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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성이 Oct 22. 2023

<책리뷰>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 양귀자


영화 속 문학 읽기 한국문학 모임에서 읽을 책을 도서관에서 검색하면서 첫 번째 순서에서 보여야 할 책이 없어서 몹시 당황했다. 이 책이 없을 리가, 대출 중이라면 대출 중이라고 보일 텐데... 허겁지겁 양귀자로 검색했더니 바로 찾을 수 있었다. 이 소동의 원인은 내가 자판에 친 제목이 [나는 금지한다...]였기 때문이었다.


어처구니없는 허당 짓에  마음이 멈칫! 그동안 소망하는 삶보다 금지당하는 삶을 강요받아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빠졌다는 말이 더 정확하다. "하면 안 된다. 그러면 안 된다. 하지 마라, 가지 마라"가 차라리 더 익숙한 편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이 책이 처음 나왔던 92년도나 3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꾸준히 읽히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제목이 주는 강렬한 메시지가 첫 번째 이유가 아닐까 싶다. 우리는 모두 하고 싶은 것보다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먼저 깨달아야 하는 나약한 인간이기 때문에.


자유와 사랑을 노래한 프랑스 시인 폴 엘뤼아르의 시 제목 [커브]의 전문을 제목으로 썼다. 30년 만에 다시 읽게 되었을 때 [커브]라는 제목에 마음이 사로잡혔다. 인생이라는 길에서 커브를 만나게 되면 지금까지와의 길의 방향은 분명히 바뀌게 되므로.



이번에 세계대전 중 세계적인 저항 시인으로도 활동하던 시인은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도 썼지만, 치열하고 투쟁적인 실천 시도 썼다. 자유에 대한 생각을 문학으로 실천한 셈이다. 이 작품의 제목으로 더없이 어울린다.


그리고 그 말 한마디의 힘으로
나는 다시 인생을 시작한다
나는 태어났다 너를 알기 위해
너의 이름을 부르기 위해
자유여!

엘뤼아르의 [자유] 마지막 연
영국 공군은 이 시를 비밀리에 인쇄하여 프랑스 전역에 뿌려 프랑스인들을 위로했다고 한다


90년 대 초 우리 사회는 그동안의 여성에 대한 억압과 차별과 폭력에 숨죽였던 이전 사회의 굴레에서 큰 커브를 돌게 되는 시기였다.


여권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태동하던 시기였다. 당시 사회 뉴스 중  2가지 사건이 지금도 또렷이 기억난다. 바로 91년 김부남 사건과 92년 충주 김보은· 김진관 사건이다. 김부남 사건은 30세의 김부남이 55세의 남자를 살해한 사건으로 그는 9살의 김부남을 성폭행한 이웃집 남자였다. 김보은 사건은  9세부터 12년 동안 계속된 계부의 성폭행을 알게 된 남자친구와 함께 계부를 살해한 사건이었다. 심지어 계부는 지방검찰청 총무과장이었다. 김보은 사건은 구명 활동으로 이어졌고, 정당방위 무죄를 주장하는 무료 변호인단이 꾸려지는 등 그동안 금기시되었던 가정 내 성폭력 피해의 실상이 정식으로 공론화되었던 사건이었다. 이후 이 사건들이 성폭력 특별법이 제정되는 계기가 되었다.(당시 나와 같은 또래였던 김보은, 김진관의 사연이 안타까워 모금운동에 참여하기도 했었다)



초판본 표지

이 시기에 나온 양귀자 소설은 가히 폭발적인 신드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사건을 먼저 접한 후 소설을 읽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사건을 접한 후 솟구쳐 오르는 분노로 가득했었는데 남성 납치라는 소재만으로도 통쾌감을 느꼈었다. 92년도에 37살이던 작가가 쓴 시대를 앞서간 작품임에는 분명하다.


남동생을 셋을 둔 장녀로서 살아왔지만 가정 내에서는 남녀 차별을 전혀 경험하지 못했지만, 사회에서, 결혼 이후 남녀 차별을 더 많이 겪었다. 이미 결혼 전에 이 소설을 먼저 읽었지만, 몸소 겪은 가부장적인 시가 분위기에서 나는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며느리이자, 여자였다. 그 가부장이라는 세계는 너무나 촘촘하고 거대한 그물의 모습으로 나를 휘감아 버렸다. 그 부당함에 밤잠을 설치고, 억울함에 눈물 흘렸던 밤이 많았다.  그 짙은  밤에 홀로 깨어있을 때 나는 소설 속 내담자와 다르지 않았다. 부당한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맴돌면서 어디 넋두리라도 맘껏 하고 싶었던 나약한 밤들이었다. 세월이 흘러, 이제 며느리라는 역할은 완전히 끝이 났지만, 그 나약한 밤들은 아직도 가끔 나를 찾아오기도 한다.


내 삶의 커브를 몇 번 돌고 난 이후 예전 읽었던 소설을 다시 읽는 기분은 뭐랄까? 친구들 만난 기분이기도 하고, 오래전 일기장을 보는 듯한 기분이기도 하다.



- 소설의 줄거리 -


어린 시절 계부의 가정폭력의 상처가 있는 27살의 강민주가 인기 가도를 달리는 남자배우인 백승하를 납치하여 감금, 사육함으로써 여성 억압적인 세상에 정면으로 돌진하는 이야기이다.

여성을 존중하지 않는 남성에 대한 경멸과 경고, 그런 세상을 방관하고,

동조하는 언론에 대한 불편함,

남자라는 울타리에 안주하려는 여성들에 대한 일침으로

다소 거칠고 폭력적인 언행으로 시대에 이슈를 제기했지만,

주인공들의 예기치 못한 감정 변화로 인해 작전에 실패하고 심복이었던 황남기에 의해 죽고 만다.


2023년 오늘의 시선으로 읽기에는 여러모로 불편한 구석이 없지 않다. 특히 폭력적인 방식으로 맞대응하는 것이 정당성을 얻기 어렵지만, 소설의 현실 반영이라는 역할로 보면 마냥 나무랄 수는 없다. 페미니즘이 자리 잡은 요즘, 젠더 갈등을 일으킬 만한 언행을 삼가는 추세이지만, 그 뒤에 가려지고 숨겨진 그늘 속에서 고통받고 억압받는 현실에서의 폭력성은 아직도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점은 믿고 싶지 않지만 하루가 멀다 하고 기사에 오르내린다. 어쩌면 더욱 잔혹하고 참혹한 모습으로.


챕터가 시작될 때마다 나오는 강민주의  노트 부분과 강민주가 신문사에 보낸 글(224~230) 이 작가가 시대에 보내는 메시지였다. 낮은 포복을 혐오하고 높이 기립해서 사는 여자, 물살을 거스르며 하류에서 강의 상류로 나아가는 여자, 그런 주인공이 필요했다. 현실에는 없지만 소설에서는, 소설이므로 강민주 정도는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다.(357쪽 작가의 말)


소설에서 강민주와 백승하의 소통은 연극 연습을 통해서였고, 마지막은 연극 공연 장면이었다. 작가의 의도가 숨어 있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외젠느 이오네스크의 [수업]이라는 작품이었는데 이오네스크는 "인간 언어의 부조리함"에 집착한 작가로 알려져 있다. 소설에 인용된 [수업] 은 교수가 자신의 교육방침을 강요하면서 학생을 폭력적으로 몰아세우다 결국 살해하게 되는 내용이다. 작가의 글 속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 누구도 어떤 다른 사람을 지도할 수 없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방식대로 살뿐이다. 선각자는 있어도 지도자는 없는 것이다. 자신을 내던져 새로운 것을 깨우치는 일은 존중받을 수 있으나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은 채 남을 지도하려 드는 일은 조롱받아 마땅하다.(86쪽)


강인한 전사 같았던 강민주는 백승하와의 소통을 통해 여성, 남성의 이분법적인 대결만이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작가 역시 대결이 아닌 조화와 상생만이 함께 걸어가야 할 길이라고 말한다. 쉽지 않지만.


작가는 당시 수면으로 드러나는 여성 억압과 차별 사례를 적극 반영하여 남성들에 대한 경고와 더불어 그 거짓된 보호본능에 기대어 안주하는 이 땅의 연약한 여성들에 대한 각성을 요구했다. 남녀 차별뿐만 아니라 세상의 부조리로 인한 억압과 고통은 고통을 가하는 자들의 반성으로 결코 변화되지 않는다.


고통받는 자들의 절규와 몸부림이 터져 나올 때 비로소 변화의 물꼬가 트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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