는 장소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몸의 흔적은 개인의 역사이면서 동시에 집단의 역사와 연결된다. 예술가들은 자신의 몸을 통해 공간을 점유하고, 움직이고, 머무르며, 보이지 않는 시간의 층위를 드러낸다. 몸 자체가 시간을 기록하는 하나의 살아있는 매체가 되는 셈이다.
이러한 몸의 개념은 개인을 넘어 도시로 확장된다. 몸이 기억과 시간의 층위를 품고 있듯, 도시 또한 수많은 시간의 퇴적을 품은 하나의 거대한 몸으로 이해된다. 비엔날레가 열리는 코치는 이러한 의미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장소다. 해안 항구 도시인 코치는 오랜 시간 동안 이동과 교류의 거점으로 기능해 왔으며, 식민지 침략과 해상 무역, 이주와 사회정치적 변화의 흔적을 켜켜이 품고 있다. 마치 신체에 시간의 흔적이 축적되듯, 코치 또한 역사와 기억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것이다.
아스핀월 하우스, 페퍼하우스 등 대부분의 전시 공간은 식민지 시대에 지어진 건물들로, 서로 다른 시간들이 장소 안에 겹겹이 축적되어 있음을 드러낸다. 이곳은 단순히 오래된 건축물이 아니라, 과거의 노동과 착취의 흔적이 스며든 장소이며, 과거는 완료된 사건으로 머무르지 않고 현재 속에 유령처럼 잔존한다. 이 공간을 걷는 우리의 몸은 과거의 시간과 현재의 시간이 교차하는 지점에 놓이며, 몸과 도시는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여기서 ‘디아스포라’의 감각 또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코치는 오랜 시간 동안 유대인, 아랍인, 유럽 상인들이 오갔던 해상 무역의 거점으로, 다양한 기억과 정체성이 뒤섞인 곳이다. 이곳에서 정체성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이동과 교류 속에서 끊임없이 재구성된다. 이는 우리의 신체 역시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시간과 경험 속에서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과정적 존재임을 상기시킨다. 예술가들은 자신의 몸을 통해 이러한 이동의 기억을 호출하고, 도시의 역사와 개인의 경험을 교차시키며 ‘지금, 여기’의 의미를 새롭게 드러낸다. 우리는 모두 어딘가로부터 이동해 왔으며, ‘당분간’ 이곳에 머물다 다시 이동하는 존재들이다.
이러한 점에서 “For The Time Being”은 단순히 시간의 유한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조건 자체를 드러내는 문장이 된다. 그것은 영원을 전제로 하지 않는 존재, 완성을 약속받지 못한 존재,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에 대한 인식이다. 그리고 예술은 이러한 조건을 가장 예민하게 감각하게 만드는 장이다. 이번 전시에서 예술은 영원히 남기 위해 존재하기보다, 서로 다른 시간과 신체가 지금 이 순간 만나고 교차하기 위해 존재한다.
결국 “For The Time Being”은 ‘당분간’이라는 유예된 시간 속에서도 ‘지금 이 순간’을 능동적으로 살아내자는 제안이며, 불완전함과 변화를 가능성으로 껴안고, 고정된 정체성이 아닌 흐르는 존재로서 함께 연결되자는 다독임이다.
“For The Time Being”은 조용히 질문을 건넨다.
영원을 보장할 수 없는 존재로서,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