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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십 년 가까이 된 것 같다. 들리는 카페마다 '슬리브'를 챙겨 온 것이 말이다. 광고홍보를 전공하는 대학생으로서 마케팅, 브랜딩에 대한 관심이 아주 아주 높았을 때, 문득 '슬리브'가 그냥 뜨거운 컵을 감싸는 도구로만 보이지 않았다. 각 카페의 아이덴티티를 드러낼 수 있는 좋은 마케팅 도구로 보였더랬다. 한 번 쓰고 버려질 수도 있지만(버려지는 게 대부분이겠지만) 카페 주인장 혹은 대형 프랜차이즈의 마케팅팀(?)이 '신경 좀 썼다'는 느낌이 드는 슬리브를 만나게 될 때면 그 감동이 꽤 컸다. 역시 악마는 디테일에 있군 하면서 '레퍼런스' 삼아 슬리브를 모으기 시작했다.
다른 목적도 있었다. 멀쩡한데 한 번 쓰고 버려지는 슬리브들의 운명을 재조명해볼 수 있는 꽤나 거창한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은 욕심도 있었고, 지금껏 내가 다녀온 국내외 카페들의 슬리브 아카이브를 만들어 보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슬리브 수집'이라고 취미란에 쓰기에 그럴싸한 거리를 갖고 싶기도 했다.
그렇게 모으고 모은 슬리브가 운동화 박스 두 개를 가득 채우고 넘쳤을 때, 비로소 나는 '수집은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깨달았다. 프랜차이즈 것이 아닌 슬리브는 어느 카페인지 기억도 나지 않고, 어떤 슬리브는 왜 모았는지도 모르겠을뿐더러, 고백하건대 언젠가는 슬리브 개수를 채우고 싶은 욕심에 누가 버린 컵에서 슬리브를 빼오기도 했다. 그 슬리브가 어느 것인지는 여전히 모르겠고 말이다. 그리고 언젠가부터는 그냥 슬리브를 챙기는 게 당연해서 챙기게 되었다. 취미를 만들고 싶었는데, 습관만 만들어버리고 만 것이다.
운동화 박스 안에는 열정이고 추억이고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몇 백 장의 종이딱지만 가득했다. 이 무의미한 집착을 이제 내려놓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슬리브 모으던 박스가 늘 있던 자리에 없는 것은 생각보다 마음을 후련하게 만들었다. 여전히 처음 가는 카페에 가면 손이 움찔움찔 하긴 하지만 말이다. 습관이란 게 무서운 거라고 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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