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명이서 떠난 내일로 여행
2012.08.13.~2012.08.17.
전주에서 울산까지
흔히들 말한다. ‘친구랑은 여행 가는 것이 아니다’라고. 아무리 친한 친구도 하루 종일 붙어 있다 보면 다투기 마련이란 의미인데, 나에게도 그 말은 사실이어서 친한 친구와 떠난 어느 여행에서 우리는 결국 서로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말았다.
각자 살던 곳으로 돌아가기 위해 기차를 타던 여행의 마지막 날, 데면데면 인사를 나누던 모습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 친구와 함께 해온 7년여의 시간 동안 거의 처음으로 다툰 게 바로 그 여행에서였으니 오죽할까.
그래, 역시 친구랑은 여행 가지 않는 게 맞는 걸까.
그러나 다행히 3박4일의 여행이 어떤 생채기를 남기기엔 우리가 함께 해온 시간이 그보다 훨씬 더 길어서 이후에도 우린 잘 지내는 중이다. 뿐만 아니라, 눈 뜬 후부터 눈 감기까지의 모든 순간을 친구와 공유한다는 것은 색다른 경험(친구에 대해서는 물론, 나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정말 독특한 기회다)이어서 ‘친구랑은 여행 가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에 크게 공감하지는 못하겠다.
그럼에도 친구랑 단 둘이 떠나는 여행이 두렵다면 아예 여럿이서 가는 여행을 추천해본다. 2012년 여름, 동아리 친구들 7명이서 함께 떠난 내일로 여행은 내 인생 최고의 여행 TOP3 중 하나로 남았으니까.
여행의 컨셉은 무계획. 결과적으로는 전주에서 시작해, 임실과 남원, 순천과 부산을 찍고 울산에서 상경하는 일정이 되었지만 사실상 오늘 할 일을 내일 미루는 심정으로 우리는 그 날 그 날의 목적지를 당일 아침이나 그 전날 밤에 정했다.
물론 목적지만 정한다고 될 일은 아니었기에, 음식 메뉴부터 숙소(게스트하우스를 갈 것인지, 찜빌방을 갈 것인지)를 정하는 것까지 그야말로 우리의 여행은 선택의 연속이 되어버렸고 결국 우리는 7명이나 되는 대인원의 의견을 좀 더 효율적으로 수합하기 위해 다수결이나 가위바위보와 같은 수단을 동원했다.
내 의견이 언제나 다수의 의견과 같을 수는 없는 법. 그럼에도 나는 어떤 결정이 나든 즐거운 마음으로 하하호호 따랐는데, 그게 인상적이었던지 한 아이가 이렇게 말했다.
“너 진짜 긍정적이다”
나는 정말로 그런 사람인 양 씩 웃었지만, 사실은 별 생각 없이 다수결의 논리를 따르고 있을 뿐이었다. ‘다수가 원하니까 일단은 따르는 것이 맞다’하고. 그런데 그것이 결과적으로는 여행에 임하는 아주 좋은 마인드가 되었던 거다.
보통 ‘다수의 생각을 따르는 게 맞다’는 생각은, 민주주의 사회의 의사결정 과정에서는 ‘수동적’이고 ‘공정하지 못하고’, ‘제 권리 찾지 못하는’ 등의 수식어로 비판되기도 하지만, 사실 여행에서는 그렇게 합리적일 수가 없다.
친구와 단 둘이 여행할 경우엔 한 명의 의견을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필연적으로 아쉬움, 섭섭함 등이 마음 한 켠에 자리 잡게 되지만, 다수결을 따를 경우 내 의견이 채택되지 못한 것에 대해 괜한 이유를 찾아대며 꿍한 마음을 먹을 필요가 없어서다.
게다가 어차피 여행은 무얼 하느냐 만큼 누구와 함께 하느냐가 중요한 법이니, 어떤 결정이든 일단 결정이 나고 내가 그걸 받아들이기만 한다면 결과적으로는 즐겁게 지낼 수 있다. 이번 여행에서는 그 마음 먹는 일을 다수결이란 아이가 손쉽게 처리해주었던 셈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전주에서 막걸리를 마시고, 순천의 만을 둘러보고, 부산에서 물놀이를 했지만, 그 대신 여수 밤바다를 보거나, 담양 녹차 밭에 가거나, 대구에서 곱창을 먹는다 하더라도 내겐 똑같이 재밌었을 거란 의미다.
물론, 영 의견이 좁혀지지 않을 경우 두 팀 혹은 세 팀으로 잠시 나누어 일정을 소화하면 된다는 생각도 내가 좀 더 낙천적일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였다.
결국 어떤 여행이든 여행자의 마음을 괴롭게 하는 것은 ‘이것만은 꼭 해야 한다’ 혹은 ‘이것만은 꼭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아닐까. 물론 여행 한 번 하려면 상당한 돈과 시간을 들여야 하는 만큼 가성비를 따져보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꼭 해야 한다고 믿었던 일을 하게 된다고 해서 언제나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더라. 오히려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생각지 못한 즐거움을 겪게 되는 일도 많고.
이제서야 이 사실을 깨달은 나는 다수결의 힘을 빌릴 필요가 없는 혼자 여행이나 둘이 떠나는 여행에서도 조금 더 너그럽고, 친구 말마따나 ‘참 긍정적인’ 여행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