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를 수선하는 연대의 손길

06 2025 코치-무지리스 비엔날레 작가 소개

by DAPLS 이혜령

코치-무지리스 비엔날레는 인도 최대의 현대미술 축제이자 글로벌 남반구 예술의 플랫폼이다. 서구 중심의 미술사에서 소외되었던 목소리를 전면에 세우며, 식민의 역사와 전지구적 자본주의가 남긴 질문을 현재의 우리에게 던진다. 이 비엔날레는 ‘작가가 이끄는 비엔날레’라는 독특한 구조를 통해, 예술이 생산되고 공유되는 방식 자체를 다시 사유하게 만든다.


이번 비엔날레의 예술감독 니킬 초프라는 완성된 스펙터클 대신 변화와 미완성을 포용하는 ‘살아있는 생태계’를 지향한다. 비엔날레에 초대된 작가들은 작품 제작에 앞서 코치의 전시 장소를 직접 방문해, 그 공간의 역사와 맥락에 맞게 신작을 구상한다. 이 과정에서 현지의 재료를 사용하거나 지역 장인들과 긴밀히 협업하며, 완성된 결과물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작품을 쌓아 올리는 노동과 제작의 과정 자체를 예술의 핵심으로 삼는다. 전시 공간 곳곳의 가설 구조물은 미완성과 상호의존을 시각화하며, 예술을 단단히 고정된 조형물이 아닌 함께 머무는 시간 속에서 조금씩 형성되는 관계로 전환한다.


2,000년 전 고대 무역항이었던 무지리스(Muziris)의 신화 위에 세워진 코치는 그 자체로 거대한 역사적 아카이브다. 코치라는 도시의 과거와 현재에 예술가의 시각을 투영해 새로운 가치를 공동으로 창출하는 여정과 공동체와의 연대가 바로 코치 비엔날레의 강점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낸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식민의 장소와 사물은 새로운 기억의 표면으로 다시 쓰인다. 가나 출신 이브라힘 마하마는 <유령들의 의회>에서 낡은 황마 자루와 폐기된 관공서 의자들을 사용해 탈식민 이후에도 지속되는 경제적 종속을 고발한다. 황마 자루는 글로벌 상품 사슬과 착취의 흔적이고, 버려진 의자는 실패한 제도를 상징한다. 마하마는 하층 노동의 흔적으로 권력의 공간을 덮어씌우며, 제도의 아래로부터의 ‘수선’을 제안한다. 인도네시아의 좀펫 쿠스위도난토는 <유령 발라드>에서 헌 옷을 입은 ‘신체 없는 군중’이 포르투갈 식민주의가 남긴 음악을 연주하는 장면을 통해 식민 역사에 의해 지워진 수많은 익명의 존재들을 시각화한다. 콩고 출신 산드라 무징가는 코치와 콩고의 어업 공동체를 연결하며, 포획과 이동의 역사를 하나의 거대한 조형 언어로 엮어낸다. 어망으로 가려진 이 불투명한 존재들은 타자를 함부로 규정하려는 서구적 시선에 저항하며, 관계의 윤리를 되묻는다.

이번 전시에서 주목한 키워드는 ‘추출’이다. 자본은 자원뿐 아니라 인간과 시간을 소진시키고, 그 잔해를 폐허로 남긴다. 인도 작가 니로즈 사트파티는 소비주의의 산물인 폐기물 매립지를 자본의 흔적이 축적된 기록 저장소로 바라본다. 작품 속 글로벌 공급망이 뱉어낸 바비 인형과 전자 폐기물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자본주의의 유령을 상징한다. 나이지리아 출신 오토봉 은캉가는 살아있는 정원을 조성해 채굴 이후 황폐해진 땅에 돌봄과 회복의 가능성을 심는다. 완성된 결과가 아니라 성장의 과정을 경험하게 하는 작업을 통해 현대 미술이 종종 요구하는 순간적 충격이나 시각적 완결성에 조용히 저항한다. 이 풍경들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고통을 감각하는 살아 있는 지리가 된다.


이번 비엔날레에서 신체는 구체적 경험이 축적된 역사적 기록이자, 저항이 새겨지는 표면으로 제시된다. 스리랑카 작가 라이오넬 웬트는 식민 시선이 폄하했던 ‘갈색 신체’를 욕망과 감각의 주체로 재구성하면서 식민주의와 이성애 규범에 저항하는 퀴어 모더니즘의 시선을 제시한다. 런던과 인도를 오가며 활동하는 키르타나 쿤나트는 인도 여성 보디빌더들의 근육질 신체를 통해 수동적 여성성의 고정관념을 전복한다. 이 작업은 여성의 삶에 부과된 보이지 않는 한계들을 다시 사유하도록 요청하며, 사회 전체의 인식 변화를 촉구한다.


뉴델리와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팔라비 폴은 전염병과 죽음의 흔적을 추적하며, 팬데믹이라는 집단적 트라우마를 개인의 고통으로 가두지 않고 공동체 전체의 과제로 끌어올린다. 셰바 차치와 자넷 프라이스는 고통을 신체의 일탈이나 제거해야 할 증상이 아닌 세계와 관계 맺는 ‘나침반’으로 재정의한다. 고통이라는 가장 친밀하고도 고통스러운 영역을 통해 우리가 서로에게 빚지고 있는 돌봄의 책임을 일깨워준다. 몸은 여기서 시간을 통과한 흔적이며, 동시에 지금을 감각하는 표면이 된다.

작가들은 코치의 지형을 팔레스타인과 연결하며, 인도의 현실과 전 지구적 대학살 사이의 공모 관계를 직시하게 한다. 팔레스타인 건축가 디마 스루지와 큐레이터 피에로 토마소니는 이스라엘의 ‘고고학 무기화’를 비판하며, 감시의 구조를 돌봄의 공간으로 전환한다. 인도와 팔레스타인에서 공수한 수공예 유리구슬을 매단 <피로자바드의 공기/팔레스타인의 공기>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생존의 숨결을 시각화한다.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웃사 하자리카는 뉴델리의 천문대 형태를 빌려와 그 각도를 팔레스타인의 위도인 북위 32도에 맞춰 거울로 반사시키며, 지리적으로 떨어진 공간을 하나의 시선으로 연결한다. 하자리카는 과학적 측정 도구를 정치적 도구로 전환함으로써, 우리에게 지평선 너머의 고통에 응답하고 보이지 않는 이들의 이름을 기억할 것을 촉구한다. 고립된 비극은 우리가 함께 감당해야 할 동시대의 문제로 확장된다.


이번 비엔날레는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를 멈춰 세워, 폐허 위에서 무엇이 사라졌고 무엇이 남아 있는지 묻게 한다. 여기서 예술은 거대한 선언이 아니라 작은 감각의 회복에 가깝다. 작가가 공간과 역사 속으로 뛰어들고, 지역 공동체와 노동의 과정을 공유하며, 도시와 함께 변모해 가는 이 비엔날레는 서로 다른 고통과 저항을 하나의 직물처럼 엮어낸다.


그 직물은 영원을 약속하지 않는다. 다만, ‘당분간’ 우리가 함께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의 감각을 건넬 뿐이다. 세계는 완성되지 않았지만,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서로를 감각할 수 있다.

어쩌면 그것이 이 비엔날레가 우리에게 남기는 가장 깊은 질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