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떠밀려 시작한 공시생
'경제 불황이다', '코로나다' 갈수록 밥벌이를 할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날 기회가 줄어드는 요즘,
신문기사에 따르면 약 86만여명의 취준생 중 3분의 1이 '공시생'이라고 한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각자 여러가지 이유로 공무원이라는 꿈을 향해 달려가지만 사실 공무원을 준비하는 사람들 중에 적성을 1순위로 고려해서 공무원을 준비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다. 보통은 안정성이나 연금 등등 때문이지.
나도 그 중 '하나'였다. 적성은 개한테나 줘버리라고, 그런 것들은 전혀 하나도 고려하지 않은 채 최대한 빨리 밥벌이 할 수 있는 길을 찾아 공시의 길로 뛰어든 사람 말이다. '공무원? 무슨 일을 하지? 그냥 주민센터 가면 일하는 사람들?' 정도 수준의 인식을 가진 나는 공무원이 하는 일에 대한 정보는 얻기 힘들다는 핑계를 핑계(?)삼아 공무원이 무슨 일을 하는지 정확히 알아보지도 않은 채 시험에 덜컥 뛰어들었더랬다.
물론 밥벌이 하는 어른이 되어 보겠다고 매년 수백 개의 자소서를 쓰고서도 겨우 2, 3개 정도의 서류 합격을 이뤄낸다거나 이마저도 매번 면접시험에서 고배를 마시는 것에 치가 떨리기도 했다. 게다가 취업준비에 1년, 2년의 시간을 허비하며 사기업에서 뒤돌아보지도 않을 나이가 되어가는 것에 겁이 나 사기업 취준에서 공무원 시험으로 허겁지겁 눈을 돌린 것이 가장 주된 이유였지만 말이다.
그리고 시작됐다. 험난한 시험 준비의 길이.
나는 내 수능 성적과 소위 말하는 좋은 대학 진학의 경험을 가지고 호기롭게 "금방 합격하겠지."라고 생각하며 시험을 준비했다. 인터넷 강의 사이트 메인에 떡 하니 걸린 초단기 6개월 합격자의 자신감 넘치는 사진과 합격 수기를 보며 나도 그렇게 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시험 합격까지는 2년이 걸렸다. 처음 3개월은 정말 열심히 인강만 들었다. 1과목의 내용을 1번 훑어보는 데 그렇게 걸렸다. 총 5과목을 그렇게 공부했다. 그리고 나는 나가떨어졌다. 하루종일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것이 너무나도 지겨웠다. 아침 8시에 일어나자마자 밥을 먹고 책상 앞에 앉아 평생 써볼 것 같지도 않은 영단어들을 밑 빠진 독에 물붓기하듯 열심히 외웠고, 점심을 먹고서는 당일에 들은 인강 내용을 역시나 밑 빠진 독에 물붓기하듯 복습했다. 그리고 저녁을 먹고는 시험 문제를 풀었다. 그리고 잠들고 다시 일어나서 똑같은 일을 반복했다. 처음의 자신감과 패기, 열정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점차 스마트폰을 붙잡고 있는 시간이 길어졌고, 책상 앞이 아닌 침대에 누워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그 시간은 너무나도 늘어나서 1주, 2주 혹은 한달 넘게 공부를 하는 시간이 0에 수렴했다.
이렇게 무늬만 수험생으로 허송세월한 시간이 2년이었다. 시험은 '얼떨결'에 합격했다. 운이 크게 작용했다고 밖에는 볼 수 없었다. 나는 시험을 준비하면서 '초단기=6개월'이라는 시간도 제대로 집중해서 공부하지 못할 만큼 (소위 말해) '시험형 인간'이 아님을 톡톡히 느꼈다. 그러니 이번에도 어김없이 '시험을 보다'라는 말을 시험지를 열심히 보고 왔다는 말로 치환할 수 있을 만한, 그런 고만고만한 실력으로 시험을 보고 나왔다고 생각했다.
시험장을 나오면서 "아, 오늘도 망했네. 집에다 뭐라고 얘기하지?"라는 생각이었다. 그래도 결과는 알아야겠는지라 이틀 뒤, 컴퓨터 앞에서 시험지와 답안지를 비교해보며 빨간색 색연필로 열심히 동그라미와 작대기를 그려대기 시작했다. 그동안 공부했던 기억을 더듬거려봤을 때 양심에 찔릴 정도로 괜찮은 점수가 나왔다. 너무 놀라서 1시간, 2시간을 컴퓨터 앞에서 가만히 앉아있었다.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몰라 부모님께 바로 얘기하지도 못했다. 말했다가는 떨어질까봐. 실제 점수는 이렇지 않을 것이라고 불안해했다.
물론 그 불안은 정말로 쓸데없는 것이라 합격자 발표날 나는 무난하게 합격이라는 글씨가 쓰인 컴퓨터 창을 소위 영접(?)할 수 있었고, 공직 생활에 발을 들일 수 있게 되었다.
머리 속에 꽃밭을 심어놓고는 하하호호 걱정거리 하나도 없이 꿈과 같은 발령일을 기다리는 가련한 어린양에게, 그리고 '공무원'이라는 타이틀 하나만 보고 들어온 아무것도 모르는 어른이에게 어떠한 길이 펼쳐질지 모르는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