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항저우 탈출기? #5
검색을 끝내고 나는 역 안으로 들어간다.
역무원에게 쑤저우행 열차가 언제 있는지 물어본다.
그녀는 직통 기차가 있는데 내가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니, 아마 새벽에 도착 할거라고 했다.
그럴 바에는 비용이 부담되지 않으면 ,
남경(南京)으로 이동해서 고속철을 타라고 조언해 준다.
나는 표를 끊고는 대합실에 앉아 기차를 기다리며 생각해본다. 기차는 40분 후에 출발이라고 한다.
거울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 부분이 점점 눈에 들어오곤 결국에는 성형외과로 향하게 된다고 했다.
계속 나의 실수가 생각이난디.
조그만 역의 철로 위로 바람이 분다.
먼지가 날리고 종이들이 날아다녔다.
갑자기 예전에 대학 선배의 모습이 생각났다.
어느 학교에나 있을 법한 졸업시기를 놓쳐버린,
하지만 그럼에도 고시 로또를 꿈꾸며 도서관을 지키고 있는 고인물 선배들이 있었다.
지금은 뭐라고 부르는지 모르지만,
우리 때는 그런 선배들을 '화석'이나 '암모나이트' 라고 불렀다.
그중 한 선배는 유독 도서관에서 나만 마주치면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다. 오랜 면벽수련 같은 고시 생활에서,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나 보다.
아무튼,
담배도 피우지 못하는 나를 끌곤 내려가,
담배연기 풀풀 날리는 도서관 흡연실에서
나에게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인생 교훈 이런 이야기들을 했다.
하루는 궁금해졌다.
세상 가장 유식해 보이는 선배가
계속 고시에서 미끄러지는 이유가 뭘까?
내가 들은 이야기만 사람들 앞에서 해도,
선배가 만약 지금 있다면,
유명한 유튜버가 되어있을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선배는 시대를 잘못 타고난 것이 확실하다!)
어느 날,
나는 눈을 딱 감고 선배에게 물어보았다.
"형님, 그런데 형님 예전 생각날때 막 있잖아요?
낙방한일 생각나고 그런데, 계속 떠오르고 할 땐
어떻게 해요?"
담배 연기를 다 들이킨 선배가 나에게 이야기했다.
"잊어버려."
"에이, 그래도 계속 생각나는데 그게 되나요?"
선배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아... 오늘도 강의 시간인가 보다 하며
나는 선배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야, 너 경제학 베웠잖아. 원론책에 뭐 나오냐?
성큰코스트(Sunken Cost), 들어봤지. 그 뭐냐?
매몰비용~ 응?
말 그대로 사라진 비용이야.”
생각해보니 그런 단어가 있었던듯 하다.
역시 고시생 ...
근데 형님은 사법고시생 아냐?
경제학 원론은 왜 보지?
나는 순간 '아' 했다.
그래, 분명 얼마 전 베운 교과서에 그런 말이 있었지.
내 입에서 자연스럽게 말이 나왔다.
"그냥 망한 거네요?"
순간 멈칫하던 선배가 크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네, 걍 잊어버려.
인생 간단하잖아~!"
망했을 때 마음가짐에 대하여 교과서에 나와있다니,
이 문제는 인류를 괴롭히는 오랜 문제였던 거다.
참고로,
간단하게 세상을 사시던 암모나이트 선배는 몇 년의 낙방을 하곤, 깔끔하게 본인의 가르침에 따라, 건축설계와 미장일을 베워 멋진 삶을 살고 계신다.
(문과생이 건축이라니~ 사람은 다 자기길이 있나 보다, 인생 참~).
"형님, 후회 안되세요?"
아마 내가 이렇게 물어본다면,
그는 간단하게 대답할 것 같다.
"인생 간단해, 걍 잊어버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내 고민도
성큰코스트(매몰비용) 이다.
경제적 인간이 되어 생각해보자.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다시 항저우역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정신 건강을 위해 잊어라!
선배의 이야기를 생각을 하니 맘이 편해졌다.
기차가 멀리서 들어왔다.
나는 빨리 뛰어서 갔다.
연휴에 배정된 열차들은 가끔씩 차량을 늘려서 다닐 때가 있는데, 내가 탈 차편이 그런 것이었다.
표에 자리 번호가 없다.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역무원에게 차근차근 물어보았고,
그녀의 이야기인즉슨,
먼저 앉는 사람이 임자라고 했다.
맨 앞 칸의 차량으로 그렇게 나는
슬라이딩해 뛰어들어 갔다.
저기 남는 자리가 보였다.
4명이 앉는 둥그런 테이블이다.
시간은 8시가 되어간다.
자리에 앉아있는데 누군가가 앞에 앉았다.
왜소해 보이는 체격의 남자와,
비슷한 체격인데 조금은 남자에겐 벅찰 것 같아 보이는 여자 커플이었다.
방한용 점퍼를 입어도 추운데,
둘은 가을용 코트를 입고 내 앞에 앉았다.
기차에 타자 나는 다시 긴장했다.
일단 잠을 자던가 해서, 환승역인 남경을 지나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한껏 신경이 곤두서 있는 나의 앞에서
둘은 컵라면을 꺼내 먹기도 하고, 챙겨 온 과일도 먹으며, 다정한 커플의 모습을 연출하고 있었다.
과일을 먹던 그들이 나에게 과일을 건네었다.
나는 웃으며 괜찮다고 했지만,
나의 손에 귤 하나를 쥐어준다.
'음.... 내가 불쌍하게 보이는 건가?'
어제저녁부터 계속 나에게 무언가를 주려는 사람들.
도시의 무뚝뚝한 사람들 사이에서 있던 나에겐,
이런 순박한 사람들의 선행이 계속 낯설게만 보였다.
이들의 선행이 아무런 대가가 없음을 깨닫는 데는
앞으로도 오랜 시간이 걸릴 터였다.
나는 자세히 둘을 관찰한다.
동글동글한 얼굴의 아가씨는 예전 중국 전통화 그림에서 본 당나라 시대의 미인도를 보는 것 같다.
마른 몸매에 자기 몸보다 큰 양복을 입고 있는 남자는.누군가 닮았는데... 하다가 나의 머릿속에 그 누군가가 떠올랐다.
약간은 불쌍한 얼굴에 가수, 김C 가 생각났다.
아무튼 대륙의 김C 를 만나곤
나는 신기해하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귤 하나로 그들과 친해진 느낌이다.
이내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기 시작한다.
한국에서 왔다는 나의 말에 굉장히 신기해한다.
얼마나 한국이 머냐고 물어보는 그들의 말에,
'음... 비행기 타면 두 시간 정도?' 라 대답해 주었다.
그러자 나의 말에 빙그레 미소를 짓는다.
'왜 웃는거지?' 라고 물어보는 나에게,
그들은 자기들은 비행기로 세 시간의 거리에서 왔다고 했다.
'뭐야?'
의아에 하는 나에게 둘이 이야기했다.
자기들은 저 멀리 위구르 지역의 '우루무치' 에서 왔다고 했다. 내가 아는 '우루무치'라면, 중국의 서쪽 끝에 있는 곳인데... 그곳이 맞다고 했다.
신기하게 바라보는 나에게,
그들은 5년 만에 집으로 가는 거라고 했다.
직장에서 만난 자신들은 이번에 결혼 허락을 받으러 가는 길이라고 했다. 그녀의 집은 동쪽 끝에 있는 산동성 칭다오.
그래서 그들이 달려온 시간은...
오늘 기차를 탄 시간까지 해서 3일이 되었다고 했다.
세상에 .. 결혼 허락을 받으러 3일이나 걸려서 가다니. 비행기를 이용 못하는 이유는 주머니 사정일 거라 생각하니, 조금은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무슨 사연이 있어서 이들은
중국 동쪽끝에서 서쪽끝까지 일을 하러 떠난 걸까?
이들은 나와 같은 남경으로 간 후,
다시 기차를 타고 북쪽으로 올라간다고 했다.
제남을 거쳐 칭다오에 다다르면,
아마도 내일 오후는 되어야 도착할 거다.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잠깐 창 밖의 풍경들을 감상하였다.
하루만 이렇게 기차를 타도 힘든데,
3일을 달려온 저들은 엄청 힘들지 않을까?
물어보려고 고개를 돌리다가,
나는 서로를 지그시 바라보며 웃고 있는
둘의 모습을 보았다.
겨울 차창 안으로 아침 햇살이 한가득 들어온다.
그리고,
서로를 바라보며 말없이 미소 짓는 두 연인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처럼 나의 눈에 들어왔다.
나는 조용히 못본척 미소를 지으며
다시 창 밖을 바라본다.
모든 것에 늦기만한 바보여행자에게
삶이 준 또 하나의 선물이다.
저들이 어떻게 힘들 수 있을까?
인연에 이끌린 두 별들이 지상에서 만나,
서로의 눈을 마주보며, 같은 궤도를 달리고 있는데.
만약 이 여행이 나 혼자가 아니었으면 어땠을까?
아냐 아냐,
누군가에게 이번 여행 같은 고생을 시켰다면,
아마 나는 뺨을 돌려가며 하루 종일 맞았을것 같다.
창밖을 보며 기분이 좋아졌다.
험한 여행자의 길이지만 서로 눈을 바라보며,
사랑하고 있는 연인들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일거다.
동쪽 끝과 서쪽 끝에서 나고자란 그들은
어느 땅에서 만나 서로 그렇게 사랑하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영원히 나아갈 거란 생각이 든다.
겨울 바람을 가르며,
기차는 남경역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 남경역 근처, 고속철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