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 알라민
방글라데시에 도착하고 임지로 파견하기 전 두 달여간 수도에서 머물렀다. 출국 전 한국에서 현지어를 배우긴 했지만, 바로 업무를 진행하기에는 어려웠다. 두 달여간 강도 높은 현지어 수업을 병행하며 현지어를 공부하면서 방글라데시를 알아가고 적응하기 위한 기간이었다. 적응을 위해 마련된 기간에도 좀처럼 나는 적응을 하기가 어려웠다. 더위에 쥐약이었던 나는 찌는 듯한 더위와 함께 심한 물갈이까지 겹쳐 심하게 앓고 있는 시간이 길었기 때문이었다. 상상을 초월하는 더위와 무엇보다 견디기 힘들었던 꿉꿉하고 끈적끈적한 습한 날씨는 최악이었다. 매일매일 사우나에 종일 들어가 있는 느낌이었고 쉬어도 충전이 되는 느낌이 없었다. 무엇보다 축축한 침대에 누워 쉬는 게 최악이었다. (그나마 전기가 있으면 에어컨이자 팬을 돌릴 수 있었지만, 정전이 잦았다. 정전이 되면 침대는 습기 때문에 바로 축축해졌다.) 매일 방전 직전의 상태로 '2년 동안 잘 지낼 수 있을까'라는 의문과 불안감으로 아슬아슬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하루는 안 가던 길로 돌아 숙소로 가다가 알라민을 처음 만났다. 알라민은 숙소 근처 커다란 모스짓(이슬람 사원) 옆 거리의 재봉사의 아들이었다. 6개월 정도 된 남자아이였는데, 나를 봐도 울지도 않고 가끔씩 찡긋하며 웃어주기도 했다. 이제야 옹알이를 시작하는 알라민에겐 어설픈 내 방글라로 얘기를 해도 상관없었고 그냥 웃기만 해도 따라서 웃어줬다. 이후로 알라민을 보기 위해 숙소까지 조금 돌아가더라도 매일 그곳을 찾았다. 몸은 여전히 힘들었지만, 속앓이로까지 번지지 않고 그곳에서 잘 적응할 수 있게 했던 것은 바로 알라민을 만났기 때문이었다.
훈련기간이 끝나고 지방에 있는 임지로 파견된 이후에도 다카에 볼 일이 있을 때마다 일부러 알라민을 찾아갔다. 내가 그 커다란 골목길에 들어서기만 해도 그 길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알라민 친구가 왔다'며 나를 아는 체하고 반가워했다. 임지에서 정착이 되고 본격적인 수업이 시작되자 수도로 내려가는 일도 뜸해지며 알라민을 못 본 지도 수개월이 넘어갔다. 오랜만에 수도에 내려온 어느 날 오랜만에 알라민을 보러 가야지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동기 중 한 명이 내가 알라민을 보러 가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
수도 거리의 재봉사로 일하는 엄마를 따라 나와 거리에서 자란 알라민이 많이 크긴 했지만, 거리의 형들을 따라 구걸을 하고 있는 모습을 봤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고민하다 알라민을 만나러 가지 않았다. 그 이후로도 수도에 내려올 때마다 고민을 했지만, 거리에서 구걸하고 있는 알라민을 볼 자신이 없어 매번 포기하고 말았다. 결국 2년간의 방글라데시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마지막까지도, 귀국 1년 후 다시 방글라데시를 찾았을 때도 용기가 나지 않아 얼굴을 못 보고 돌아왔다.
그리고 작년 다시 방글라데시를 찾았을 때, 알라민을 만나러 가기로 결심을 했다. 사실 결심이라고 할 만큼 큰 마음의 준비를 한 것도 아니었다. 릭샤를 타고 지나가며 먼저 살펴보려 했지만, 근처에 내려 걸어가기로 했다. 거리에는 전 보다 재봉사들이 더 늘어난 것 같기도 했다. 거리의 수많은 재봉사 중 알라민의 엄마, 아뿌(여자에게 칭하는 호칭)와 나는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동시에 서로를 알아봤다. 아뿌에게 인사를 하자 거리의 많은 사람들도 그제야 나를 알아보고 알라민 친구가 왔다며 아는 체를 했다. 알라민은 없었다. 사람들은 집에 있는 알라민을 빨리 부르라고 길거리가 난리가 났다.
아뿌가 시간이 괜찮냐고 물어봤다. 다른 재봉사 아저씨들과 상인들이 한 시간만 기다려 달라고 하더니, 금세 시간은 10분으로 줄어들었다. 기다릴 수 있다고 하자, 아뿌는 바로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알라민을 기다리는 동안 아뿌가 짜(차)를 권했다. '괜찮다. 그럼 내가 사겠다.'라고 말했지만, 아뿌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전에는 어리고 여리기만 해 보였는데 아뿌는 강인하고 멋진 어머니가 되어 있었다.
내가 들었던 말을 전하지 않았지만, 오해였음을 알 수 있었다. 알라민은 아주 잘 자라 있었다. 함부로 오해하고 실망한 지난날을 생각하니 미안하면서도 한 편으로 너무나 고마웠다.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너무 좋은 방글라데시 사람들. 그래서 누가 뭐래도 내겐 사람이 제일인 방글라데시다.
반갑게 맞아준 아뿌와 사람들 그리고 알라민.
"세상 그 어떤 짜보다 설레고 감동적이었던 짜. 당신들과의 재회와 그 달콤했던 짜 한 잔이 제게 얼마나 감동이었는지 모르실 거예요. 모두 고마워요. 다시 올게요."
-2015년 9월 세 번째 방글라데시 방문 중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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