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인도로 향하는 길
인도 벵갈루루 국제공항에서 2026년 1월 19일 한국인 여성 여행자가 공항 직원에게 성추행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우리가 인도로 향하기 불과 며칠 전의 일이었다. 경유지인 싱가포르 공항에서 현지 뉴스를 통해 이 소식을 접했을 때, 사건은 더 이상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었다. 곧 우리가 통과해야 할 공간에서 벌어진 일이었기 때문이다.
사건의 경위는 이랬다. 출국 게이트로 이동 중 공항 직원이 위탁 수하물에서 경고음이 발생했다며 접근해 항공권 확인을 요구했다. 일반 보안 검색대로 돌아가면 탑승이 지연될 수 있다며 별도 검색을 진행하겠다고 안내했고, 그 과정에서 보안 절차를 명목으로 피해자에게 부적절한 신체 접촉, 성추행을 했다. 피해자는 상황에서 벗어난 뒤 즉시 보안 요원에게 신고했고, 공항 측은 CCTV를 통해 해당 직원을 확인해 체포했다.
사건 이후 그 여성이 보여준 행동이 인상적이었다. 그녀는 폭력이 발생한 공간에서 조용히 물러나는 대신 실명과 얼굴을 공개한 채 언론 인터뷰에 응했다. 단순히 피해를 호소한 것이 아니라, 공적 장에서 위험을 감수하고 직접 목소리를 낸 것이다. 그 증언은 제도적 허점을 드러냈고 결과적으로 이후 그 공간을 통과하는 다른 여행자들의 안전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실제로 사건 발생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 같은 공항을 이용했던 우리 역시, 어떤 식으로든 그 개입의 영향 위에 그 공항을 통과한 셈이다.
인도 뉴스를 접하고 바로 국내 보도를 찾아보았다. 국내 보도는 이러한 사회적 의미보다는 ‘인도에서 한국 여성 성추행’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감정적 반응을 유도하는 피해 사실 자체를 중심으로 전달되었다. 결과적으로 인도를 성폭력이 빈발하는 공간이라는 프레임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소비되었고, 피해자는 불의를 맞서 목소리를 낸 주체가 아닌 ‘피해당한 신체’로 축소되었다.
인도 사회 내부에서는 사건이 또 다른 방식으로 흘러갔다. 가해자의 신원이 공개되자 그가 무슬림이라는 사실이 부각되었고, 일부 온라인 공간에서는 사건의 초점이 가해자의 종교적 정체성으로 옮겨갔다. 개별 범죄가 종교적 혐오 담론 속으로 흡수된 것이다. 이는 인도-파키스탄 분할 이후 이어져 온 반무슬림 정서 속에서 종교적 타자는 반복적으로 위험의 표상으로 소환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이 사건이 보여주는 건 ‘무엇이 일어났는가’ 혹은 ‘피해자/가해자가 누구인가’만이 아니다. 같은 사건이 어디서 누구의 언어로 말해지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한국에서는 여행 위험 정보로, 인도에서는 종교 갈등의 소재로. 사건의 의미는 사건 그 자체보다 그것이 어떻게 전달되고 해석되는 과정 속에서 만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