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중제일 후취우
가끔씩 한국 밖을 여행하다 보면,
우리 말과는 비슷하지만 뜻은 다른, 재미있는 단어들이 우리에게 웃음을 선사할 때가 있다.
북경의 우리 동네에는 자신을
<병신> 이라고 소개하는 사장님이 계셨다.
신은 신인데 '병신' 이라니?
무슨 사연인지 들어보니,
자신은 평생을 전병을 구워서 '병신' 이라고 했다.
의미인즉슨,
<전병의 신> 인거다.
어느 날,
퇴근길에 오늘은 얼마나 크게 전병을 굽나 신기하게 구경하는 나에게 아저씨가 전병 자랑을 늘어놓았다.
어릴적 기름통을 들기 시작했을 때부터,
전병 굽는 일을 도왔다는 아저씨는 이제는 눈감고도 전병을 피자처럼 크게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한참 신이 나서 이야기 하사던 그는 한 술 더 떠서,
자신이 '한국' 에 꼭 회사를 내고 싶고 그때가 오면, 회사 이름을 <병신> 으로 하시겠다고 했다.
(아이고.... 사장님.....)
전병을 그리 좋아하지 않던 나였지만
딱히 아저씨의 이글거리는 야망을 누를 길이 없었기에 웃으며 고개만 끄덕였다.
어느 날은 살짝 주의를 돌려서,
'병신' 보다는 '전병의 신' 이 더 낫지 않겠냐고
아저씨에게 건의(?)를 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완고하신 사장님.
두 음절의 단어가 왠지 힘 있어 보이고
입에도 '착' 달라붙는다고 한다.
그래서 무조건 자신은
<병신> 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헹....고집 센 동북사람 같으니~!)
물론 다행히도 아직까지 한국의 거리에서
아저씨의 가게의 간판을 보진 못했다.
장소를 바꿔서 이곳 소주에는 멋진 산이 하나 있다.
산이라곤 하지만,
한라산이니 북한산이니~~
돌덩어리 가득한 산이 많은 우리들의 기준에선, 여기는 그냥 나지막하게 솟아있는 작은 봉우리 언덕이다.
이 언덕의 이름은 후취우(虎丘) 산.
후추와도 발음이 비슷한 이 곳은 바로 소주에서 알려진 관광지이다.
그런데 갑자기 발음 이야기를 왜 꺼냈냐고?
한글로는 이 언덕의 이름이
<호구(?) 산> 이기 때문이다.
음, 왠지 피하고픈 단어지만..,
하지만 알고 보면 이 곳은 무려 왕릉 이다!
'호구' 는 한자적 의미로는 <호랑이 무덤> 이란 뜻이다. 그래서 정확히 이 곳의 이름은 <호랑이 무덤 산> 정도가 될 것 같다.
그럼 어떤 호랑이가 여기에 묻혀 있을까?
물론 앞에서 이야기했듯 이 곳은 '왕릉' 이니, 아마도 '호랑이라 불리는 왕' 이 이 곳에 묻혀있을 거다.
이야기는 거슬러 거슬러,
중국 진시황이 등장하기도 전인
<춘추전국> 시대로 올라간다.
지금도 교과서에 나와
학생들을 괴롭히는지는 모르지만?
수험생들을 괴롭히는 여러 것들 중에서
'사자성어' 라는 것들이 있다.
뭔가 4자의 글자가 담고 있는 많은 이야기들이 존재하는 약간은 까탈스러운 그런 단어들의 조합이다.
(그럼 아래의 단어들 중 몇 개나 들어보셨을지 테스트 타임 들어갑니다~~ㅎ)
<오월동주 (원수가 같은 배에 탔다... 이런.....)>,
<와신상담 (장작 더미 위에서 쓸개를 핥으며 복수를 꿈꾸다)>,
<굴묘편시 (묘를 파내고 채찍질하며 원수를 갚다)>,
<동병상련 (같은 아픔을 안고 서로 불쌍히 여기다)>
<일모도원 (해는 짧고 갈길은 멀다)>
<도행역시 (도리를 따르지 않고 무리하게 일을 행하다)>
<심복지환 (배속 종양같이 없에기 어려운 근심거리)>
<촉루지검 (촉루의 검... 으로 충신을 죽게 만들다)>
<장경오훼 (보스와는 '고'는 같이해도 '락'은 같이 할 수 없다는)>
<토사구팽 (사냥이 끝나면.... ㅠㅠ)>
<동시효빈 (주재도 모르고 남을 따라 한다(?)>
<서시빈목 (역시~~주재도 모르고 남을 따라 한다 ^^;;;>
이 많은 수험생을 괴롭히는 사자성어들이,
바로 '하나의 사건' 에서 나왔다고 한다면 믿을 수 있을까?
중국 사람들이 <오월대전(吴越大战)> 이라 부르는 역사가 그것이다.
장강 이남에 작은 나라들이었던 오나라 와 월나라.
친하게 지내도 존재감 없을 조그만 두 나라가
피 터지게 서로 쌈박질을 한다.
이게 그냥 단판제,
'한일전 축구시합' 같으면 그나마 괜찮겠지만,
그 정도가 아주 심했나 보다.
어느 정도였냐면,
아버지대의 원수를 기억하겠다곤,
장작더미 위에서 잠도 자고,
곰쓸개도 핥으면서 세상 쓴맛 다 보기도 하고,
전설 속의 미녀를 보내서 미인계도 써보고,
단체로 자기 목을 찌르기도 하고(?),
죽은 사람 시체를 무덤 속에서 꺼내선 미친 듯이 매질도 하고....
뭐 이런 막장에 난장판도 없었던 것 같다.
이 와중에 호구산의 주인공인 오나라의 왕,
'합려' 가 등장한다.
칼을 좋아하고 진정한 세상의 지배자가 되고 싶어 했던 오왕 합려, 야심만만했던 젊은 왕은 수도인 이 곳 소주에서 두 명의 천재 병법가들을 만나면서 날개를 단다.
한 명은 초나라에서 망명 온
용맹하고 강직한 장군, '오자서'.
그리고 다른 한 명은 무려
손자병법을 만든 병법의 대가, '손무' 였다.
이들의 조언에 따라 승승장구하던 오나라 왕 '합려' 는 이제, 뱃속의 종양과도 같은 적국, 월나라를 치려고 한다.
"아직은 때가 아니옵니다."
를 외치는 손무 와 오자서를 뒤로하고,
젊은 호랑이 왕은 월나라를 침공해 들어갔다가,
또 다른 천재 병법가 '범려' 의 계략에 걸려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만다.
(이 범려의 계략이란 것이.....
월나라 감옥 속에 죄수들을 꺼내와서 군대 앞에다 세워놓곤, <자기 목을 스스로 찌르는> 엄청난(?) 퍼포먼스를 오나라 군에게 보여주었다고 한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당황해하는 오나라 군을 향해,
뒤에서 대기하던 월나라 정예병들이 뛰어들어
상황을 정리해 버렸다고 하는데... 참.)
아무튼 거의 산송장이 되어 실려온 '합려'.
그는 아들 '부차' 에게 신신당부를 한다.
"아비의 복수를 해다오."
그리고
그 유명한 오왕 '부차' 의 와신(가시나무 장작더미 위에서 눕기) 생활이 시작된다.
졸지에 왕을 잃은 오나라 사람들은 비통함에 빠진다.
왕인 합려에다 첫째 왕자까지 전쟁에서 전사해 버렸으니, 이제 이 모든 복수의 공은 남은 둘째 아들, '부차' 에게 넘어갔다.
부차는 아버지를 위해
소주시의 이 작은 구릉에 커다란 연못을 만들고,
지금도 유명한 커다란 불탑을 만든다.
(무려 1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동원되어 손으로 하나의 거대한 왕릉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무덤이 지어지고 왕의 시신이 뉘어진 날,
호랑이 언덕 위엔 커다란 백호 한 마리가 나타나 사람들을 지켜보다가 사라졌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많은 사람들은 이 곳이 있는한
소주시를 호랑이가 지켜준다고 믿는다.
호구산의 야트막한 언덕을 올라가노라면,
처음으로 마주하는 곳이 바로
검지 (검의 연못, 剑池) 가 되시겠다.
검을 사랑했던 황제 합려,
그가 죽고 나자 아들 부차는 사람들을 동원하여 연못을 만들고, 아버지가 아끼던 명검 3,000 자루를 연못 아래 묻어 도굴을 방지했다고 한다.
'이 작은 연못 아래 왕의 보물이 묻혀있다고?'
에이.... 설마.
만약 사실이었다면 누군가가 벌써 가져갔겠지.
물론 이런 생각을 중국 사람들도 했었나 보다.
그래서인지 검지와 합려의 검들에 대한 전설들 역시 많이 남아있다. 그리고 이 보물을 탐냈던 사람들은 하나같이 유명한 사람들의 이름만 있다.
(중국의 많은 전설과 처럼 우연히도? ^^)
먼저, 진시황.
그런데 왠지 이 인간은 이런 짓을 했을 것 같다.
천하를 통일한 황제는
수도인 함양에서 수 백리 길을 달려와선,
애꿎은 폐활량 좋은 젊은이들을 퐁당퐁당
이 연못에 던져 넣았다고 한다.
언제까지?
검을 들고 올라올 때까지~!
지금 생각해보면, 산꼭대기에도 돌덩어리를 가져다 쌓는 '만리장성' 도 만든 그가 이 조그만 연못 하나를 어쩌지 못했는지는 미스터리지만(?)...
아무튼,
진시황의 보물 찾기는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다음은 소패왕 항우,
어디서 들었는진 모르지만 한나라 유방과 천하를 다투던 항우에게, 옛날에 죽은 오나라 왕 ,합려의 검이 갖는 의미란 상당했을 것 같다.
음.... 전설의 옥새를 찾는 기분이랄까?
아무튼 항우는 이 칼들을 꼭 손에 넣어,
자신이 남쪽 중국의 정통성을 가졌으며,
하늘도 자신을 축복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어했다.
그도 연못 이곳저곳을 파 해치며,
칼 찾기에 여념이 없었지만 결국,
산도 뽑는다는 그의 힘도 합려의 칼들을 찾는대에는 별 소용이 없었나 보다.
마지막으로 오나라의 손권.
<삼국지> 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겐 애증의 캐릭터이자, 손제리 (톰과 제리의 그....)라 불리는 인물이시다.
그 역시,
호랑이 왕의 검들에 관심을 보였고,
직접 군사들을 이끌고 이 곳을 찾았다고 한다.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검을 찾았을지는 모르지만,
물도 퍼내고 사람들도 던져본 결과,
이 곳은 아무것도 없다는 결론을 내렸던 듯하다.
사실 어떻게 보면,
그 많은 황제들이 이런 보물창고를 그냥 두었다는 것이 더 이상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이 곳 검지는
'가짜' 라는 소문도 많이 퍼져있다.
사실 검이 3,000 자루면 그게 보통 양일까?
그런 이미지를 아는지 모르는지,
중국 정부는 여전히 이 곳을 <호랑이 왕, 합려의 검의 연못> 이라고 선전하고 있다.
1955년,
이런 비난을 의식했는지
아니면 자신들도 정말 중국 대륙의 주인으로 인정을 받고 싶었는지, 중국 공산당의 지시로 정부규모의 대대적인 조사가 있었다고 한다.
연못의 물들을 퍼내고,
바닥에 있는 돌들을 정밀하게 조사하고 있던 상황에서,
학자들은 이 연못의 돌들이 '자연석' 이 아닌 '인공석' 임을 공식적으로 확인했다고 한다.
(즉, 연못이 인공물이란 말)
발굴 조사에서 조사단은
호랑이 왕 합려의 <무덤 입구> 와 그의 보물들이 묻혀있을 <보물 창고> 위치를 발견하였 다고 하는데, 정작 발굴하면 모든 무덤이 위험해진다고 하여, 다시 발굴을 중단한 생태라고 한다.
(출처 : 바이두)
연못 위를 보면 조그만 아치 다리 하나가 있다.
(원래는 난간이 없는 조그만 다리였지만,
추락 위험이 있어 난간을 만들어놓은 상태이다)
이 다리의 이름은
쌍정교 (雙井橋, 두 우물의 다리).
이름처럼 다리 위에는 두 개의 구멍이 뚫려있다.
그리고 유독 많은 연인들이 손을 잡고 여기를 찾는다.
왜일까?
듣기론 조금은 로맨틱한 오왕 부차의 전설 이야기가 이 다리에 있다.
오나라 왕 '합려' 의 아들 '부차' 는
가시나무더미 위에서 잠자며 아버지의 복수를 부르짖는 독한 모습을 보였지만, 사실은 마음씨 여린 사람이었다.
3년의 시간이 걸려 복수전을 벌인 그의 발아래에,
드디어 아버지를 죽인 원수인 월나라 왕 '구천' 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복수전의 일등 공신이었던
'오자서' 와 '손무' 는 구천을 죽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그의 여린 마음으로 인해,
왕은 긴장의 끈을 놓아버리고 만다.
이만하면 되었으니 원수를 살려두어 너그러움을 보이겠다는 것이었다. 그리곤, 월나라 왕 구천을 마구간에 던져놓곤 목숨을 살려둔다.
그런 그에게 월나라 왕 구천과 그의 책사 범려는
'서시' 라는 아름다운 여인을 바치게 된다.
복수를 위해 평생을 바친 남자, 오왕 부차.
그가 그녀를 만나고 나서 한동안 말을 잊지 못한다.
서시가 너무나 마음에 들었던 부차는 이제,
그녀를 위해서 무엇이든 해줄 각오로 그녀에게 빠져든다.
그런 서시는
합려의 무덤이 있는 호구산 을 자주 찾았다고 한다.
왠진 모르지만, 이 곳에서
검의 연못 위에 나있는 조그만 다리를 통해,
맑디 맑은 검지의 물을 바라보는 것을 즐겼다고 한다.
그리고,
가녀린 그녀가 행여 다리에서 떨어지진 않을지 걱정한 부차는 석공들을 동원해 다리 위에 구멍을 뚫었다.
그녀가 다리 옆에 위태롭게 기대지 않고도
연못의 물고기들을 바라보며 감상할 수 있도록...
(그리고 이곳은 시간을 초월한 순정을 느끼고픈 연인들의 성지가 되었다)
그런 부차의 마음을 서시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어제까지
자신의 나라를 짓밟으며 싸워왔던 적국의 우두머리,
하지만,
한 남자로서는 나무랄 바 없이 자신에게 헌신적인 사람.
서슬 퍼런 검들이 잠들어 있는
호랑이 언덕의 맑은 연못 물을 바라보면서,
그녀는 복수의 칼을 갈고 있었을까?
아니면, 인간적인 고뇌에 빠져 있었을까?
(( 다음 이야기는 서시와 호랑이 탑 이야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