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만 해도 내가 결혼을 할 줄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만남과 헤어짐의 반복으로 인한 감정 소모에 지쳐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있었고 그 시간을 충분히 즐기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내 삶을 크게 변화시켜줄 한 사람을 뜻밖에 만나게 되었다. 우리의 만남은 운명인가 싶을 정도로 흔치 않은 일이었다. 만약 내가 새로운 동네로 이사오지 않았다면, 만약 내가 그 시간에 다른 곳에 있었다면, 만약 다른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면 우리는 스쳐가는 인연에 불과했을 것이다.
특별한 만남에 설레는 마음이 가득했지만 한편으로는 여태껏 겪어왔던 대로 이번 연애도 그리 오래가진 못하리라 생각했다. 너무 기대하지는 말자고 다짐했다.
나는 누구에게 피해받는 것도 싫지만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 주는 것은 더더욱 싫어하는 전형적인 ESFJ 유형이다. 연애를 할 때마다 상대방에게 상처주기 싫어서 괜히 싫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굳이 상대방을 바꾸려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다 보니 상대방이 나와 맞지 않는 모습을 보이면 상대방도 모르게 내 마음에서 상대방을 지워가기 시작했다. 몇 번 안 되는 나의 연애 경험은 모두 그렇게 끝이 났다.
남편은 나와 같은 ESFJ 유형으로 비슷한 점이 많지만 크게 다른 점도 있었다. 특히 감정 표현에 있어서 나는 소극적이었고 남편은 적극적이었다. 남편과 연애를 하고 두 달만에 위기가 왔었다. 그때도 여느 때처럼 그에 대한 마음을 몰래 접어가고 있었다. 그 상황을 느꼈는지 남편은 나한테 속상하다며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집 앞까지 와서 펑펑 운 모습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그런 그의 모습에 크게 놀랐고 나를 돌이켜보게 되었다. 나는 너무 이기적이고 차가운 사람이구나 싶은 생각이 그때 들었다. 그래서 이번 연애만큼은 나도 마음가짐을 바꿔보기로 했다. 내 생각을 솔직하게 말하고 싫은 것이 있다면 분명하게 말하겠다고 약속했다.
나는 진솔한 이야기를 상대방 앞에서 그의 눈을 보면서 하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나의 단점이기도 했다. 그래도 이제는 표현하겠다고 했으니 다투거나 속상한 일이 생기면 그때마다 편지나 메시지로 구구절절 나의 생각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말보다는 글이 나에게는 효과적인 의사소통 수단이었다. 내가 잘못한 부분이 있다면 솔직하게 고백하고 사과했다. 반대로 그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그의 어떤 말이나 행동 때문에 감정이 상했고 앞으로는 그렇게 하지 말아 달라고 피드백을 했다. 처음에 개선방법은 그에게 맡겼더니 또다시 같은 상황이 반복되더라. 그래서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파악하고 '이렇게 고쳐주세요'라고 구체적으로 피드백을 줬다.
시간이 지난 지금은 이제 글이 아닌 말로도 나의 생각을 많이 이야기한다. '너의 이런 점이 좋아, 네가 그렇게 말해서 불쾌해!, 그렇게 하지 말아 줄래?'. 감정 표현을 스스럼없이 하는 내 모습이 낯설면서도 오히려 이런 모습이 더 났구나 싶다. 겉으로 표현도 안 하고 꿍하니 있으면 달라지는 것은 없고 나만 지치지 않나.
물론 생각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 관계는 결국 끝이 나버릴 테지만 남편과 나는 그러지 않았다. 서로를 사랑하기 때문에, 이 사랑을 지속하고 싶기 때문에, 불화가 생겨도 어떻게든 풀어왔다. 남편을 만나는 동안 내가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부분은 이런 것들이다. 관계를 어떻게 이어가고 회복할 수 있는지 배워온 것이다.
목적 없는 사랑. 남편을 만나면서 그 사랑을 배웠다. '무엇'을 위해서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무엇'을 한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은 나 스스로가 예전에 비해 발전했다고 생각할 만큼 나를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켜주었다. 사랑하면 서로 닮아간다고 하는데, 남편을 보면서 나도 그 사람만큼 좋은 사람일 거라 생각하니 마음 어디에선가 행복을 느끼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나는 자연스럽게 이 사람과의 결혼을 결심하게 되었다. 사랑 그 자체를 위해 지금도 우리는 알게 모르게 많은 노력들을 하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