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독서노트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APLS 이혜령 Oct 05. 2016

완벽한 아이, 믿음의 배신

책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를 읽고

아이들을 만나는 일을 하면서 아이들의 인성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고민하기 이전에 무엇보다 더 시급한 것은 공동체 회복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많이 해오고 있었다. 교육을 통해 인성을 학습하는 것보다는 삶 속에서 기다림과 상생을 배우는 것이 누군가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데 더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은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삶 속에서 그런 배움을 찾기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1999년 4월 20일, 에릭 해리스와 딜런 클리볼드는 총과 폭탄으로 무장하고 콜럼바인고등학교에 갔다. 두 사람은 학생 열두 명과 교사 한 명을 살해하고 스물네 명에게 부상을 입힌 다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역사상 최악의 학교 총기 난사 사건이었다.
  딜런 클리볼드는 내 아들이다.


ⓒ  반비 공식 블로그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는 콜럼바인 총기 참사의 가해자 중 한 명인 딜런의 어머니가 쓴 책이다. 콜럼바인 총기 난사 참사는 위험요소라는 전혀 없을 것 같은 지역의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학생들에 의해 저질러진 범행이었다는 점에서 미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리고 이미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이후에도 버지니아공대와 샌디훅초등학교 총격 사건 등 이 사건을 모방한 사건들이 발생할 때마다 계속해서 회자되고 있다. 콜럼바인 총기 참사에 의한 상처는 아직도 미국 사회에 깊게 남아 있다.


햇살이라고 불린 착한 아들이 저지른 일


이런 엄청난 참사의 피해자 가족도 아닌 가해자 가족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불편한 일이다. 나는 이 엄청난 참사를 일으킨 가해자를 이해하고 싶지 않았고 딜런의 어머니 기록이 누군가에겐 폭력일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그의 아이를 위한 변명이나 책임회피용 핑계는 귀 담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아주 조심스럽게 책을 읽기 시작했다. 겨우 몇 장을 넘겼을 뿐인데 읽기 전부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읽을수록 답답해지고 불편하고 불안해지는 힘든 책이었다.


단순 사이코패스들의 소행이라고 하기엔 사건은 단순하지 않았다. 그리고 총기라는 점만 제외한다면 한국에서도 만연하게 일어나고 있는 내가 속한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문제와도 같다고 생각했다. 입시경쟁으로 내몰린 아이들, 왕따, 학교폭력, 묻지마 범죄, 혐오범죄, 분노 범죄, 무차별 테러, 모방범죄, IS로 간 김군, 교내 칼부림 사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모습을 보여주는 거울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이미 우리 곁을 떠난 사람에게는 너무 늦었을지라도 다른 사람을 구하기에는 너무 늦지 않았다는 것.'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무엇보다 놀랐던 것은 딜런의 가족들에게 손을 내밀어준 사람들이었다. 그중엔 심지어 희생자의 가족도 있었다. 만약 내가 그 사회에 속한 일원이었다면, 그의 친구들처럼 사건 후에도 그의 가족들에게 호의를 베풀 수 있었을까?


나라면 그렇게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사실 딜런의 가족들 역시 많이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피해자들을 생각한다면 마땅히 그들이 감수해야 할 고통인 것 같았고, 그들을 위로하고 돕는다는 것 자체가 도덕적으로 잘못된 일이라는 생각도 들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 입장에서 보면 그 공동체가 보여준 호의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이러한 성숙한 공동체가 있었기 때문에 수는 그 고통 속에서도 견딜 수 있었고, 다시 사람을 살리는 일을 시작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부모가 어떻게 모를 수 있어?"


책을 읽기 전에는 '믿는다'는 말속 무책임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부모와 자녀 간의 믿음은 완벽한 육아의 결과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낳고 키운 아이를 전부 이해할 수 있다는 확신, 내 아이에 대한 믿음은 엄청난 착각이었다. '내 아이는 내가 잘 알아'라는 잘못된 믿음과 ‘아이들은 다 그래.’라는 일반화의 오류로 인한 착각이 (지극히 정상적인 일들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이상 징후 투성이인 현실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아이들과 만나다 보면 아이들은 모두 순진하다는 생각이 얼마나 큰 착각인지 깨닫게 된다. '내 아이는 내가 잘 알아'라는 자만과 착각에 빠져 있을수록 아이들은 아주 교묘하고도 완벽하게 자신의 부모를 속일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아이들은 자신을 알아 달라고 많은 신호를 보내기도 한다. 책에서도 나오듯이 딜런은 주위에 계속해서 도와달라는 신호를 보내지만, 불행히도 엄청난 재앙으로 돌아오기까지 아무도 그 신호를 알아채는 사람은 없었다. 우리는 무감각했고 무지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너무나 끔찍했다. 수는 '내가 만약 그때~'라며 계속해서 후회하고 순간순간을 되돌리고 싶어 한다. 어떤 노력을 한다고 하더라도 죽은 사람들은 돌아올 수가 없다. 이미 되돌릴 수 없다.


'다르게 키운다는 것은 무엇일까?', '완벽한 아이?', '완벽한 육아와 교육을 위한 병적인 노력들은 무엇이며, 누구를 위한 것일까?' 등 이러한 물음들이 스스로 끝없이 던지며 책 읽기를 이어갔다. 우리는 항상 답을 얻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러한 노력들이 가장 위험할 수도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고 이 책을 읽었지만, 오히려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더 혼란스러워졌다. 이 책은 내가 원하는 답을 주지 않았고 오히려 불안감만 가중이 되었다. 처음 "왜 알지 못했지"라는 의문에서 '그래서 어떻게 해야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이 더해졌다.


'왜'라는 질문을 넘어 '어떻게'라는 질문을 해야 할 때이다. 아이들이 가해자가 되어 또 다른 아이들이 피해자가 되는 사건에서 그 어떤 것도 당연시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그 엄청난 참사로 많은 사람들이 타인에 의해 목숨을 잃었고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많은 논란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 가운데 자살로 죽은 두 소년이 있었다.


아이들은 병들었다. 하지만 그 책임은 아이가 아니라 부모에게 혹은 학교에게 더 나아가 우리 사회에 있다. 병든 아이는 우리 사회의 거울일 수도 있다.


“자살과 살인 사이에 종이 한 장 차이밖에 없을 때가 있습니다.
자살하는 사람 대부분은 살인과 무관하지만,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은 자살 성향 때문에 그럴 때가 많습니다.”

- 마리사 란다조 박사


이 책에서는 엄청난 재난에 대응하는 미디어의 역할과 사건에 대한 민감성, 파급 효과, 트라우마 등을 고려한 보도가 이루어져야 된다고 지적한다. 또한 무기소지로 인한 사회적 비용을 인식하고 안전한 사회를 위한 법안 문제에 이르는 사회적 시스템에 대한 문제까지 이야기한다. 엄청난 재난 앞에서 마치 누가 얼마나 빨리 정보를 수집하는 게임을 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빠르게 그 원인을 알고 싶어 하고 지나치게 원인을 단순화하려는 오류를 범한다.


우리는 책을 다 읽고서도 햇살이라고 불린 착한 아들이 저지른 일을 이해할 수가 없다. 하지만 이 참사가 하나의 원인으로 일어난 단순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수는 (지금 생각해보니) 바로 잡지 못 했던 문제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딜런에게 어떠 어떠한 것을 가르치지 않았다는 것에 가장 큰 후회를 느끼고 있다고 말한다. 모든 부모가 아이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모두 가르친다는 것은 난센스다. 내 아이를 잘 안다는 말처럼 위험한 것일 수도 있지만, 참사의 슬픔과 자책감으로 인한 후회의 표현일 것이다.


또 수는 딜런의 일기장을 뒤지고 미리 알아차리지 못한 것에 대해 계속해서 자책한다. 참사 예방을 위해, 내 아이의 상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아이들의 일기 감시하기를 독려하는 것만 같아 불편해진다. 책을 읽으면 나의 학창 시절의 기억을 여러 차례 소환했어야 했는데, 만약에 내 일기장이 감시되고 있다고 생각하니 끔찍했다. 이걸 보고 모든 학부모들이 아이들의 일기장을 뒤지거나 아이들의 SNS를 감시하지는 않겠지만, 불안감 많고 초조한 부모들은 이 조언을 따라 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됐다.


이 책은 정말 놀라울 정도로 많은 통찰력을 담고 있지만, 부모 없는 아이들이나 학대로 인해 방치된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가 간과된 점이 아쉬웠다. 학대로 방치된 많은 아이들은 '안전 사각지대'에 놓여 있고 무책임한 제도 밖에서 또 한 번 소외되고 있다. 가정에서는 부모와 가족뿐 아니라 학교의 선생님, 아이가 속한 지역사회에도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제도와 문화가 만들어져야 된다.


사실 부모들에게는 '내가 낳은 아이가 전혀 다른 타인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된다'는 점과 '내 아이의 교육이 온전히 나의 노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 책이 부모들에게는 가혹한 책이라고 생각된다. 때문에 나는 이 책을 부모보다는 아이들에게 도움을 손길을 전할 수 있는 모든 어른들에게 권하고 싶다.


아이들이 쉽게 상처받고 주위 환경이나 사람, 모든 것에 영향을 받는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거울이라는 말은 정말 맞다. 그래서 내 아이가 아니더라도 아이가 없더라도 사회 속에 속한 어른으로서의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의 속담처럼, 아이는 부모에 의해서만 키워지지 않는다. 아이들은 부모뿐 아니라, 또래 친구들이나 학교 혹은 자신들이 속한 사회 속에서 끊임없이 영향을 받으면서 자란다. 내 아이가 혹은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행복해지는 방법밖에 없다. 혼자만의 행복이 아니라 모두가 행복한 사회를 위해 우리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


또한 우리는 세월호를 경험하며 내 아이만의 안전이라는 것은 없다는 것도 알게 됐다. 세월호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면, 이러한 참사는 반복될 것이다.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해 우리의 서로의 아픔을 안아야 한다. 세상이 모든 이에게 안전한 곳이 될 수 있다면, 내 아이도 안전하게 자랄 수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