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고 싶은 만큼 마음껏 골라.“
나는 당당하게 말했고, 동생은 분주하게 움직였다.
내가 자신만만하게 재력을 과시(?)할 수 있는 곳.
아할.
아이스크림 할인점이다.
더운 여름에 입이 심심할 땐 아이스크림 만한 게 없다. 주말 내내 방콕하고 있다가, 콧바람이라도 쐴 요량으로 “아이스크림 사러 갈래?” 하고 동생에게 물었다.
“난 장바구니만 챙기면 되나?”
“벼룩의 간을 빼먹는구나.”
나보다 여섯 살 어린 동생은, 눈치는 백 단에 능청과 뻔뻔함이 풀옵션으로 탑재되어 있다.
혹시 내가 갑자기 가기 싫어졌다고 변덕을 부릴까 봐, 잽싸게 모자를 뒤집어쓰고 장바구니를 챙긴다.
그래, 아이스크림은 얼마든지 살 수 있지.
우리 가족은 각자 취향이 달라서, 모든 종류의 아이스크림을 다 사야 한다. 월드콘, 브라보콘, 빵빠레, 국화빵, 찰옥수수, 돼지바, 엔초, 메로나, 싱귤탱귤…
다행인 것은 바구니 터지게 담아도 저렴하기 때문에, 우리 집 서빙고를 채우기엔 무리가 없다. 한번 사면 몇 주는 먹는다.
“티코도 저당 초코 나왔네?”
고가 프리미엄 칸에 있는 박스형 아이스크림 사이에서 신제품을 봤다.
“응, 그거 되게 맛있대.”
“… 뭐 이것도 사자고?”
“응.”
“아 담든가 그럼.”
얘가 말하는 것만 들어도 서브텍스트를 알 수 있다. 그러면 동생은 신나서 냉동고 문을 연다. 하는 것만 보면 유치한데 업계 4년 차 직장인이다.
난생처음 제육볶음을 먹은 날 동생이 태어났다. 얼굴이 새빨갛고 쭈글쭈글하던 모습이 생생하다.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을 다니면서 여러 번 카카오톡 친구목록을 정리했지만 지금, 나랑 가장 친한 ‘베프’를 꼽자면 바로 내 동생이다.
동생이 베프가 되면 아주 좋은 점이 몇 가지 있다.
- 아무 때나 연락해도 됨(단, 반드시 받는 것은 아님)
- 내 자랑 마음껏 해도 됨
- 내 고민, 문제 다 얘기할 수 있음
- 얻어먹는 데 눈치 안보임(단, 나도 사주게 됨)
저걸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가족이기 때문에 이물 없이 편한 것이 장점이겠다.
나랑 성향은 전혀 다르지만, 조금 나잇값 못하고 유치하고 감정적인 나에게 때로는 진심 어린 말도 해준다.
언니, 직장 구하는 거 오래 걸릴 수도 있어. 마라톤이라고 생각하고 멘탈부터 잡아야 돼.
이런 의연하고 어른스러운 말을 할 때마다 내가 너무 철딱서니가 없는 게 아닌지 나를 돌아보기도 한다.
“나 허쉬(아할에서 제일 비싼 거)도 담아도 돼?“
내 눈치를 보는 척하며 이미 바구니에 주섬주섬 담고 있는 모습을 보면 또 그런 생각이 안 들기도 한다.
언니 노릇을 아이스크림으로만 하는구나, 내가!
하루빨리 조금 더 큰 재력을 과시하는 날이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