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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 Studio Bleu Jul 08. 2020

진강의 물은 아직 차갑답니다

유여시, 진회하에 몸을 던지다


<< 낮은 신분의 여인 >>


운명이라는 커다란 강의 흐름은

한 개인의 삶은 어디까지 떠내려가게 할까요?


과연 그 커다란 강의 흐름을

한 개인이 거스르며 올라갈 수는 있을까요?


오늘은 제가 감히,

중국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여인' 이라고 생각하는

한 사람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중국을 통일했던 명나라의 기운이 쇠하고,

북쪽에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가 호시탐탐 북경을 노리고 있던 시기.


1618년,

중국 절강성 가흥(嘉兴) 에서 한 여자아이가 태어납니다.


물과 운하의 도시 '가흥' 입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잠시 있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그녀의 이름은 양애(楊愛),


아이는 총명하고 빼어난 인물을 지녔지만

집안은 곤궁했습니다.


그리고 그시대 여느 가난한 집의 아이들이 그렇듯,

어느 정도 성장한 아이는 부모의 손에 이끌려 다른 집안의 몸종으로 팔려가게 됩니다.


아홉  어린 양애가 처음 일을 하게  곳은,

오강 지역의 유명한 유곽이었던 '귀가원' 이었습니다.


그곳에서 같은 가흥 사람이었던 유명한 기생, 서불(徐佛) 시중을 들게 되죠  어린 양애가 마냥 동생같이 마음이 쓰였던 서불은 시와 그림, 글을 가르치며 언니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어린 양애는 11살이 되던 ,

관직에 있다가 고향으로 내려온 예부시랑 

주도등(周道登) 집으로 보내지게 됩니다.


기생이던 '서불'은 어린 '양애'

자신과는 다른 삶을 살기를 바라며,

유명한 대감집의 시종으로 들여보내었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양애도 나이 많은 주도등에겐

그저 한 명의 밤놀이 상대였습니다.


어린 나이의 양애는 주도등의 집에서 나름

적응을 하며 점점 귀여움을 독차지하게 됩니다.


특히 주도등의 어머니

어린 양애를 손녀딸처럼 이뻐했죠.


대학자의 곁에서 시중을 들며,

그녀의 학문은 더욱 깊어 갔지만

이는 또 다른 불행의 씨앗이 됩니다.


그녀의 외모와 재주를 질투하던

첩과 시녀들이 그녀를 괴롭혔고,

급기야 그녀를 모함하게 됩니다.


평소 책을 좋아하던 그녀가

주도등의 서고에서 몰래 책을 가지고와 읽곤 했는데

이런 은밀한 그녀의 행동을 외간 남자와 정을

통하고 있다고 고발해 버린 것이었죠.

 

이리저리 대꾸도 하지 못하는 양애를 보며,

주도등은 길길이 날뛰며 그녀를 죽이려 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린 그녀를 손녀딸처럼 아끼던 주도등의 어머니는

위기의 순간 그녀를 죽음에서 구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주도등의 어머니도

양애를 완벽히 구하지는 못하였으니,

열네 살의 양애는 결국 이 사건으로 원래 있던

'귀가원'으로 다시 팔려가게 됩니다.


언니 같던 서불

그녀가 살지 않았으면 하고 바랬었던

그런 신분이 되어버린 것이었지요.


그리고,

이때의 트라우마를 그녀는 평생 안고 가게 됩니다.



<< 송강에 흘려보낸 사랑 >>


기녀가 되어버린 양애.


하지만 그녀는 다른 기녀들은 거치지 않은

엘리트 코스를 거쳤습니다.


이미 뛰어난 예술 실력으로

이름을 날리던 언니 같은 '서불',


그리고 비록 그녀를 내쳤지만

옆에서 가르쳤던 대학자 '주도등'


이 두 사람에게 글과 시,그림을 베운 양애

초일류 기녀로 사람들 앞에 데뷔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녀 옆에는 이제

강남의 내놓으라 하는 사내들이 몰려들게 됩니다.

이제 그녀는 기루를 대표하는 기생이 됩니다.


북경의 명나라 조정은 갈수록 혼란해져 갔습니다.


명나라 마지막 황제로 기록될 숭정제는

의심병으로 인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고,

조정은 환관들의 정신 차리지 못하고

자신들의 재물만 모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산해관 북쪽으로는

누르하치의 청나라 군대가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죠.


이런 혼란한 시기에 명나라를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절강성의 젊은 관리들을  중심으로

터져 나오던 이런 움직임이 조직화되고,

이제 이들은 자신들을 '동림당(東林黨)'이라 부르며 자주 회합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선비들이 모이던 곳은

양애가 있던 곳과 너무나 가까운 곳이었죠.


그녀는 자연스레 이러한 선비들과

가까워지기 시작합니다.


이들을 만나기 위해 그녀는

강 위에 작은 배를 띄우고,

이름 있는 선비들을 찾아다니며 교류합니다.


그리고 운명의 연인,

‘진자룡(陳子龍)’을 만나게 됩니다.

그녀의 연인 진자룡, 하지만 그에게는 아내가 있었습니다.

여덟 살 연상의 선비 진자룡,


그는 동림당의 젊은 선비들을 이끌며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아내가 있는 몸이었지요.


어린 나이에 여인들의 질투가 어떤 것인지

뼈저리게 경험했던 그녀이지만,

그에 대한 사랑은 그칠 수가 없었습니다.


가까워진 둘은 이 년의 시간 동안

강남 송강에 누각을 지어 같이 지내며,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리며 서로에 대한 마음을 나눕니다.


그리고 기울어져 가는 명나라의 마지막을

걱정하며 같이 근심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름답던 누각이 소란스러워집니다.


한 귀부인이 누각으로 찾아와 고함을 치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진자룡의 의관이 떨어집니다. 진자룡의 본부인 장씨가 사람들과 함께 남편을 찾아왔던 것이었습니다.


양애를 첩으로 맞이하기 위해 설득 중이던 진자룡,


하지만 사대부의 집안에서

일반 기생을 첩으로 들인다는 건

너무나도 부담되는 일이었습니다.


눈 앞에서 벌어지는 소란을 보면서,

자존심 강한 양애는 뒤돌아 섭니다.


그녀의 처음이지 마지막 연인이었던

진자룡의 손을 놓아버리고 만 것이었지요.


<< 연인, 유여시 >>


진심을 다해 사랑했던 한 남자.


그와의 이별을 해야 했던 양애는

자신이 처음 있었던 기루, 귀가원으로 돌아갑니다.


신분의 서러움을 철저히 맛본 그녀,

돌아온 그녀는 가장 먼저 '기적'에서

본인의 이름을 빼버립니다.


그리고 본인의 이름 역시 바꿔 버립니다.


我見山多娬媚

내가 청산을 보니 아름답기만 하네,

料靑山見我如是   

청산이 날 봐도 그와 같을 거야.


그녀가 좋아하던 사,

<하신랑> 의 구절을 바라보던 그녀.


마지막 두 글자를 하얀 종이 위에 씁니다.


'여시(如是)' .... 그와 같다.


세상이 보아도 그와같이 아름다울 사람.

지금까지 기생으로 평생을 써왔지만,

차별받고 아픔만을 주던 양애' 라는 이름은

옛 연인 진자룡의 기억과 함께 묻어두곤,


'유여시(柳如是)' 라는 새로운 이름을 적어

그녀는 가슴에 깊이 간직합니다.

남장을 한 그녀의 모습, 그녀는 이제 자유롭게 세상을 돌아다닙니다.


이제 그녀는 자신이 그린 그림과 시를 팔며,

남장을 하고 다니고 무술을 배우며 자유로히

세상을 유랑하고 다닙니다.


더 이상 차별받으며

운명에 떠밀려 다니던 어린 기생,

양애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자그마한 체구의 그녀였지만,

남자들에게 지지 않겠다는 듯 술을 들이키고,

아름다운 곳들을 찾아 거닐며 거침없이

선비들과 우정을 쌓아갔습니다.



그녀가 남긴 많은 작품들... 많은 선비들이 그녀의 재주를 아꼈고, 또 여자로 태어난 그녀의 처지를 안타까워하였습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그녀도 이제 스무 살의 나이가 되었습니다.


"어느 정도 되는 남자라면

 당신의 마음에 담을 수가 있겠소?"


그녀를 아끼던 선비들이 그녀에게 묻습니다.

도도하게 흘러가는 송강의 물을 바라보며,

그녀가 대답합니다.


"전학사 정도의 학문이 되지 않는 분은

 꿈도 꾸지 마셔요."


발랄하게 웃으며 이야기를 하는 그녀,

사람들 역시 그녀의 호탕한 농담에 웃으며

술잔을 기울입니다.


세상이 우러러보는 명나라 대학자,

전겸익.


사람들이 웃으며 넘긴 것은 이유가 있었답니다.

그는 동림당의 지도자로서 당대의 이름 있는 학자였지만, 유여시 와는 무려 36 살이나 차이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죠.


술자리의 이야기는 바람을 따라 날아가,

전겸익의 귀에 까지 흘러들어 갑니다.


당대 아이돌처럼 인기 있던

어린 여인의 당돌한 도발.

전겸익은 너털 웃으며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도 그녀 같은 재능이 있는 여인이 아니면

 옆에 둘 수 없을 거네."


말을 들은 친구들은 정색하며 그를 바라봅니다.


이 친구가 노망이 났나 ...

손녀딸 같은 나이,

그리고 한 때나마 기생이었던 여인에게...


봄바람 위에 흘려보내는 농담처럼

친구들은 웃으며 담소를 합니다.

그리고 다시 이 이야기는 바람을 타고 흘러흘러

유여시의 귀에 들어갑니다.


<< 반야당의 방문자 >>


1640년,

강남의 커다란 한 저택에 누군가가

아침부터 문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문을 연 시종들 앞에,

곱상하게 생긴 한 남자가 검을 차고 서 있습니다.


다짜고짜 주인을 찾아뵙고자 하는 남자.

당당한 그의 태도에 홀린 듯 시종은 주인에게

남자를 안내합니다.


예순을 바라보는 노인 전겸익은 눈이 휘둥그래 집니다. 자신의 앞에 앉아 의관을 벗는 남자는... 다름 아닌 유여시 였습니다.


이 당돌한 여인은 다시 한 번 자신의 운명을 시험하기 위해, 할아버지뻘의 대학자에게 찾아갔던 것이었습니다.


전겸익은 조심스럽게 입을 뗍니다.

그리고 이야기를 나눠보곤 이내 이 자유분방한 여인의 매력에 빠져버리고 맙니다.


다음 해,

이 둘은 세상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뒤로하고 결혼식을 올립니다.


엄연한 신분제 사회.

기적에서 이름을 빼내었다곤 하지만 상대는 한 때 유명한 기생이었습니다.


거기다 30살이 넘어 나는 나이차이는 당대에도 파격적이었기에, 사람들은 만류를 넘어 둘의 결혼을 비난하게 됩니다.

전겸익과 유여시, 둘은 사람들의 우려를 뒤로하고 결혼합니다


전겸익도 유여시도 담담하게 그들의 비난을 받아들입니다. 무수히 터지는 폭죽 소리를 들으며, 둘은 화촉을 밝힙니다.


결론적으로 그녀의 선택은 옳았습니다.


전겸익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게 그녀의 재주를 아끼며 외부의 비난에서  보호해 주었습니다. 그녀 역시 오랫동안 그녀를 옭아매던 사회의 시선에서 드디어 자유로울 수 있었습니다.


전겸익은 그녀가 가장 좋아할 만한 선물을 해줍니다.

수 만권의 책들로 가득 찬 도서관인

'강운루' 라는 건물을 지어 준 것입니다.


여기서 두 부부는 서책을 정리하고

젊은이들을 교육하는 일을 합니다.

(풍운아 정성공 역시 이 곳에서 전겸익의 가르침을 받습니다)


그렇게 풍파에 시달리던 그녀의 삶은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 진강의 물은 차갑답니다 >>


1645년,

이제 스물여덟의 전씨 집안의 안주인인 유여시는 편안한 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북쪽에서 불길한 말발굽 소리가 들려옵니다.

명나라의 마지막 수도였던 남경으로 북쪽의 청나라군이 밀려온 것입니다.


황제를 보호해야 할 근위병들은 모두 뿔뿔이 흩어져 버렸고, 이제 마지막이라는 분위기가 도성 안에 퍼져있었습니다.


그리고,

명나라 조정에서 일을 했던 전겸익 역시 무사할 리가 없었습니다. 피난민들이 길거리에 넘쳐나가고, 이 와중에 서로 살겠다고 사람들은 다툽니다.


유여시는 남편인 전겸익에게 다가갑니다.


"왕조가 명운이 다했습니다.

 이제 우리도 선택을 해야 합니다. 나라의 녹을 먹은

 관리가 어떻게 오랑캐들을 섬기겠어요.


 칼, 밧줄, 물.... 선택하셔요.


 당신은 나라를 위해 죽는 것이고,

 저는 당신을 따라 죽어 절개를 지키겠습니다."


서슬 퍼런 아내의 이야기에

나이 든 남편은 얼굴이 하얗게 변합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그는 이야기합니다.


"그럼 우리 진회하(秦淮河)로 갑시다."


남경을 가로지르는 진회하, 많은 유곽과 기루가 위치한 곳이었습니다.

두 부부는 이제 강에 도착합니다.

 

남경성 북문에 연기가 오릅니다.

청나라 군대가 이미 문을 통과하여

왕조의 남은 숨통을 끊으려 하고 있습니다.


유여시는 노쇠한 남편을 바라봅니다.

흐르는 물을 바라보며 한동안 말이 없던 남편이

그녀에게 이야기합니다.


"진강의 물은 너무 찬 것 같소.

  우리 다음에 다시 옵시다..."


어린 아내는 놀란 표정으로

남편의 얼굴을 쳐다봅니다.


잠깐 경멸의 눈으로 남편을 바라보던 그녀는 이내 고개를 흔들곤, 진회하의 강으로 몸을 던져 버립니다.


놀란 남편과 주변 사람들이 달려들어

조그만 체구의 유여시를 건져냅니다.


추운 강물로 잠시 혼절해 버린 안주인이 급히 옮겨지고, 나이 든 남편은 새로운 주인을 맞이하기 위해 관복을 갖춰 입고 왕궁으로 향합니다.


전겸익은 이후 점령군들을 따라 북경으로 향합니다.

그런 남편을 어린 아내는 따라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존경받던 노학자는 마지막 순간에 선택으로 역사에 '변절자'라는 이름을 남기게 됩니다.


그런 그에게 청나라 정부가 준 관직은

조그만 도서관 관리직이었습니다.


벼슬을 버리고 다시 남경으로 돌아온 남편과 함께, 유여시는 종종 진회하로 놀러 갔습니다.


강에 들어가 헤엄을 치며,

그녀는 앉아았는 남편에게 크게 이야기하곤 했답니다


"그렇게 바라만 보고 계셔요,

 진강의 물은 아직도 차갑답니다." 

  


<< 전설이 되다 >>


청나라의 군대는

대륙의 끝까지 말을 달려갔습니다.

명나라 군대는 이제 지도상에서 거의 사라져 버렸습니다.


하지만 대만에는 아직도 그녀와 안면이 있었던

'정성공' 의 군대가 저항을 계속하고 있었고,


내륙에도 점점으로 많은

반청 저항세력들이 있었습니다.  


사라져 버린 명나라..., 전씨가 의 어린 여주인은 깊은 생각에 잠깁니다


진회하의 강물에서 건져 올려진 그녀,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던 그녀는 이내 결심합니다.


여자의 몸으로 새로운 지배자 청나라에 맞서는

반청운동에 참여할 것을 말이죠.


노쇠해버린 남편을 골방에서 끌어낸 그녀는 이제,

집안의 재산들을 팔아 적극적으로 저항군들을 돕기 시작합니다.


겉으로는 평온을 유지하면서도,

수많은 명나라 부흥을 꿈꾸는 인사들이

그녀의 집을 드나들며 정보와 자금을 교환합니다.


그리고 그즈음....

그녀의 삶에서 가장 강렬히 사랑했던  연인,

진자룡이 청나라와 맞서 싸우다 자결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그녀가 어떤 기분이었을지

알려주는 자료는 없습니다.


다만 그 후의 그녀의 활동을 보자면,

조금이나마 심정을 알 순 있을 것 같습니다.


남경으로 청나라군이 진군해온 1645년 부터,

정성공의 부대가 남경으로 공격해온 1658년 까지,


무려 10년이 넘는 세월을 그녀는

반청운동의 지하 조직원으로 활동했습니다.


때로는 맹렬하게,

때로는 유유자적하면서.


혼자서 배를 몰고 청나라 군대의 사이를 뚫고

저항군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내지에서 모금한

자금들을 전달해 주기도 하였습니다.


정성공의 남경 공략은 결국

실패로 끝이 나고 말았습니다.

(풍운아 정성공의 이야기는 여기로)


믿었던 저항군은 이제 바다 건너 대만으로 도망가 버렸고, 오랜 기간 동안 저항군들을 지원하느라 남은 자금은 더 이상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그렇게 아끼던 서고

'강운루' 도 화재로 사라져 버리고 말았지요.


그녀의 가장 큰 싸움은 이렇게 끝이 나고 맙니다.


오랜 시간 나라를 찾기 위해 싸웠던 그녀의 노력은 사랑하던 연인, 재산... 그 모든 것들을 앗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가장 절망적인 순간

그녀는 다시 일어나 맞서 싸웁니다.


그녀는 그런 사람이었으니까요.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야 했던 신분,

변화시킬 수 없는 세상의 파도 앞에서 그녀는,

항상 복종보다는 저항 하는 길을 택하였습니다.


그녀의 남편 전겸익이 죽고

그녀를 보호하던 이들이 사라져 버립니다.


그리고, 반청운동을 하였던 자금들까지 들통이 날 상황에 이르렀을 때, 40대 중반이 된 여전사 유여시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길을 택합니다.



후대의 학자 진인각은 그녀의 이야기를 구술로 정리합니다.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자는 복종이 미덕이라 말하던 시절이 있었지요.


누구보다 뛰어난 외모와 재주를 가졌지만,

가장 비천한 신분으로 떨어진 여인이

세상과 교류하며 눈을 뜹니다.


그리고,

더 이상 인생이란 강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만 있지는 않겠다고 생각합니다.  


삶이란 거친 물결을 거스르는

필사적인 그녀의 몸부림은 외로웠지만 아름다웠고,

결국 콧대 높은 선비들도 고개를 숙이게 만듭니다.


학자 진인각,

많은 저작을 남긴 이 학자에게도

생의 마지막이 다가옵니다.


두 눈이 실명할 지경에 이르러서도

그는 한 여인의 전기를 집필하고 있습니다.


눈이 보이지 않으면, 제자에게 받아 적게 하면서,

10여 년의 긴 시간 동안, 80만 자에 이르는 글을

한 여인을 위해 엮습니다.


<유여시 별전> 은 그렇게 세상에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녀의 이야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전설이 되었습니다.



남경의 진회하의 강물은

지금도 도도하게 흐르고 있습니다.


그 강물을 바라보며,


기녀가 되어버린 자신의 한스러운 운명에

눈물짓던 어린 여인이 있었습니다.


운명의 연인과 이루지 못한 사랑을

가슴 아파하던 어린 여인이 있었습니다.


잃어버린 나라의 모습을 슬퍼하며

몸을 던지던 어린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운명의 강의 흐름에 인생을 맡기지 않고,

잃어버린 왕조를 되돌리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던,


더 이상 어리지 않은 한 여인의 이야기가

지금도 사람들 사이에서 노래되고 있습니다.


(PS) 한 여인의 많은 이야기를 풀어내느라 분량 조절에 실패하였습니다 ^^;;;  너무 길어 호흡이 곤란하셨다면 죄송합니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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