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병, 참을수 없는 불편함
천국으로 가는 열쇠가 있는 베드로의 도시,
바티칸 시티는 전세계 카톨릭 신자들의
정신적 지주인 교황님이 계신 곳입니다.
그런데, 이곳이 '독립국가' 라는 사실은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지나친답니다.
이 작은 도시는 나름 교황님을 수장으로,
국방부 비슷한 조직도 있고, 외교관계도 맺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행정의 많은 부분을 이탈리아에 의존하고 있기도 하답니다.
그래서,
국제법 학자들 중에선 이곳을
나라가 아니다라고 이야기하시는 분들도 있죠.
이런 재미있는 미니국가 바티칸 공화국에는
'교황님'을 지키는 가드들이 존재합니다.
투구와 알록달록한 유니폼, 큰 키와 준수한 외모.
그리고, 이들 모두는 스위스(Swis) 사람입니다.
여기서 의문이 듭니다.
이탈리아 한가운데,
왜 스위스인들이 있는 걸까요?
그것도 천국의 열쇠와 교황님을 지키는
막중한 임무를 맡고 말이죠.
사실 바티칸과 스위스 병사들의 역사는
멀리 중세시대로 올라갑니다.
척박한 알프스 산맥에서 요들레이를 외치며 살아가던 산악사람들. 양을 치고 치즈 만드는 목가적인 모습만큼이나 이들에겐 중요한 사업이 있었으니, 바로 '용병단' 사업이었죠.
용병은…음,
돈을 받고 여기저기서 싸워주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돈만 되면 달려가는 해결사 아저씨 라고 할까요?
그런 용병들 중에서도 나름
스위스 용병단은 이름이 높았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시사철 눈 덮인 산동네에 조그만 농토에서
양고기와 우유만 먹고살면 사람이 독해지기 마련.
거기다 이 산골마을이 나름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을 넘나드는 요충지였기에, 싸움 좀 한다는 장군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여기를 쳐들어 왔답니다 (로마를 침공한 한니발, 이탈리아를 털러 가던 나폴레옹 등이 그랬죠).
그리고,
산골마을 특성상 마을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어서, 문 너머로 서로 다 아는 처지라, 전쟁터에서 목숨이 아깝다고 나혼자 도망갔다간, 대대손손 마을의 조롱거리가 될 수도 있었답니다.
이렇게 극악한 산악 환경이 만들어낸
'깡따구' 로 뭉친 브라더들의 조직이 탄생했으니,
바로 중세를 주름잡던 스위스 용병단,
레이슬뢰우페 (Reisläufer) 입니다.
조금 비싸지만, 거칠고 몸값 하는 그들의 명성은
유럽의 왕실과 교황님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고, 각 국은 서로 그들을 모시기 시작합니다.
사실 유럽에서 용병이란 그리 좋은 사람들로
인식되지는 못하고 있었습니다.
인류 역사상 여러 나라들이 이런 용병대들을
고용해 사용했습니다만, 그 끝은 좋지 못하였지요.
이탈리아는 멀리 볼 것도 없이
그들의 조상 로마제국을 봐도 느낌이 왔답니다.
서기 467년 로마군 소속이던 게르만족 용병대는 수가 틀린 김에 수도 로마로 진군해 버립니다. 그리고, 이름만 남아있던 '서로마제국' 을 역사에서 지워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용병들은 잘 사용하면 유용한 전문전투 집단이지만, 보수금액에 따라 그 주인을 바꾸기도 하고, 때론 고용주가 만만해 보이면 그들을 엎어버리기도 하는 믿지 못할 족속들로 비춰졌습니다.
더하여,
급료가 제때 나오지 않거나, 보급이 힘들어지면 여지없이, 현지에서 민간인들도 약탈하는 도적집단이 되기도 했답니다.
이런 불량 기업들이 가득한 용병 비즈니스 시장에서
'스위스 용병대' 가 눈도장을 콱 찍어버리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이탈리아의 명문가 메디치,
이 메디치 가문은 두 명의 교황을 배출합니다.
한 명은 교황 <레오 10세>
그리고 또 다른 한 명은 교황 <클레멘스 7세> 입니다 (레오는 클레멘스 교황의 사촌형이기도 합니다)
사촌형 <레오 10세> 버프를 받은
<클레멘스 7세>의 앞날은 꽃길이었습니다.
얼마나 고속승진을 하였는지,
45살에 그는 교황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이는 대대로 권모술수와 재력이 탁월한 집안,
메디치 가문의 배경과 함께, 당대 카톨릭의 수호자를 자처한 스페인 합스부르크왕가 <카를5세>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프랑스의 <프랑수아1세>, 영국의 <헨리8세> 역시 교황을 지지하며, 이 젊고 요리하기 좋은 교황을 통하여 유럽에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했죠.
시간은 흘러,
북부 독일에 <마틴 루터> 라는 골칫덩이가 나타나 교황의 권위를 비판하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카톨릭의 수호자를 자청하던
<카를5세> (이 성당오빠의 신앙심은 노빠구, 진심이었답니다) 는 흉흉한 정세를 틈타 교황 클레멘스를 지원하면서 유럽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
<카를5세> 의 수염부터가 맘에 들지 않던 젊은
<클레멘스7세> 는 점점 불만이 생깁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프랑스가 끼어듭니다.
교황의 불편한 심기와, 내심 이탈리아에 발을 들이고 싶었던 프랑스 발루아 왕조의 야망이 맞아떨어집니다.
프랑스는 내친김에 이탈리아 국가들과 연합하여
합스부르크를 몰아내기로 교황에게 약속합니다.
반 합스부르크 동맹 (코냑동맹)
이 탄생한 것이었습니다.
(음...그런데...작명센스가 ....)
클레멘스가 교황이 되도록
열과 성을 다해 지지한 스페인,
그런 교황의 삐딱한 태도에 성당오빠
<카를5세> 는 정말 화가 머리 끝까지 납니다.
이를 갈던 그는 이제 친히 군대를 이끌고
머나먼 이탈리아 땅으로 원정을 떠나겠다고 하죠.
합스부르크왕가 하면,
영국과 네덜란드에게 두들겨 맞던 찌질이로 생각하실 수 있지만, 당시 카를의 명칭만 봐도 얼마나 거대한 나라였는지 가늠할 수 있답니다.
그의 이름 앞에 붙은 공식 명칭은
"…..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이자 독일왕, 이탈리아의 왕, 카스티야, 아라곤, 레온, 시칠리아 열도, 예루살렘, 나바라, 그라나다, 톨레도, 발렌시아, 갈리시아, 마요르카, 세비야, 사르데냐, 코르도바, 코르시카, 무르시아, 하엔, 알가르베, 알헤시라스, 지브롤터, 카나리아, 서인도와 동인도, 섬들과 대양의 메인랜드의 왕, 기타 등등등. 오스트리아의 대공, 부르고뉴, 브라반트, 로트링겐, 슈타이어마르크, 케른텐, 크라인, 림부르크, 룩셈부르크, 겔데른, 아테네, 네오파트리아, 뷔르템베르크의 공작, 슈바벤, 아스투리아와 카탈루니아의 공, 알자스의 영주 플란데런, 합스부르크, 티롤, 고리치아, 바르셀로나, 아르투와, 부르고뉴, 에노, 홀란트, 제일란트, 페레테, 키부르크, 나무르, 로씨용, 세르다뉴, 쥣펀의 백작, 부르가우, 오르시타노와 고르치아노의 신성 로마 제국의 후작, 프리지아, 벤디세 마르크, 포르데노네, 바스크, 몰린, 살랭, 트리폴리, 메헬렌의 군주, 기타 등… "
이었다고 합니다.
어우......이건 무슨 타노스급의 거대함이…
<카를 5세>는 이탈리아 침공을 하면서 친히,
스페인 왕실에서 양성하였던 최종병기(?)를 가지고 갑니다.
바로 유럽 역사 대대로 싸움이라면 일등을 다투던
게르만 전사들, 남부 독일 사람들이 주축이 된 용병대인 <란츠크네흐트(Landsknecht)> 였습니다.
예수님의 권능이 자기를 보호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던 카를이였지만, 그래도 교황편에 서있는 산 잘타고 깡따구 넘치는, 스위스 용병단은 마음에 걸렸던 것이였죠.
그러기에, 음....
마틴 루터가 판치는 동네에서 모은 애들이긴 하지만, 그래도 싸움 하나는 끝내주게 잘하는 이들을 준비한 것이었죠.
이런 카를을 보면서,
교황 클레멘스 7세 는 자신이 있었습니다.
든든해 보이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도시국가들,
그리고 젊은 그의 나이가 만들어내는
아드레날린 역시 자신감을 높여주었죠.
하지만 막상 전쟁이 시작되자...
전황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았습니다.
이탈리아로 들어온 카를의 <합스부르크 군대> 에게 <교황-프랑스 군대> 는 전멸하고 맙니다.
그리고,
이 와중에 엄청난 비극이 일어나 버리니...
저 땅부자 카를이 왠지는 모르지만,
독일 용병들의 급료를 약속한 만큼 주지 않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어찌저찌 이탈리아 땅까지 이들을 끌고 오는 데는 성공했으나, 이제는 화가 날대로 나버린 게르만 용병단.
눈이 돌아간 용병단은
이탈리아의 심장부, 로마 로 진군하기로 결정합니다
밀린 월급을 직접 벌기위해서…
그리고....
그 이후에 일들은 너무나 끔찍했답니다.
로마 대약탈(Sacco di Roma)은 그 분량으로도
책 한 권이 나올 만큼 너무나 많은 내용입니다.
간단히 요약하면
2만 명의 불만 가득한 독일용병대가
로마의 성벽을 넘어서 들어왔고,
개신교 신자들이 대다수이던 독일용병단에게
로마는 그리 경외의 대상은 아니었습니다.
더해서,
이들을 통제하던 용병지휘관 샤를3세 가
로마 성벽을 오르던 중에 총에 맞아 전사합니다.
우리를 탄압하던 종교의 지도자가 사는 도시,
밀린 급료로 인한 극도의 분노감.
눈앞에 펼쳐진 부유한 동네,
더하여 이제 사라져 버린 지휘관의 복수까지...
겹치고 겹친 상황들은 이제
이 용병단을 거대한 떼강도들로 만들어 놓습니다.
몇 주 간 이어진 약탈과 파괴행위로
1만 2천 명의 로마 시민들이 이 난리통에 학살당하고 맙니다 (당시 로마시민 5명 중 1명 꼴이라고 합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고통받은 건.....
(오죽하면 이 참상을 말린 것이,
이들을 고용한 같은편 카를5세 였다고 합니다.)
아무튼 이제
교황 클레멘스에게 남은 선택지는 없었습니다.
도시 수비군은 모두 도망가고, 교황 주변에 남은 것은 189명의 스위스 용병단 만이 전부였습니다.
같은 이탈리아인들도 도망가버린 상황.
스위스 용병단은 마음만 먹는다면 교황을 넘기거나(최소한 버리고) 도망칠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교황의 곁을 지키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2만의 무시무시한 독일 용병들에 맞서서,
클레멘스 교황을 로마 외곽의 산틴젤로 성당까지 피난시키는데 성공하죠. 다만 147명의 스위스인들이 이 싸움에서 죽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
카톨릭 교황청은 공식적으로 교황의 가드는
스위스 용병뿐 이라고 선언하게 됩니다.
(로마가 불타오르고 죽음이 임박한 극한의 공포에서도, 고용주와의 신의를 저버리지 않았던 스위스 용병단은 용병시장에서 눈도장을 찍었구요).
이들의 신뢰와 헌신은 이후,
프랑스 대혁명에서 까지 연결됩니다.
튈르리궁에서 성난 민중들에 맞서, <루이 16세> 와 <마리앙트와네트> 를 보호하던 760명의 스위스 용병단 역시 마지막까지 도망가지 않고, 로마에서의 선조들과 똑같은 운명을 맞이하게 되죠.
그리고, 그들의 모습은 지금도
스위스의 루체른에 남아있답니다.
비극으로 끝났지만
낭만적으로 이야기되는 스위스 용병단 이야기.
하지만,
로마가 홀라당 타도록 만든 중심에 용병들이 있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용병을 바라보던 일반 시민들이나 고용주들의 눈빛 역시 곱진 않았습니다.
<군주론> 으로 유명한 마키아벨리 같은 사람은
용병의 폐해를 이야기하면서, 충성심이 높은 '시민군' 으로 '용병'을 대체할 것을 주장했죠.
그런데 말입니다~~
이번 우크라이나전에서 이 용병들이 문제가 됩니다.
각 국에서 우크라이나 전선으로 가겠다는 외국인 의용군들이 몰려든 것이었죠.
초반에 우크라이나군이 수세로 몰리고 있을 당시, 서방에 많은 사람들이 우크라이나군으로 참전했답니다. 올해 초 기준, 총 52개국의 2만 명 이상의 자원입대자가 우크라이나군에 가담했다고 합니다.
병력이 모자란 우크라이나에서는
이들을 두 손을 들고 반겼고 러시아는 당연히...
강하게 반발하였죠.
기사 중에 러시아군이 말한 이런 내용이 있답니다.
용병들은 국제법상 전투원들이 아니다.
그들은 군인 지위를 갖고 있지 않으며,
체포 시 최소한 형사 처벌을 받을 것!
그런데 말이죠,
러시아의 말은 사실일까요?
(사실 돈을 노리고 복무하는 직업 용병들도 아니고,정말 인류애를 위해, 힘든 사람들을 목숨걸고
돕겠다는 이들은 칭찬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나라 정부가 1982년 발효한
<제네바협약에 대한 추가 의정서 (제1 의정서)>
란 것이 있습니다.
이 중 제2장은 <전투원과 전쟁포로> 의
정의와 그 지위에 관한 내용입니다.
< 제43조 (군대) >
- 제1항 :
충돌 당사국의 군대는 동국이 적대 당사국에 의하여 승인되지 아니한 정부 또는 당국에 의하여 대표되는 경우라 하더라도, 자기 부하의 지휘에 관하여 동국에 책임을 지는 지휘관 휘하에 있는 조직된 모든 무장병력, 집단 및 부대로 구성된다. 그러한 군대는 내부 규율체계 특히 무력충돌에 적용되는 국제법의 규칙에의 복종을 강제하는 규율체계에 복종하여야 한다.
--> 전투를 행하는 군인들은 당연히
전쟁포로로 보호받아야 한다.
<제45조 (적대행위에 가담한 자들) >
- 제1항 :
적대행위에 가담하고 적대 당사국이 구역 내에 들어간 자는 전쟁포로로 간주되며. 따라서 그가 전쟁포로의 지위를 주장하거나 그러한 지위의 자격이 있는 것처럼 보이거나 또는 그의 소속국이 그를 위하여 억류국 및 이익보호국에 통고함으로써, 그러한 자유를 주장하는 경우 제3협약에 의하여 보호되어야 한다.
--> 비전투원이지만, 적대행위를 한 자들도
전쟁포로로 보호받아야 한다.
음... 긴 내용이지만 간단히 요약하면,
정식 군대, 그리고 그 군대를 따라 동참한 사람들(민간인) 역시 <전쟁포로> 로 보호받아야 하고, 함부로 죽이거나 대우해서는 안된다는 내용입니다.
우리가 흔히,
군인이 아닌 민간인들의 적대행위를 보며,
"이런 뒤통수치는 비겁한 놈들, 다 죽여야돼~!"
라는 무시무시한 말을 하는 분들이 있는데,
이러한 적대행위 역시, 전쟁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행위로 보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데,
그 아래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 제47조 (용병) >
- 제1항 :
용병은 전투원 또는 전쟁포로가 될 권리를 가지지 아니한다.
--> 복잡한 법조항 중에서 간단한 한 줄입니다.
용병은 군인도, 전쟁포로도
그 무엇도 아니라는 조항입니다!
사실 저도 이 조항을 보면서 조금 놀랐답니다.
보통은 많은 국제법조항은 여러 사항을 고려해서
굉장히 주절주절 길게 쓰여있는데,
유독 용병에 대하여는 짧고 간결하게 정의를 내려놓고 있어서였죠.
내친김에 그럼
국제사회가 말하는 용병은 무엇일까요?
< 제47조 (용병) >
- 제2항 :
(a) 무력충돌에서 싸우기 위하여 국내 또는
국외에서 특별히 징집된 자
(b) 실지로 적대행위에 직접 참가하는 자
(c) 근본적으로 사적 이익을 얻을 목적으로
적대행위에 참가한 자 및 충돌 당사국에
의하여 또는 충돌당사국을 위하여 그 당
사국 군대의 유사한 지위 및 기능의 전투
원에게 약속되거나 지급된 것을 실질적
으로 초과하는 물질적보상을 약속받은자
(d) 충돌당사국의 국민이 아니거나 충돌당
사국에 의하여 통치되는 영토의 주민이
아닌 자
(e) 충돌당사국의 군대의 구성원이 아닌 자
(f) 충돌당사국이 아닌 국가에 의하여 동국
의 군대구성원으로서 공적인 임무를 띠
고 파견되지 아니한 자
이 조항도 놀라운 것이
오래전 조약을 체결하면서,
각 국가들이 상당히 구체적으로
'용병' 에 대한 정의를 내렸다는 것 이었습니다.
(그만큼 서구국가(특히 유럽) 에서는
용병이 골치 아픈 존재였다고도 할 수 있겠죠.)
조금 길어지지만 사례별로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CASE 1) 징집된 러시아 죄수 세르게이씨
우선, 세르게이씨는
(a) 무력충돌에서 싸우기 위하여
국내 또는 국외에서 특별히 징집된 자 입니다.
감이 오시나요?
러시아가 군대가 아닌 죄수를 모집하는 행위는
<국내에서 특별히 징집된 자> 에 해당합니다.
세르게이씨는 용병.
... 음, 정당한 포로대우는 기대할 수 없겠군요.
(CASE 2) 우크라이나 시민권 받은 이근씨
다음은,
(c) 충돌당사국을 위하여 그 당사국 군대의 유사한 지위 및 기능의 전투원에게 약속되거나, 지급된 것을 실질적으로 초과하는 물질적 보상을 약속받은 자 입니다.
우크라이나에서 전황이 한참 급할 때,
참여한 의용군에게 우크라이나 시민권을 급하게 발급하였답니다. 우크라이나 시민을 만들어 자국 군대와 동일한 지위를 부여하겠단 것이었죠.
현재 대부분의 의용군들은
<우크라이나 시민>의 지위를 받았지만,
또 <자기나라의 국적>을 유지하고 있답니다.
그렇다면 이것도....
'용병' 으로 여겨질 확률이 큽니다.
전쟁포로 대우 받기가 힘들 수 있겠네요.
그런데 말입니다~
가령 '이근' 씨가 저 상황에서
<대한민국 국적> 을 포기하고, <우크라이나 시민>으로 살아가기로 마음먹었다면 조금 상황이 복잡해집니다.
(d) 충돌당사국의 국민이 아닌 자
(e) 충돌당사국의 군대의 구성원이 아닌 자
라는 '용병'의 조건이 반대로 해석하면,
충돌당사국 국민이면서 그 나라의 군대이면,
그 나라의 전투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라고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죠....
설마 그럴 일은 없겠지만,
그분들이 제2의 조국을 위해서 중대한 결심을 내린다면? (저는 넓은 마음으로 그분들의 의사는 존중합니다)
(CASE 3) 생계를 위해 온 아프간의 압둘라씨
(d) 충돌당사국의 국민이 아니거나
충돌당사국에 의하여 통치되는 영토의
주민이 아닌 자 입니다.
압둘라씨는 가난한 아프간에서 왔습니다.
돈벌이를 찾아 다니다 러시아 알바전단을 보고,
들어본 적도 없는 우크라이나 전쟁터로 오게 됩니다.
러시아나 우크라이나 모두, 이런 식으로
많은 군인들을 외부에서 보충하였습니다.
법적으로 본다면 이들은 엄연한 '용병' 이에요.
이 전쟁은 본인들의 전쟁은 아닌 거죠.
따라서,
전투원으로서 누릴 수 있는
지위가 보장되지 않습니다.
포로가 되어도 제네바협약의 대우는 힘들겠네요.
용병은 이렇듯,
국제법의 전투원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전시국제법상의 전쟁포로 대우를 받지 못합니다.
이는 각 국가의 국내법으로 처벌됨을 의미하고,
궁극적으론 전투시에 발생한 불가피한 살해, 살상행위가 아닌, 국내에서 발생한 일반 살해범, 상해범과 같은 대우를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실 용병의 조항을
이렇게 국제사회가 규정한 것은,
<전쟁의 비즈니스화> 를 막고,
역사적으로 보아왔던 <용병제도의 문제점>을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더하여,
용병들의 투입으로 인해 늘어지는
전쟁의 확대를 막기 위한 목적도 있죠.
통제가 되지 않는 무력집단이 탐욕에 따라 움직일 때, 그 결과가 얼마나 끔찍했는지는 유럽의 각 국가들이 역사를 통해 경험하였으니까요.
(전쟁은 <낭만적인 스포츠> 나 <돈벌이 수단> 이 아니라는 국가들의 외침이, 국제법의 여러 조문들을 바라보다 보면 자주 보이곤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같은 실수를 계속해서 반복하는 아직은 불완전한 존재임을 … 이제 한 해가 다되어가는 유럽 끄트머리의 전쟁터가 아직도 보여주고 있답니다.
사라진줄 알았던 용병들이 돌아오고,
이젠 가난한 바다 건너 대륙에서, 들어본적도 없을 나라를 위해 총을 들고 사람들이 전장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그 모습에서 수 백년전
역사 속의 슬픈 모습들이 겹쳐보이는 것이,
개인의 착각이길 간절히 바래봅니다.
가을 바람이 차가워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