쑤저우행 야간열차

나의 항저우 탈출기? #3

by Le Studio Bleu
기차에 몸을 싣는 사람들


역 안은 어두웠다.

시계는 11시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


나는 사람들과 함께 대합실에서 기차를 기다라다 개찰구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거대한 사람들의 물결이 나를 기차로 밀고 있었다.


어둑어둑한 전구빛들 아래로,

차가워진 공기에 맞닿은 사람들의 입김이 하얗게 올라온다. 고개를 돌려 돌아보니 사람들의 머리와 하얀 김들만 보인다.


기차역으로 들어가는 통로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저기 플랫폼 앞으로 출발을 기다리는 기차가 보였다.

녹색 페인트 옷을 입은 낡아 보이는 기차.


예열을 하는 중인지 '치이익~' 하는

증기엔진 소리가 들리고,

매캐한 엔진 증기가 목을 따갑게 했다.


중국의 기차는 당시만 해도

여러 가지 체계로 운영되었다


간단하게 생각하면 우리나라의

KTX, 새마을, 무궁화 정도를 생각하면 될까?


하지만 최대 운행시간이 5시간에서 왔다갔다

하는 한국과는 스케일이 다르다 보니,


열차에 중요하게 추가되는 칸이 있는데

바로 '침대칸(워, 卧)' 이다.


그러면 침대칸이 없는 일반 좌석 기차는?

그냥 좌석칸(쭈어, 座) 라고 부른다.


더하여 소프트(?) 한 정도도

기차의 급을 다르게 하는 큰 요소다.


무슨 말인고 하니~~

침대와 의자도 같은 것들이 아니라는 말씀.


정확히는 부드러운(루안, 软) vs 딱딱한(잉, 硬)

의자와 침대가 있다.


이것들을 조합해보면~

2 (의자 or 침대) x 2 (좋은 거 or 나쁜 거) = 4가지


기본 조합은 저렇게 네 가지이지만,

여기에 조금 더 조합이 들어간다.


벼락 맞고 사고가 나긴 하지만

날아다니는 기차들인,


1. 중국판 KTX 까오티에

(G 高铁, 300~400킬로,

제일 빠른데 한글로 이름은 '고철' ㅠㅠ)


2. 그 아래 등급인 동처

(D 动车, 200~250킬로,

두 번째로 빠르지만 역시 이름 때문에

한국인들에겐 '똥차'라 놀림받는 비운의 기차)


3. 더 아래 등급인 청지

(C 城际. 120~200킬로, 도시 간 단거리 구간용)


그냥 생긴 대로 달리지만

이름은 멋진 기차 형제들,


4. 직통특쾌속, 즈따터콰이

(Z 直达特快, 160킬로,

이름은 멋지지만 그래 봤자 일반 기차)


5. 특쾌속, 터콰이

(T 特快, 140킬로,

직통이 아닌 관계로 조금 시간이 걸림)


6. 쾌속, 콰이수

(K 快速, 120 킬로, 중국의 무궁화호?)


7. 보통쾌속, 푸콰이

(그냥 숫자로 네 자리, 普快,

대중없는 속도~ 많은 정차 거리)


그리고 이름 그대로인 기차,


8. 임시, 린쓰

(L 临时, 설날이나 공산당 생일처럼 특별한 날

증편되는 기차들)


간단하게만 적어도

저 정도 규모의 기차들이 대륙을 질주하면서,

넘치는 사람들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음..... 저걸 다 조합해 보면.....

2(의자 or 침대) x 2(좋은 거 or 나쁜 거) x 3(날으는 애들) x 4(이름만 멋진 애들) = 48가지(?)


(이 이상의 기차들 조합은 문과생인 제 머릿속엔 상상하기 어렵군요. 적당히, 땅이 넓은 만큼 기차도 겁나게 많다고 생각하시면 맞으실 거예요 ^^)


저기 멀리 있는 기차를 보면서 나는 생각한다.

오늘 저녁에 내가 타야 하는 차는 어떤 애일까?


잉쭈어콰이수(硬座快速),

'안 좋은 의자를 가진 적당히 빠른 무궁화호'

정도 될 것 같다.


직장인들이 보통

딱딱한 의자칸 기차를 타기는 쉽지 않다.


어느 정도 소득을 버는 중국 사람들도

여행은 비행기나 고속철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하물며,

밤을 새우는 여행에 익숙지 않는 한국사람들은 보통 기차를 탄다면, 몸을 누울 수 있는 침대칸 기차를 선택한다.


그러기에 나는 오늘의 기차여행이 왠지~~ 설렌다.


음,

예전에 오래된 중국 사진첩들을 보다가 본

열차 풍경들을 만날수 있지 않을까?


중국의 기차 풍경 모습 (1990년대), 적어도 요즘은 창문으로 기차를 타진 않는다


꾸역꾸역 사람들이 밀려 들어온다.

나는 배정받은 자리로 가서 가방을 끌어안는다.

오늘 아침부터 있었던 일들을 하나씩 되돌려본다.

굉장한 하루였다!


서호와 이별하고,

임시정부 건물도 다녀오고,

배는 사라지고 기차를 타지 못할 뻔했다.


폭동을 일으킬 것 같던 아저씨들은

아마 조용히 돌아갔을 것이다.


아무리 대들어 본들 중국의 무지막지한 공권력을 이길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 아저씨들은 내일이나 되어야 이 곳을 벗어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비좁던 입구도,

딱딱한 의자도 왠지 편안해진다.


어떻게든 나는 여기까지 왔다.

그런 생각이 드니 뭔가 내가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다.


기차에 사람들이 점점 들어오기 시작했다.

모두가 설날을 이용해 집으로 돌아가려는 농민공 아저씨들이다.


내가 탄 이 기차는 앞에서 보았다시피,

별로 내세울 것 없는 야간 기차이다.


빠르게 가지도 않고,

편안한 침대를 가지고 있지도 않다.

또 중간에 정차하는 역이 많다 보니 시간도 까무러치게 많이 걸린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해보면,

시간이 많이 걸리기에 야간 기차로는 딱이다.

거기다 구린 옵션을 가지고 있으니 가격이 싸다.


그러니 이런 기차에는 상대적으로

낮은 소득을 가지는 사람들이 몰리게 되어있다.


오늘 나의 옆에 앉아있는 많은

농민공(农民工) 아저씨들이 그들이다.


잘 씻지도 못해 머리는 기름지고,

옷들은 칙칙한 무채색 계열이다.

치아관리는 당연히 잘 되어있지 않고,

음.... 조금 냄새도 난다.


이런 사람들 대부분은 상대적으로 도시로 품팔이를 하러 온, 중국 농촌 출신의 사람들이 많다. 산업화가 되어가는 어느 나라에서든지 나타나는 도시 유입 인구들의 모습이다.


도시에 기반이 없고, 세련되지 못한 옷차림에 낮은 임금으로 버티기에 도시 중국인들에게도 차별받는 존재들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들을 빼놓곤

현대 중국의 경제 발전을 이야기할 수 없다.


일전에 에피소드에서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햇볕도 들지 않는 어두컴컴한 골방에 살면서 도시의 거주민들의 삶을 유지시켜주고 있다.


사실 나는 너무 겁이 났다.


일단 이 아저씨들이 내가 잠든 사이에

하나뿐인 카메라를 가져가면 어떡하지?

이런 두려움뿐이었다.

(기차에서 찍은 사진이 적은 이유이다).




기차는 점점 사람들이 차기 시작한다.


다들 고향으로 가는 생각에서인지 밝은 표정으로 짐을 가득가득 가지고 기차에 오른다. 자세히 보니, 손에는 커다란 포대자루를 여러 개 들고 올라온다.


체구도 조그만 사람들이 자기 몸만큼 커다란 자루들을, 아무런 뒤뚱거림도 없이 잘 들고 올라온다.


팔뚝을 보니 오랜

노동으로 단련된 잔근육들이 보인다.


건너편 비좁은 자리에는 가족들이 앉는다.

4인 테이블에 가족들이 앉아있는데, 자세히 보니 가족은 여섯 명이다.


어린아이 둘이 있다.

저 아이들은 어떻게 데리고 탈 심산일까?


나의 이런 궁금함에 대답이라도 하듯,

분주한 자리 배치가 시작된다.


어른 넷이 테이블에 앉고, 자기들이 가져온 짐보따리들을 테이블 아래 깔기 시작한다.


그리고....

체구가 작은 아이 둘을 갑자기 테이블 아래

(정확히는 어른들의 발쪽으로) 에 눕힌다~!!!


어른들의 아래쪽 자리는 아이들 차지가 되었다~@.@!!!

이미 기차 바닥은

사람들이 널어놓은 짐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나는 난장판 기차 안을 가만히 쳐다본다.


이 복잡하고 정신없는 기차 안에서도 사람들은 들떠있고, 어느 누구 하나 짜증내는 사람들 없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서 그리고 발아래에서,

아이들은 세상모르게 잠들어 있었고,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여행이 끝날 때까지 아이들이 그냥 그렇게 자는 모습으로 있는 게 좋을 거란 생각을 했다.


매캐한 담배연기가 피어오른다.

공식적으로 기차 안은 금연이지만,

아저씨들에게 뭘 바라겠는가?


누군가가 피기 시작하자 금새,

여기저기서 담배들 꺼내 들곤 피기 시작한다.


나는 가방을 앞으로 안고 조용히 눈을 감는다.

따지고 보면, 중국 생활을 하면서 농민공 아저씨들을 이렇게 가까이 본 것은 처음이다.


어느 외국인이 굳이 밤중에 이런 기차를 골라타고, 7시간을 냄새와 시끄러움과 담배연기를 감수하며 가려고 할까?


나는 왼쪽 눈은 감아서

메운 담배연기를 피하면서도,

오른쪽 눈은 살짝 떠서 그들의 모습을 본다.


조심스러운 호기심은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는 멋진 열쇠니깐!


'덜컹' 거리던 기차가 이제 출발했다.


커다란 기차가 힘겹게 바퀴를 굴리고 있었고,

창 밖으로는 아무런 불빛 없는 어둠뿐이다.


참고로 이 차는 냉난방 시설이 없다.


아무리 남방이라고 하지만, 2월의 차가운 공기가 고스란히 기차 안으로 들어온다. 이 추위를 버틸 수 있는 건, 많은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열기와 따듯한 음식들 밖엔 없다.


한참을 달리는 기차 안에서

눈을 감고 있던 나의 엉덩이가 갑자기 아파왔다.


나는 핸드폰을 꺼내 시계를 바라본다.

시계를 보니 새벽 2시가 되어간다.


지독하게 나의 발목을 잡던 항저우를 빠져나가는 것은 이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주변을 돌아보니 아직도 사람들은 들떠서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다.


배가 고파오는지 사람들이 준비해온 컵라면들을 꺼내서 먹기 시작한다. 이내 기차 안은 수북하게 컵라면 그릇들이 쌓여간다.


더하여 커다란 포대자루 안으로

아저씨들이 손을 집어넣는다.


나는 아까부터 저 커다란 자루들이 신경이 쓰였다.


도대체 저 안에는 뭐가 들어있길래, 까지집을 머리에 인 아저씨들이 싱글벙글하며 자루들을 들고 들어왔을까?


자루의 입구가 열리자 안이 훤히 보였다.


'아~!


자루 안에는 ‘마늘’ 이 가득 들어있었다.

껍질도 까지 않고 바로 밭에서 수확해 온 듯한 마늘들이 포대자루 가득가득 들어있었다.


'저 돈 없는 아저씨들이

고향에 설날 선물로 가져가나 보다...'


나는 자루를 보며 막연하게 생각했다.

어른들이 분주하게 배낭에 손을 넣더니 갑자기 비닐들을 꺼낸다.


꾸깃꾸깃 처박혀있던 비닐들이 펴지자,

안에서는 동그란 밀가루 전병들이 나왔다.


노릿하게 구워져 동그랗게 잘려진 '난' 들이

비닐 안에서 나왔다.


인도 음식점에서 보이는 '난' 빵들. 곱게 빚은 밀가루 피는 중국에서도 많이 먹는다


나는 저 '난'으로 뭘 할지가 궁금해졌다.


아저씨들은 라면 국물을 들이켜면서,

노릇한 난들을 테이블에 펴더니

갑자기 포대자루 안에 '마늘' 들을 꺼내었다.


그리곤 모두가 모여 열심히 침을 튀겨가며,

마늘 껍질을 벗기기 시작한다.


안 그래도 묘하게 매콤한 냄새를 풍기던 마늘 냄새가 기차 안에 가득해졌다. 그리곤, 담배 연기와 마늘냄새가 섞여 ~ 희한하게도 마늘을 굽는 것 같은 냄새가 난다.


노릇한 마늘 알맹이들을 입안에 넣기도 하면서(?) 열심히 마늘 껍질을 까던 아저씨들은, 깐 마늘 알맹이들을 '난' 한쪽으로 널어놓는다. 그러더니 태연하게 난을 반으로 접어, 씹어먹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마늘빵' 을 만들어 먹는 아저씨들을 나는 곁눈질하면서 보다가, 나중에는 눈을 바로 뜨곤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생마늘을 난에 넣어 샌드위치처럼 먹는 모습, '갈릭빵' 의 원조는 이런 모습이었을까?


배가 고파왔던 나도 배낭에 손을 넣는다.


어제 샀던 캔커피 두 개가 아직 남아있고,

초코바 하나가 남아있었다.


나는 커피에 초코바를 먹으며,

기차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마늘의 향연을 신기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누군가가 갑자기 나의 팔을 흔들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오른쪽에 앉은 나이 든 어르신이 갑자기 나에게 생마늘과 난을 건넨다.


나는 미소를 띠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어르신은 막무가내로 나의 손에 마늘 넣은 난 하나생마늘 세 개를 쥐어준다. 머쓱해진 나는 남은 캔커피 하나를 건네었다.


그리곤, 조심스럽게 마늘빵을 입에 넣어본다.

(원래 나는 고깃집에서도 마늘을 구워 먹지, 날 걸론 먹지 않는 사람이다~~)


으적으적 하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식어버린 난과 그리 맵진 않는 마늘이 입 안에서 춤을 춘다. 그렇게 나쁘진 않은 맛이다.


기분이 좋아서일까?

고향으로 가면서 들떠있던 사람들은 사방에서 마늘을 까서,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끼리 나눠먹으며 연신 자기들의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다.


이렇게 마늘을 먹고 나자,

몸에서 열이 나기 시작했다.


두 시가 넘어가면서 점점

차가워지기 시작하는 기차 안의 공기.


이렇게 사람들은 발열재를 먹고, 옆사람들과 떠들며 고향까지 체온을 유지하는 것 같다.


한쪽에서는 투박한 핸드폰을 가지고도 사진을 찍고 있었고, 엄마들은 잠든 아이들을 깨워, 따듯한 라면 국물과 마늘빵을 먹이고 있다.


평소 도시 생활에서는

말조차 섞을 기회가 없었을 사람들.


사투리 가득한 방언을 들으면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이 사람들의 모습이 정감있게 보였다.

사람들이 사는 풍경이다.


2020년,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에서 리커창 총리가 이야기했다.중국 인민의 절반인 6억 이상이 아직도, 한 달에 1천 위안(17만 원)이하의 소득으로 살고 있다고.


대도시의 살면서, 높은 건물과 으리으리한 차림의 사람들을 보고 다녔던 나는 예전이라면

'중국 놈들 또 무슨 엄살이야~' 라고 이야기를 했을거 같다.


하지만, 이 기차 가득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나서는 그 말이 사실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그러지 않을까?).


그리곤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기차의 느린 속도만큼이나

중국은 아직도 갈 길이 멀겠구나.


사람들 사이에 계급이 있다는 말을 나는 좋아하진 않는다.

아니 그러면 안되지 않을까?


하지만 슬프게도,

세상 많은 곳에서 나는 계급이 나눠진 사람들을 본다.

이 기차안에서도 또 다른 계급의 사람들을 마주한다.


비행기와 고속철을 타고 날아다니는 중국인들은

람보르기니를 몰며, 백화점 명품 매장의 물건들을 싹쓸이할 정도로 돈을 뿌리고 다닌다.


하지만,

적어도 많은 중국의 농민공들은 느린 기차에 앉아 마늘 넣은 빵에 즐거워하며, 그래도 기차가 느리게나마 움직이고 있음에 감사한다.


커다란 중국이란 나라의 매력은 이런 것 같다.


48가지 (더 있을지 모르지만 일단 내 머릿속에 분류로는) 조합이 나오는 기차들,


고디바 초콜릿을 찾는 도시 사람들과

생마늘을 태연하게 먹는 시골 사람들,


이 극과 극의 사람들이 커다란 철로 위에서,

같은 공간에서 다른 속도로 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내가 이런 나라의 지도자라면

어떻게 이 상황을 관리해야 할까?


48가지나 되는 기차들을 모두,

KTX급의 기차로 변화시키는 것이 옳은 길일까?


아니면,

빠르던 느리던 기차가 멈추지 않고 굴러가고 있다는 느낌을 모두에게 주는 것이 답일까?


현재로는 이러한 속도의 차이가

좁혀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그럼에도 이 커다란 시스템이 유지되는 이유는,

워낙 가난했던 대다수의 인민들에게 공산당이,

적어도 어제보다는 오늘의 삶이 낫다는 느낌을 심어주고 있기 때문일 거다.


자신들이 탄 기차가 영원히

앞의 기차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

중국 경제라는 커다란 기차가

멈추거나 거꾸로 달리기 시작할 때,


맹숭한 마늘과 라면 국물로 만족하던

이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나는 잘 모르겠다.


다만 공산당을 너무나 사랑하는

이 농민들의 순박한 마음을 제대로 잡지 못한다면,

중국이라는 커다란 기차는 탈선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느낌은 든다.




세 시가 지나고 이제, 기차 안의 불이 다 꺼졌다.


차가운 공기 아래, 소란스러운 사람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모두 입을 다물고 조용해졌다.


순간순간 변화에 잘 순응하는 것도

이 나라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라 생각한다.


여기저기서 갑자기 코 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창 밖은 그 흔한 불빛 하나 없다.

나는 가방을 손에 쥐고 창밖을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내일이면 새로운 곳에 도착할 거다.

하루가 이렇게 길 수도 있다고 느낀 건,

유격훈련장에서의 행군 이후 처음인 것 같다.


환기 안 되는 자극적인 마늘냄새와 흙냄새 배어있는 옷들 냄새, 가끔씩 들리는 잠꼬대마저도 정겹다.


아까 먹은 마늘 때문일까?


트럼할때마다 계속 마늘냄새가 올라오는 것 같다.

나는 눈을 뜨고 주변을 둘러본다.


이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향해 길을 간다.

테이블 위에 놓인 컵라면 수를 세어본다.


어림 잡아도 이 칸에서만 80여 개 정도를 사람들이 먹어치운 것 같다.

(이보다 더 좋은 장사가 있을까?)


예전에 대기업 전자회사에 다니는

선배의 블로그에서 본 글이 생각났다.


2000년대 초반에 중국으로 출장을 갔던 선배는

임원을 모시고 출장 중이었다.


렌터카 차창 밖을 바라보던 임원이

길거리에서 노점 하는 중국의 시민들을 바라보며,

선배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고급 자동차를 공략하고자 했던 한국 자동차 회사들이 대박을 낸 곳은 오히려 서민 택시 분야에서였고,

야심찬 한식 프리미엄 비빔밥 보다도 먼저 대박을 첬던건 일반 서민들이 먹던 초코파이였다.


대만에 머리 좋은 아저씨는 이렇게 나처럼 후진 기차를 타고다니며 팔리지 않는 물건들로 고민하다가, 자신이 먹는 컵라면을 신기하게 쳐다보던 중국 서민들을 보곤 영감을 얻어 컵라면 장사로 떼돈을 벌었다고 한다.


고급 호텔에서 묵으면서,

중국의 부유층만을 상대하고자 했던

선배 세대의 오만함이 어쩌면,


중국 서민들이라는 또 하나의 기회의 시장을

놓쳐버리게 한건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긴,

나 역시 회사에서 항상 검토하던 중국 신규사업 계획 보고서에도, '하이앤드', '프리미엄 브랜드' 같은 겉멋 들은 말들이 가득했으니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내 무릎 위로 뭔가가 '툭' 하고 떨어졌다!


졸음에 겨워 갈대처럼 휘청이던

옆 사람의 머리가 내 무릎 위로 떨어진 거다.


기름기 가득 넘치는 머리를 조심스래 옆으로 밀어내며 나는 속으로 말했다.


'아오~~~저에게 왜 이러시나요 ㅠㅠ'


기차는 계속 굴러가고 있었고,

나의 무릎은 그렇게 옆사람의 머리와

밀어내기 티키타카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새로운 하루가 또 열리려 하고 있었다.


《 쑤저우행 야간열차 안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