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항저우 탈출기? #2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어
행동하게 하는 사람.
우리는 그들을 영웅이라 부른다'
(Huffpost 기사 중에서...)
사실 난 영웅을 좋아하지 않는다.
너튜브에 어느 교수님께서, 역사를 보면 굉장히 터프하고 세상을 바꾸던 희대의 영웅들을 현대 심리학 관점으로 뜯어보면, 이상하고 괴팍한 놈들 천지라고 하시던 이야기를 듣고나서 부터다.
가령,
삼국지 유비란 사람이 현대에 태어났다면 뻥카 심한 동네 백수형, 나폴레옹이란 애가 현대에 태어났다면 사회성 부족한 매일 실망하는 중대장…
아무튼 성격좋은 영웅 찾기는 하늘에 별따기라는데, 사실이라면 일단 사회에서 만나기 싫은 유형들이다 (실제 그런 애들 때문에 우리는 직장이나 학교에서나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지….)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빛을 발하는 시기가 있다.
바로 난세! 혼란스러운 세상에서다.
지금 오늘 같은날!
대합실 안은 이제 대혼란에 빠졌다.
사방에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이제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앞의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어쩌겠는가?
어차피 사람들 사이에 끼여서 움직일 수도 없다.
나는 다시 운명론자가 된다.
아마 전생 두 대를 걸쳐서, 나는 여기 항저우에서 못받은 빚이 있었을꺼다. 그러지 않고서야 내 발목을 이렇게 잡을 일이 없지않을까?
지금 매표소 앞은 전쟁터다.
특히 표를 사기 직전까지 갔었던,
내 앞의 세 사람이 가장 흥분했다.
맨 앞에 아저씨가 분연히 뒤돌아 선다.
"동지들~!
이렇게 저 문이 닫히게 할 순 없소~!!!
어떻게 이야기도 해주지 않고
이렇게 문을 닫는단 말이요~!!!"
추임새를 넣듯이 뒤에
두 아저씨가 같이 소리를 쳤다.
"맞다, 맞아~!!!"
"옳소~!!!"
사람들이 동요하기 시작한다.
갑자기 줄 뒤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밖의 심상찮은 상황을 바라보고 있던 매표소 사람들이 술렁인다. 매표소 안의 누님이 마지못해 마이크에 대고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다른 사람이 소리쳤다.
"뭐야~!
아직 시간이 남았잖아~!!!"
사람들이 일제히 소리치기 시작했다.
드디어 민란이 시작되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시계를 보았다.
4시 48분...
이렇게 까먹고도 아직 12분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분위기가 험악해지기 시작했다.
갑자기 누군가가 소리쳤다.
'카이먼(开门)~!!!'
문을 열으라는 소리다.
그러자 모두가 때거지로 소리치기 시작했다.
"문 열어라~!!!"
"우리는 표를 사아햔다~!"
나는 속으로 '잘한다, 잘한다'를 외치고 있었다.
옆에 있던 사람이 가만히 서있는 나를 쳐다보았다.
흠칫 놀란 나는 눈치를 보다가 같이 손을 들고 외쳤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매표소 안의 사람들은 혼란에 빠졌다.
매표소 사람들이 눈치를 보기 시작했고,
유니폼을 벗던 누님은 짜증 섞인 표정으로 밖을 둘러보더니, 드디어~~ 시계를 흘끔 보고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나는 이 경험을 나중에 친구들과 공유하면서
다시금 중국 사람들의 습성을 깨달았다.
일단 중국 사람들은 이기지 못할 상대와
싸움이 붙으면 목소리가 커진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그 대상은 상대방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지지를 해달라고 호소하며 동의를 구하는 내용들이다.
(나를 포함하여) 한국 사람들 같으면,
매표소 직원에게 따지기도 하고 인터넷에 올리겠지만, 중국 사람들은 감히 권위에 대항할 방법이 없으니, 주변 사람들에게 나의 억울함을 알리고 지지를 구한다.
그리고?
선동을 한다~!!!
"동지들, 우리 같이 갑시다~~~"
이런 식이다.
같이 뭉치면 돌덩이도 물 위에 뜨게 할 수 있다.
그러기에 중국에선 공식적으론 집회가 금지되어 있다.
민중들의 집회와 봉기로 세워진 나라가,
우습게도 이젠 사람들이 모이는 것을 무서워하는 나라가 된 거다.
갑자기 얼마전.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내 회사 동료는 하얼빈 공항에서 똑같은 경우를 겪었다고 한다.
4시간 연착되던 비행기가 도착공항 기상악화로 결국 취소가 되었는데, 한 목소리 큰 아저씨가 나오더니 사람들에게 크게 외쳤다고 한다.
"동지들~!
우리 동북 사람들의 기개와 힘을 보여줍시다~!!!
폭풍 속에 서있는 저 비행기를
하늘 높이 띄어봅시다~!!!"
세상에나~~
전화해보니 베이징은 천둥번개로 이미 아수라장 이었다고 한다.
그 동료는 마음속으로 싹싹 빌었다고 했다.
제발 아저씨가 입 닥치고, 비행기는 저 자리에 서있기를~!!!
그 아저씨 말대로 비행기가 떴다면 아마도,
친구를 포함한 모두가 구름 위로 올라갔을진 몰라도,
아마 지금까지도 내려오지 못했을 거 같다.
나는 손을 들면서 눈치를 보다가
슬슬 숫자를 세기 시작한다.
10분 정도 남았고,
내 앞으로는 이제 두 명의 사람이 있다.
그런데 이 매표소 누님....
속도가 심상치가 않다.
짜증 난 얼굴로는 일부러
천천히 표를 끊고 거스름돈을 준다.
다시 사방에서 난리가 났다.
"빨리빨리 해~!!!"
"뭐 하자는 거야, 지금?"
그런 소리를 들으면서도,
심장 강하신 대륙의 누님은 의도적으로 보라는 듯 더더욱 느리게 표를 끊고 있다. 나는 점점 조급해진다.
5시까지 표를 받아야 하는데......
그리고, 기적처럼 내 차례가 다가왔다.
"쑤저우요~!!!"
급하게 이야기한다.
남은 시간은 이제 3분?
초조하게 나는 시계 초침을 바라본다.
사람들은 이제 나에게 빨리 표 끊으라고 아우성이다!
"어디?"
짜증 섞인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들려온다.
"쑤저우요~ 쑤저우~~"
장내는 이제 고함소리로 난리가 아니다.
뒤에서는 알지 못할 욕설들이 섞여서 들려온다.
휙~표 한 장과 거스름돈이 나헌테 던져져 나온다.
나는 옆으로 비켜서서 표를 받곤
거스름돈을 가방에 넣는다.
그리고 고개를 든 순간,
누님은 매표소 구멍을 다시 막아버리고, 미련 없이 가방을 들곤 뒤도 돌아보지 않곤 자리를 떠버린다.
시계는 5시 1분,
이제 사람들이 난리가 났다.
내 뒤에 사람들이 욕설을 하며 밀려들기 시작했고,
저 멀리선 공안들이 사람들을 밀치고 힘겹게 다가온다.
심상찮은 분위기에 나는 급하게
가방에 표와 거스름돈을 쓸어담곤 자리를 떴다.
저 안에 있다간 잘못하면 밟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급한 걸음으로 화장실부터 간다.
한숨을 돌리곤 얼굴에 땀들을 씻어내며 생각했다.
저 누님은 퇴근길에 무사할까?
한바탕 전쟁을 치러서일까?
나는 터덜터덜 밖으로 나와 역 옆에 있는 버거집으로 올라간다. 매장 안은 사람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들로 가득하다.
처음부터 이러진 않았으리라.
설날 때 이 많은 인파들이 계속 밀려드니, 하늘을 저주하며 치우던 아르바이트 직원이 결국 포기한 것 같다는생각이 들었다.
햄버거 하나에 따듯한 커피를 받아 들곤,
그나마 가장 깨끗한 테이블을 찾아 앉았다.
표에 나와있는 시간을 보니
저녁 11시 가 넘어야 출발한다.
지금 시간이 6시니 어딘가에서
다섯 시간은 기다려야 한다는 말이다.
움직이고 싶지만 창 밖의 사람들을 보곤,
나는 이내 포기하고 만다.
사람의 바다가 있다면,
아마도 이런 모습일 거야.
저 사람들의 파도를 뚫고 지하철 역으로 가서,
어딘가에서 있다가 다시 돌아올 엄두가 나질 않는다.
테이블 건너편 구석에는 노란 머리 외국인이 앉아서 열심히 노트에 무언가를 적고 있다.
평온한 그녀의 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그녀에 눈에는 이 광경들이 어떻게 보일까?
내가 방금까지 굉장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하마터면 기차를 타지 못할뻔 했다는걸 알까?
아직도 시끄러운 사람들의 고함소리가
귓속에서 '윙윙' 하고 맴도는 것만 같다.
나는 그대로 테이블에 고개를 숙인다.
누가 훔쳐갈지도 모르니 가방은 다리 위에 얹어놓고... 창 밖의 어둑어둑한 풍경을 본다.
하나 둘 켜지는 불빛이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시끄러운 소리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곤 옆을 쳐다보다가, 곧 내가 내었던 소리임을 깨달았다.
건너편에 그녀가 키득 거리며 웃고 있다.
(그런데, 따지고보면 나도 외국인이다)
나는 얼굴이 빨개져 밖을 쳐다본다.
플랫폼에 알록달록 불들이 모두 들어왔다.
시계는 흘러 흘러 10시를 넘겼다.
나는 슬슬 일어나 다시 역 안으로 들어간다.
하루가 너무나 길다는 생각이 든다.
또 얼마나 멀리 기차를 타야 할까?
표에는 다음날 아침에 도착하는 일정으로 되어있다.
7시간을 기차를 타고 가야 하는 여정.
이제 기차를 타면 정말 '바이바이 항저우' 다.
나는 길게 심호흡을 하고 플랫폼 안으로 들어섰다.
안녕, 이 애증의 동네야…
《 아직도, 항저우 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