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만난 태극기

흔적들을 말을 걸어올때

by Le Studio Bleu
저장성 항저우시 상청구 장생로 55 ... 꼭 가보고 싶었던 곳




서호를 뒤로하고 버스를 탔다.

오전에 들려야 할 곳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 알려지진 않은 곳이기에

지도를 펴보다 이내 포기한다.


이럴 땐 스마트폰 어플이 유용하다.


가야 할 곳의 경로와 타야 할 버스 번호까지 나온다.

어플이 없던 예전에 여행자들은 어떻게 여행을 했을까?


주소를 조회해 본다. 

저장성 항저우시 상청구 장생로 ... 55번지


비슷한 거리에 왔는데 건물이 보이지 않는다.

한참을 빙빙 돌았을까?


조그만 입구가 앞에 보인다.

사람들이 잘 다닐 것 같지 않은 곳.


호수 근처 마을 (湖边村), 이곳은 우리 역사상 가장 암울했던 시기에 대한민국의 흔적이 있던 곳


大韩民国临时政府杭州旧地纪念馆

(대한민국 임시정부 항주구지 기념관)


처음본 낡은 기념관의 모습은

나에게 감동으로 다가왔다.


1932년 4월 29일,

상해 홍구 공원에서는 일본의 전승행사가 있었다.


얼마 전 격전 끝에 빼앗은 땅,

상해를 발판으로 대륙으로 밀고 들어가기 위해

일본이 기획한 자축행사.


우리가 아는 '윤봉길 의사'의 폭탄 의거가

이 날 일어났다.


사건의 배후가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하자,

눈이 뒤집힌 일본 군인들이 임시정부가 있던

상해 프랑스 조계지로 쳐들어 왔다.


당시 김구 선생을 비롯한 여러 인사들이 목숨을 걸고 상해를 탈출해

피해온 곳 중 하나가 바로 이곳 항저우였다.


3년의 시간 동안 ,

이 곳은 잃어버린 나라 식민지 대한의 임시 정부가 된다.


나는 이후에도 항저우를 방문할 때면

꼭 이 곳을 들리려고 노력한다.


처음 방문 때는 곧 철거될 구조물처럼

위태롭게 간판만 유지하던 유적지.


다행히도 한중 정부의 노력으로 개보수가 되어,

이제는 그럴듯한 모습을 갖추고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다행히 이제는 번듯한 간판도 생겨서 나를 다시 맞아주었다.
정문을 들어가면 가장 먼저 위치하고 있는 태극기... 이 깃발을 들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바쳤다.
자금난과 죽음의 위협 속에서도 외롭게 임시정부를 지킨 독립 운동가들의 모습
임시정부 각료들의 모습, 사진에는 <대한민국 원년> 이라는 글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우리네 역사에서 가장 암울했던 시절,

임시정부가 가장 위험에 처했던 시절에,

목숨을 걸고 임시정부를 지켰던 분들의 이야기가 여기에 남아있다.


사진 속 두 번째 줄의 왼쪽 끝,

훤칠한 키의 일강 '김철' 선생님의 모습이다.


메이지 법대를 졸업한 수재,

마음만 먹었으면 식민지 조선에서 편안한 삶을 살았을 젊은이는,

멀리 상해 임시정부에서 사람이 필요하다는 소식을 듣고 미련 없이 길을 떠났다.


더하여 강직했던 그의 아내는 혹시나 일제로 인해

남편의 독립운동에 방해가 될까 싶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길을 택하였다.

(김철 선생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이곳 에서)


그는 독립운동 활동 중에 얻은 병으로

이 곳에서 생을 마감하였기 때문이다.


그의 유해는 서호 근처 언덕에 묻혔다가

결국 아파트 개발로 인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이렇게 이국 땅에서 목숨 걸고 활동하다가

독립을 보지 못하고 사라져간 독립 운동가들이 얼마나 많을까?

기억되지 못한 이름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서호의 저녁이 아름답지만,

나에겐 한편으론 슬퍼 보이는 이유다.


기념관 한편에 걸려있는 김구 선생님의 친필


벽 한켠에는 김구 선생님의 친필이 걸려있었다.


지난행역...

깨닫기는 힘들지만 (그 후에) 실천하는 건 쉽다.


어렵게 알고 나서 행동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깨닫고 나면 확신을 가지고 행동하기는 쉬워진다.


그러기에 우리는 어렵더라도

항상 공부하고 사고해야 한다.


불확실한 세상에서 흔들림 없이

자신을 믿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항저우의 임정 공간들을 거닐고 다니는 동안,

한국에서는 건국절 논란으로 나라가 뜨거웠다.


임시정부의 땅에서 대한민국을 바라보니,

이질적인 주장들에 대한 '신기함' 이 느껴졌다.


TV에 나온 패널은 침을 튀겨가며,

국민, 주권, 영토.... 국가의 구성 요소 중에서,

주권 영토가 없었으니 임시정부는 정부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나는 이 곳 항저우에서,

먼 시간을 건너뛰어 서로 다른 곳을 보는 이들을 만난다.


후손들의 시끄러운 논란 속에서도

이 곳 항저우에서는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외교문서들이 전달되고 있었고,

독립을 위하여 목숨을 건 비밀 명령들이 전달되고 있었다.


그 당시 그러지 않고 (일제에 협력하지 않고)

살았던 사람들이 어디 있었냐는 말을 패널들이 한다.


그 엉망진창의 시기에도

독립의 길을 위해 고생스럽게 노력하던 바보들이 있었다.


세상보는 눈을 늦게뜨는 바람에

모든 것을 빼앗겼던 우리네 역사의 가장 암울했던 시기.


그 시간이 모두가 무력했던 식민지배의 시간이 아닌,

가장 열정적이고 치열하게 저항을 했던 열정의 시기였음을 확인하고 싶다면,


이 곳 임시정부 유적지들을 방문해 보았으면 한다.


운하를 가로지르는 배들이 다니는 선착장


임정 기념관을 나와 나는 운하 선착장으로 갔다.


여행책에 따른다면, 이 곳에서

항저우~쑤저우를 연결하는 배가 있다고 했다.

운하를 따라가면 보통 6시간은 걸린다고 하니,

선상에서 창에 기대어 잠을 자다보면 아침에는 쑤저우에 닿아 있을 것이다.


시내 거의 끝에 다다르자 버스 정거장 아래로,

낡아 보이는 선착장이 위치하고 있었다.


시간은 벌써 오후,

해가 조금씩 넘어가고 있었다.


"쑤저우 가는 배표요."


매표소에 들어가서 나는 말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마작을 치며 놀다가 이야기한다.


"뭐? 그 배 없어졌는데!"


나는 화들짝 놀랐다.

아니 배가 없어지다니?

인터넷으로 검색도 하고, 가이드북은 작년에 나온 따끈한 신상인데?


"장사가 안돼서 접었어.

이제 멀리 가는 배는 없어."


나이 드신 아주머니가 귀찮다는 듯 이야기했다.

선착장 앞에 사람들이 안쓰러운 눈으로 나를 쳐다보다가 다시 '마작패' 를 열심히 돌렸다.


눈 앞이 깜깜해졌다.

어떻게 해야 하지?


여기서 여행을 멈춰야 하는걸까???


《 항저우,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에서 》


도시를 가로지르는 운하와 선착장..... 이제 조금 있으면 저녁이 되려 했다....나 어떻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