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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 Studio Bleu Aug 01. 2020

사랑하는 이를 위한 기록

이중섭, 편지를 쓰다.

<이중섭 편지>,  사랑하는 이를 위한 기록들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많은 사람들이 방문한 가운데 의미 있는 행사가 열립니다.


<명화를 만나다 - 한국 근현대 회화 100선>

항상 관객들의 눈에 뒤로 배정되었던 우리 화가들의 작품들이 모여, 사람들 앞에 선보이게 됩니다.


이 행사 가운데서 단연

사람들의 관심을 끈 작품들이 있었습니다.


노을을 등지고 울부짖는 소 (1953년)
떠받으려는 소 (1953년)


붉은 석양 아래 큰 눈을 치켜뜨곤,

사진 밖을 향해 포효하는 그림,

<노을을 등지고 울부짖는 소>.


그리고 우람한 근육들을 자랑하며,

앞으로 힘차게 나아가는 모습의 그림,

<떠받으려는 소>.


관람객들의 투표를 통해서, 가장 사람들이 기억에 남는 그림이라는 타이틀을 걸머진 1, 2위의 작품 모두는 소를 사랑했던 천재화가 '이중섭' 의 작품이었습니다.


<이중섭 편지>

우리에게 단편적으로 알려진 화가,

대향(大鄉) 이중섭이 아내에게 보낸 편지와 그림을 묶은 책입니다.



<< 바다 너머 사랑 >>


사실 이중섭은 저에게도

이름만 익숙한 화가였습니다.


이중섭은 음.... '황소' 지요.


더하여 저는 아주 커다란 오해를 한 가지 하고 있었답니다. 아내와 아이를 대하는 그의 태도에 대한 오해 말이죠.


말년에 몸과 마음이 망가져버린 그의 모습을 보면서


'재주는 있지만,

 가정엔 그리 미련이 없었던 못난 가장이었나 보다.'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더랬죠.

하지만 한 그림과 이 책을 보곤 생각이 바뀌게 되었답니다.




1935년,

이중섭은 일본으로 유학을 가게 됩니다.


부잣집 자재들이 다니던,  

'일본문화학원' 에서 새로운 미술을 우게 되죠.


훤칠한 큰 키에 못하던 운동이 없고

노래마저 잘하던 멋쟁이.


인기 많은 부잣집 도련님이었지만,

정작 여학생들 앞에선 심장이 뛰어 얼굴조차 들지 못하는 중섭은 그런 남자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그를 유심히 보던 한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2년 후배이던 '야마모토 마사코(山本方子)' 가 그녀였습니다.


미츠이 재단 임원의 둘째 딸로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하고 있던 일본 아가씨.


그런 그녀가 식민지 조선에서 온

키 큰 미남 유학생에게 마음을 빼앗겨 버립니다.


1943년,

제2차 세계대전에 휘말린 일본의 분위기는 달아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아울러 이중섭은 <조선 미술가협회전> 출품을 위해 일본 생활을 접고 귀국하게 됩니다.


오랜 기간 사귀었던 마사코와의 인연 역시

마음속에 접어두기로 하고 말이죠.


식민지 유학생과 본토의 부잣집 따님의 사랑,

현실적으로 이어지기에는 이들 앞에 너무나 많은 벽들이 가리고 있었죠.


그렇게 조선으로 돌아와 바쁜 나날이 시작됩니다.

원산에서 작품 활동을 하며, 2년여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일본에서의 기억이 희미해져 갈 때 즈음...

그의 사무실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옵니다.



<<  경성에서 온 전화 >>


전화를 받은 중섭의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일본에 있어야 할 '마사코' 의 목소리가

교환대를 통해 그에게 전달된 것입니다.


1945년 4월, 어느 봄날.

미군 공군기의 폭격으로 배가 뜨기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그녀는 중섭의 전보 한 통만 보고 마지막 부관 연락선에 몸을 싣습니다.


그리고,

부산을 거쳐 경성에 도착해

중섭이 있는 원산으로 전화를 한 것입니다.


믿기지 않는 상황앞에서

중섭은 그녀가 있는 경성으로 한 걸음에 달려갑니다.

사랑을 위해 일본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온 그녀.


꿈만같은 재회 후에,

원산으로 같이 돌아간 그들은 그해 5월,

결혼식을 올리게 됩니다.


영화 같은 사랑, 마사코(왼쪽) 와 이중섭(오른쪽)


사랑하는 연인을 만나기 위해

말도 통하지 않는 한국으로 온 아내.

그런 그녀에게 중섭은


'남쪽에서 온 덕스러운 여자' 라는 뜻의

'남덕' 이라는 이름을 붙여줍니다.


부유했던 원산의 신혼 살이.

(대지주였던 중섭의 집은 프랑스 유학까지 고려할 정도로 재력가였다고 합니다. 덕분에 마사코의 시집살이도 가난하진 않았죠)


하지만 어두운 삶의 파고가

그들에게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1945년 8월,

일본이 패망하였고 아내 남덕(마사코)은 이제,

일본인이라는 것만으로도 한국에 있는 것이 위험해졌습니다.


그들이 있던 북쪽에는

소련을 등에 업은 공산당 세력들이 들어옵니다.


토지개혁을 부르짖는 공산당원들에게 부유한 지주들은 처형당하였고, 이 와중에 중섭의 집안도 크게 화를 당합니다.


더하여,

중섭의 작품 활동 역시 제한을 당하게 됩니다.


자유롭게 본인의 세상을 화폭에 담아내던 모습에서,

국가가 시킨 선전물들만 만들어야 하는 상황으로 바뀌게 된 것이죠.


1950년 6.25 전쟁이 터지고,

통일이 될 것처럼 올라오던 국군이 다시 중공군에 밀려 후퇴를 합니다.


북에는 더 이상

그들을 위한 땅이 없다는 것을 직감한 그의 가족들,


중섭은 나이 든 노모의 권유로,

아내와 함께 남한행 배에 몸을 싣습니다.


그리고, 이 선택이 사랑하는 어머니와의

영원한 이별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이 책은 중섭의 가족이 부산으로 내려온 후,

아내가 일본으로 돌아가게 되고 나서부터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부산과 제주를 거치며,

잘 먹고 자지도 못하던 피난민 생활로 인해,

아내 남덕(마사코) 과 두 아이들의 몸은 급격히 망가져 갑니다.


아이들이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아내가 폐결핵까지 앓게 되자 결국,


1952년 7월, 

아내는 두 아이들과 함께 전쟁터인 한국을 떠나 일본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금방 다시 만날거라 생각했던 이별은 후에 더욱 악화된 한일 관계로, 왕래하는 것 조차 어려워졌습니다.


이 책은 가난이 그를 괴롭히고,

이렇게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했던 힘든 시기,

그가 아내와 아이들에게 보냈던 그림과 글들이 남겨져 있습니다.


"유명한 화가가 되어 당신에게 돌아갈 테니,

 남덕은 대향만 믿으세요."


라고 호기롭게 말하던 남편에게

현실은 그리 녹녹하지 않았습니다.


믿었던 지인들의 배신과 연이은 전시회의 실패,

종이 살 돈 조차 없어 힘들어하는 가난과 기약이 없이 길어지는 일본행 까지...


가난과 고독은 점점 그의 정신을 파괴해 갑니다.

말년에 그는 결국 정신 착란 증세까지 보이며 이상행동을 합니다.


'미술 같은 것을 해서 하늘을 속여 벌을 받는다'

 

는 자책 어린 말들을 하면서 말이죠....


1956년 7월,

가족을 끔찍이도 그리워했던 천재화가는 쓰러지고 맙니다.


그를 괴롭히던 정신적 고독과 간염 증상이 겹쳐지면서, 더 이상 바다 건너 가족들과의 만남을 꿈꿀 수 없게 된 것이죠.


한 무료 병원에서 쓸쓸히 죽어간 그의 시신은,

무연고자로 분류되어 3일 동안이나 방치되었다가

친구들의 도움으로 수습되게 됩니다.



<< 남은 이야기들 >>


< 구상네 가족 >, 1955년, 이중섭 작품


<이중섭 편지> 를 선택한 읽어보기로 결심한 이유는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던 오해 때문이었습니다.


지금껏 많은 예술가들처럼 가정에 소홀하고,

자기 절제를 하지 못하는 예술가로만 생각했던 천재화가.


하지만, 이중섭의 도록을 살펴보다가

그가 그린 그림 <구상네 가족> 을 보곤,

흥미로운 마음이 들었답니다.


그림의 선 하나하나에서 가족에 대한

사랑스러움과 그리움이 느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가족들을 일본으로 떠나보내고,

중섭은 월남하기 전부터 친한 형이였던

시인 구상의 집에 자주 놀러 갑니다.


마침 가난한 판잣집 살이 가운데에서도

자전거를 아이에게 태워주는 구상의 모습이 중섭의 눈 안에 들어왔습니다.


그는 이 장면을 놓치지 않고 그림으로 남겨놓죠.


도록의 그림을 보면서 신기한 느낌이 들었답니다.

그림 한 장에 작가에 대한 부정적이던 마음이 사르르 녹는 경험이었다고나 할까요?


그리곤,

그가 남겼던 편지들과 그림들 하나하나 찾아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글과 그림들을 만나면서,

왜인지 모르지만, 얼마 전 보았던 또 다른 작품 하나가 떠올랐답니다.

 

<첫걸음>,  1890. 빈센트 반 고흐 (밀레의 그림을 모사함)... (출처 : morgen 님의 브런치에서)

(자세한 설명은 여기서 https://brunch.co.kr/@erding89/40 )




어떤 느낌이 드시나요?


자전거를 타는 가족들을 보며

흐뭇한 모습으로 앉아있는 화가,


걸음을 떼는 아이와 농부 가족을 보며

붓을 들고 있을 화가 (아마 고흐 역시 미소를 지으며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까요?)


저는 두 화가의 그림을 보면서,

그들이 느꼈던 가족에 대한 사랑과

가지지 못한 온기의 그리움을 느꼈답니다.


그리고,

책을 읽는 내내 두 사람의 모습이 겹쳐졌습니다.


고흐에게 동생 '테오' 가 있었듯,

이중섭에게는 '남덕(마사코)' 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항상 모자란 평가를 받던 천재화가들을

이해하고 지지해주었습니다.


비슷하게 시대를 앞서갔고,

누구보다 사람들의 온기와 성공을 바랬지만 결국,

죽고 나서야 인정을 받을 수 있었던 천재화가들.


이중섭의 죽음 후,

그의 부고는 일본에 남아있는 아내와 두 아들에게 전해집니다.




2016년 6월,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이중섭 기념 전시회가 열립니다.  


당시는 이중섭 탄생 100주기 이자,

사망 60주기가 되는 상징적인 해였습니다.


그리고 바다 건너 일본에서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합니다.


이중섭 100주년 기념전을 축하하며,

일본인 아내 남덕(마사코) 여사가 손수 편지를 써서 보낸 것이었죠.


말도 통하지 않던 나라에서

전쟁의 난리까지 겪게하고,

그렇게 고생만 안겨주던 무능력한 남편.


그런 남편을 기억하며 그녀는

편지로 마음을 전합니다.


꿈속의 당신은 서른 그대로인데,
나는 이렇게 늙어 버렸네요....  

피난때 화구부터 챙기던 당신,

다시 태어나도 함께할 거예요,
우린 운명이니까

< 이중섭 100주년 기념전에 부침, 이남덕(야마모토 마사코) 여사 >




<이중섭 편지> 의 마지막 장을 넘겨봅니다.


그가 힘든 시기 만나지 못하던 아내에게 남긴 글들을 보며, 아내가 그에게 어떤 의미였을지 그 사랑의 크기가 감히 상상도 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세상에 나만큼
아내를 사랑하고 미친 듯이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요?

보고 싶고 보고 싶어 또 보고 싶어,
머리가 멍해지고 말아요.

... 1954년 11월
하루하루 작업에 몰두하면서
어떻게 하면 당신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지.... 온통 그 생각뿐이라오.

이제 곧,
부드럽고 상냥한 그대의 가슴과 그대 모든 것을 감싸 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그냥 속으로 빙긋빙긋빙긋
웃음이 끊이질 않아요.

사람들은 내가 자기 아내 생각뿐이라며
놀릴지도 모르겠어요...

가장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아내와 모든 걸
바쳐 하나가 되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없어요.

예술은 끝없는 사랑의 표현이라오.

진정한 사랑으로 가득 찰 때 비로소
마음은 순수와 청정에 이를 수 있는 것이지요.  

.... 1954년 12월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만 생각하며 그리워하던,

지독한 사랑꾼 이중섭.


그의 유해는 화장되어,

친구 구상 의 손에 들려,


그렇게 보고싶어 하던

일본의 아내의 품으로 돌아갑니다.


7년의 짧았던 결혼생활,

한 줌의 재가되어 돌아온 남편을

아내는 품에 꼭 껴안습니다.


그리고,

70년이 넘는 시간을 남편의 추억과 함께했죠.


2012년,

그녀의 손을 통해 남편의 소중한 유품이 한국에 기증됩니다. 그리고 남은 그녀의 이야기들이 하나둘씩 알려지게 됩니다.





현실적인 조건에 밀려,

사랑의 의미가 점점 가벼워지고,


부부간의 사랑은 결국 '의리' 라고

쉽게 이야기하는 세상 앞에서,


오랜 시절 고집스럽게,

서로를 운명이라 믿어 의심하지 않는

한 부부의 이야기를 만났습니다.


시대의 축복을 받지 못했던 한 연인들의 이야기가

사별한 남편의 애틋한 그림 편지로 전해지고,

남은 부인의 담담한 인터뷰로 마무리되는 것 같아,

글을 정리하는 동안 슬프면서도 기뻤답니다.


글을 쓰는 막바지에

그녀가 남긴 인터뷰를 보았습니다.


오랫동안 그리워 하던 남편에게

그녀는 수줍게 이야기 합니다.


“당신, 도대체 뭐하고 있었던 거예요?


두 아들의 어머니로

평생을 그리움을 눌러가며 살아왔을,

남은 아내의 조금은 원망 섞인 마지막 한 마디가

여름날 파도처럼 그렇게 가슴을 울렸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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