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여행을 떠날 수 없다면, 일상 여행자가 되어보자
따뜻한 온도와 함께 봄을 느낄 수 있는 건 아무래도 노랑, 분홍으로 피어난 예쁜 꽃 들일 것이다. 시간이 되고 여유가 된다면 봄꽃을 찾아 멀리 떠날 수도 있겠지만, 여유가 되지 않는다고 그저 집에 앉아 보내기엔 짧은 봄이 너무 아쉬웠다. 봄은 어느 곳에나, 누구에게나 똑같이 피어나지만, 봄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건 부지런히 봄을 찾는 자들일 것이다. 마침 작은 여유가 생긴 어느 오후, 우리 동네에 피어난 봄을 찾아 천천히 산책을 하며 일상 여행자가 되어보기로 했다.
동네 곳곳에 산수유가 만개해 있었다. 여러 갈래로 갈라진 산수유 꽃은 멀리서 바라볼 때보다는 가까이에서 자세히 바라보아야 더 아름다운 것 같다. 작아도, 이토록 예쁘고 아름다울 수 있다. 충분히.
꽃 한 송이만으로도 풍성한 목련은 하얗게 꽃몽우리가 질 때쯤 서서히 존재감을 드러내다가, 만개하면 더욱 풍성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동네에 몇 그루 없었지만, 하나 둘 피어나기 시작한 꽃들이 그 존재감을 확실히 하고 있었다.
나리 나리 개나리 입에 따다 물고요
어릴 때부터, 봄꽃 하면 생각나는 꽃이 바로 개나리꽃이었다. 봄이 되면 어디서나 볼 수 있었고, 개나리가 피어있는 곳은 그야말로 황금빛으로 아름답고 화려하게 물들어 있었다. 지금 사는 동네에도 개나리꽃이 곳곳에 피어있어 거리가 온통 봄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봄산에 올라야 볼 수 있었던 진달래를 길가에서 만나니 더욱 반가웠다. 어린 시절의 봄, 진달래 축제를 구경하러 봄산에 올랐을 때, 산을 온통 연분홍으로 물들였던 진달래가 새록새록 생각이 났다. 다시 자세히 바라보니, 색이 정말 고왔다. 개인적으로, 화려한 느낌의 철쭉보다는, 그리 화려하지는 않아도 소담한 연분홍의 진달래가 더 좋다.
들풀의 생명력은 참 강인하다. 포장된 길가 작은 틈으로 고개를 내밀어 꽃을 틔운 민들레를 보니 조금만 아프고 힘들어도 투정하고 징징거리던 나 자신을 반성하게 됐다. 긴긴 겨울을 지나 저 땅을 뚫고 나오기까지, 들풀은 얼마나 애를 써야 했을까? 봄 한 철, 한 송이 꽃을 틔우기 위해, 그 힘겨웠던 인고의 시간을 견뎌냈을 들꽃을 생각하니, 새삼 들꽃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힘겨웠던 과정이 저토록 아름다운 꽃을 피워냈구나. 목적지를 향해 걸어가는 길이 힘들고 고되지만, 언젠가는 피어날 내 안의 꽃들을 위해서도 결코, 포기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봄이 되니 세상이 조금씩 활기를 찾아가는 느낌이다. 앙상했던 가지는 푸르름을 옷 입고 있었고, 집 안에만 있던 사람들도 하나둘씩 밖으로 나와 봄을 즐기고 있었다. 계절의 흐름을 온몸으로 느낀 날이었다. 추운 겨울을 지나느라 힘들었던 우리 모두에게, 올봄은 더없이 좋은 계절이었으면 좋겠다.
봄길 - 정호승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