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민족행위자, 인권을 논하다
오래전 이맘때쯤,
긴 직장생활을 끝내고 사업을 꿈꾸다가, 다시 취준생이 된 아는 동생 하나가, 면접 후에 영혼까지 탈탈 털려서 술에 잔뜩 취해 전화가 왔었죠.
그러곤 핸드폰이 뜨거워질 때까지 저에게 신세 한탄을 했답니다. 한참을 이야기하던 동생은 저에게 갑자기 이야기를 했죠.
"형, 진짜 이러다 안 되면 우크라이나 갈까봐요,
저 지금 심각하게 이야기하는 거에요.
아니, 거기를 왜?
라고 지금이라면 말하겠지만,
그때의 저는 자연스럽게 대꾸했죠.
"그 장모님의 나라를 혼자만 가겠다니,
너 혼자만 좋은데 가는거냐?"
물론 그 전화가 끝나고 얼마 안 있어, 우리 모두가 다 알고 제 글에도 자주 등장하는 그 일이 일어났고, 푸틴 대통령은 그 녀석의 비장한 버킷리스트를 산산조각내 버렸답니다.
물론~
그 동생은 지금은 좋은 직장에 들어가 잘 지내고 있어요 (나름 해피엔딩 인가요? ^^).
코로나 시즌이 끝나고 독일에 전시회를 다녀온 또 다른 친구는 내친김에 조금 위 쪽의 발트3국(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을 다녀왔다고 합니다.
본인 말로는 '살아생전 다시 가 보겠냐' 라는 심정으로 다녀왔다고 하는데 너무나 좋아하더군요. 상상한 것보다 더 아름다운 풍경과 말도 안 되게 잘생기고 예쁜 사람들 때문이었다고 해요.
"거긴 진짜 커플끼리 여행 가면 안 되겠더라."
확신에 차서 말하는 친구를 보면서, 과연 독일과 러시아 사이에는 '장모님의 나라' 들이 많구나 하는 막연한 생각을 했답니다.
실제로 이 쪽 나라들에선 남자 찾기가 힘들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려오곤 합니다. 남초국가들이 몰려있는 동아시아에선 상상하기 힘든 일이죠.
내친김에 살짝 살펴볼까요?
이 지역 국가들의 남녀 성비랍니다.
<남/여 성비:>
폴란드 (94/100),
벨라루스 (87/100),
우크라이나 (86/100),
리투아니아 (86/100),
라트비아 (85/100),
에스토니아 (90/100),
러시아 (86/100)
2021년도 월드뱅크의 자료랍니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여성 100명당 구할 수 있는 남자가 저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뜻이래요.
그나마,
폴란드나 에스토니아 정도는 간당간당 하게 사회가 유지되고 있지만, 정말 러시아를 비롯한 주변 나라들은 남자들의 씨가 말랐다고 할 정도로 성비가 무너져 있죠 (우크리아나와 러시아는.... 지금은 남성 인구가 더 줄었겠군요).
그래서 이야기의 주제가 뭐냐?
장모님의 나라로 장가가고 싶단 이야기냐?
이렇게 이야기하신다면,
음~15프로만 동의하겠습니다 ^^;;
사실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 나라가 바로,
커플이 여행 가면 안되는나라~ 리투아니아 입니다.
2021년 6월 14일,
리투아니아 전역에서는 조금은 특별한 기념행사가 열렸습니다. 리투아니아의 <애도와 희망의 날 (Mourning and Hope Day)>로 불리는 행사가 80주년을 맞는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의 독일-러시아 회랑 사이에 많은 국가들이 심각한 남성부족 국가가 되어버린 것에는 여러 요인들이 작용한답니다.
우선 2차 세계대전 당시에,
독소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남자들이 이 지역의 전쟁터에서 죽어나갔던 이유가 있지요.
그리고,
그만큼 많은 민간인들 역시 죽음으로 내몰렸답니다.
나치 독일의 인종청소 정책으로 다수의 사람들이 또 학살당하였고, 이후 소련의 침공으로 또 수많은 반대쪽 사람들 역시 숙청을 당하게 되었죠. 거대한 고래들의 싸움에서 새우무리 같던 이 지역의 국가들 은 안전할 수 없었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우리가 알다시피 세상은 동과 서로 나뉘게 됩니다. 베를린 장벽 오른쪽에 위치했던 리투아니아 역시 소련 공산당의 영향아래 들어가게 되었죠.
하지만,
나치독일 패전 이전부터 붉은 군대는 전쟁 후의 세상에 대비하게 됩니다.
리투아니아에 들어온 붉은 군대에게 예전에 나치에 협력했던 사람들,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이들, 보수적인 고위장교들, 돈있는 자본가 계급들이 색출되어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하지만, 스탈린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습니다.
1941년 6월 14일 새벽 3시,
모두가 곤히 잠들어 있을 시각에 리투아니아로 들어온 소련 특무부대원들은 대대적인 리투아니아인 검거작업에 들어갑니다.
불과 며칠 사이에 185,000 여 명의 리투아니아 사람들이 사상적으로 소련 공산당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투옥되어 강제로 열차에 태워집니다
(이들 중에는 전직 대통령이던 알렉산드르 스튜긴스키(Aleksandras Stulginskis)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들은 독소 전쟁의 주요 전장으로 폐허가 되어버린 러시아의 외곽지역 이르쿠츠(Irkutsk), 크라스노야르스크(Krasnoyarsk) 지역으로 이주되었고, 더 멀리 시베리아로 유배당한 이들도 있었답니다.
슬프게도 소련 공산당이 체제에 위협이 된다고 이주시킨 저 많은 사람들 중, 약 70% 이상이 힘없는 여성과 아이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1952년까지 계속된 강제이주 정책으로 약 28,000 여 명의 사람들이 길 위에서 죽어나갔다고 해요.
소련은 이렇게 반항적이던 리투아니아의 힘을 줄여갔고, 어린 아이들과 여성들을 강제로 이주시켜 자기들의 노동력 부족도 해결하였답니다.
남아있던 리투아니아인들의 삶 역시 평탄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자료들에 따라선 약 28만 명의 리투아니아인들이 소련 통치기간 동안 감옥에 투옥되었다고 합니다
(전쟁 후에 리투아니아 인구를 찾아보니 약 250만 명 정도라고 해요. 산술적으로 따져보면... 전체 인구 100명 중 3명이 하루아침에 나라 밖으로 끌려갔고, 10명 중 1명은 감옥에 끌려간 셈이 되는군요).
매년 6월 14일 11시 59분에는, 리투아니아 전역에 1분간의 짧은 사이렌이 울립니다. 이 아픈 역사로 사라져간 이들을 기억하기 위해서랍니다.
혹시 여행 중에 이 광경을 마주치게 된다면, 같이 머리를 숙이고 이들의 아픔을 동참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해요.
강대국 옆에 독립된 작은 나라의 삶이 얼마나 고달픈지, 우리의 유전자에 하나하나 각인된 기억들이 분명 그들과의 공감대를 만들어줄 거라 생각합니다.
이런 구소련의 무지막지한 지배가 가능했던 것은
압도적인 무력 때문이었답니다.
소련 정예군인 붉은 군대에 더하여,
역사책에서 자주 등장하는 특무부대들(국가보안위원회(KGB), 내무인민위원부(NKVD)) 등, 이름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여러 조직들이 소련공산당이라는 체제를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죠.
공산주의의 수호부대 답게,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은 그 세력을 전세계로 확장해 나갑니다. 아직 소련의 영향아래 있었던 리투아니아 역시 이들에게서 자유롭지 않았답니다.
그리고,
어느 시대에나 존재하듯이...
리투아니아 땅에도 독버섯들이 자라나게 됩니다.
전도유망한 리투아니아의 젊은이들이,
태어나보니 공산국가인 리투아니아에서 출세를 하기 위해, 자진해서 소련 특무부대들의 문을 두드리게 됩니다.
이들에게 소련제국은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체제였고, 그들 아래서 고통받거나 저항하는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대세를 따르지 않는 멍청이들로 보였죠.
역사가 <크리스티나 부린스카테(Kristina Burinskaitė)>는 연구를 통해, 리투아니아 점령기간 동안 구소련의 약 10만 명의 KGB 요원들이 상주하였을거라 추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최대 6천여 명의 리투아니아인 협력요원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였답니다.
(현재까지 자신이
소련의 부역자라 자백한 인원은
1,589명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자백하는 대가로 75년간의 비밀 보장을 하였지만, 아직도 리투아니아 사회에선 이들의 명단공개가 이슈화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1989년,
영원할 것 같던 소련제국이 한순간에 무너집니다.
독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져 내린 것이었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동독 공산정권이 붕괴되었고, 흥분한 사람들은 새로운 세상에서 서로를 끌어안으며 즐거워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던 제국의 엘리트들은 다급해집니다. 어제까지 출세의 보증수표였던 소련의 완장이, 오늘부터는 그들의 목을 매달리게 할 수도 있었습니다.
1998년 7월 16일,
『KGB법 (The Law on the Evaluation of the USSR States Security Committee and the Present Activities of Former Permanent Employees of the Organization)』이 리투아니아 의회에서 통과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법령을 근거로 리투아니아 정부는 그동안 이를 갈고 있던 구소련 부역자들에 대한 처벌에 나서게 됩니다. 이법 제2조를 한번 보겠습니다.
【KGB법 제2조
(구소련 부역자의 현직활동 제한)】
구소련 국가보안위위원회
(KGB, NKVD, MGB, NKGB 등)의
상근직원은 이 법률 공포 후 10년간,
정부, 지방자치체 또는 국방부서,
국가보안부서, 경찰, 검찰, 법원, 외교, 관세,
공공기관을 감독하는 국가규제 또는 기타 기관의 공무원 또는 유사직책을 수행하거나,
은행 및 기타 금융 기관, 경제계획, 보안회사, 흥신소, 통신시스템 회사의 변호사 및 공증 인으로, 그러한 기관의 장, 교사, 교육자로 근무할 수 없다.
또한
무기를 소지하는 어떤 직종도 수행할 수 없다
☞
과거 국가를 배신한 적극적인 부역자들은
향후 10년 간, 리투아니아 어디에서도 발을 붙일 생각을 말아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수많은 숨어있던 부역자들이 적발되어
직장에서 옷을 벗게 됩니다.
시민들의 강력한 지지 아래서 시행된 법령.
지금까지 원수 같은 소련이 해왔던 일들을 생각해 본다면, 이들이 목숨을 부지한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 일일 겁니다.
그런데,
몇몇 사람들이 이 법령에 반발을 하게 됩니다.
자신들은 그 정도로 적극적으로 부역하지는 않았다는 것이었죠.
2008년 10월 14일.
프랑스 스트라스부흐의 유럽인권재판소(ECHR)에 고발장들이 접수됩니다.
(사건번호 nos. 50421/08 et 56213/08)
고소인인 두 명의 리투아니아인
(Juozas Sidabras, Kestutis Džiautas)이었습니다. 그들의 고소내용은 명확했답니다.
"우리들은 국가의 새로운 법령으로
부당하게 해고를 당했다.
복직을 시켜달라!"
문제는 그들이 무시무시하던 리투아니아 KGB의
비밀정보요원들 이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소련 제국의 붕괴 이후,
신분을 숨기고 살아가던 그들.
우선 Juozas는 리투아니아 국세청 세무조사관이었습니다. 그리고, Kestutis는 검찰청 반부패사건 담당 검사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둘 모두 새로운 국가의 공무원으로,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말이 됩니다).
ECHR의 판사들은 모여서 사건을 심리하게 됩니다.
리투아니아 정부는 자국의 『KGB 법』에 근거하여,
1999년 5~6월 사이에 이 둘을 직장에서 해고하였습니다. 이러한 정부의 처사에 이들이 무슨 염치로 불만을 가지는 걸까?
재판정은 그들이 주장하는
억울함을 들어보고자 합니다.
⓵
Juozas 는
본인이 KGB 활동은 하였지만,
일반 사무직으로 사람들의 정보만을 수집하였고, 리투아니아 국민들의 인권침해는 행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⓶
Kestutis 는
자신은 KGB 요원이 되기 위해
오랫동안 모스크바에 유학 중이었고,
1990년 이후 돌아와서 KGB 활동을 한 것은 잃어버린 조국, 리투아니아 독립을 돕기 위한 일이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다만 입증은 하지 못하였습니다).
☞
물론 이러한 그들의 주장에 대하여 리투아니아 법원은 말도 되지 않는다고 판결하였습니다.
원고들은 리투아니아 정부를 대상으로
불만을 토로합니다.
새로운 『KGB법』 을 정부가 만들어,
과거의 행위가 주변에 들통나는 바람에 자신들은 직장도 잃었고, 가족들까지 주변 사람들의 눈총을 받고 있다
고 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리투아니아 정부가
자신들이 유럽시민으로 마땅히 누려야 할,
⓵ 유럽인권협약 제8조
(사생활 및 가족생활을 존중받을 권리)
⓶ 동협약 제14조 (차별의 금지)
를 지켜주지 못했다고 제소하였습니다.
어떠신가요?
사실 음... 이 정도면,
'이놈들이 무슨 면목이 있다고,
끝까지 쓰레기 구만!'
이라고 생각하실 분들도 계실 것 같아요.
사실 이 문제는 간단하지만은 않답니다.
위의 2015년 기사에 보이듯 러시아의 첩보기관들이, 과거에 자신들을 위해 일했던 발트3국의 부역자들에게 다시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는 기사가 보인답니다.
세상이 바뀌었지만,
과거 식민지 국가의 부역자들은 예전에 통치하였던 국가에게는 시간이 지나도,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중요한 인적 자원이 되고, 이는 국가안보 문제와도 직결됩니다.
하지만 ECHR의 판사님들은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어찌 되었든 그들이 억울하다고 하니,
편견 없이 한 장 한 장 이들의 주장을 검토해 봅니다.
판사님들은 우선 이들이 주장하듯,
리투아니아 정부의 제14조(차별금지)와 제8조(사생활 및 가족생활을 보호받을 권리)의 침해가 있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⓵ 제14조(차별금지)에 대하여,
☞
리투아니아 정부의 <KGB법> 제2조에는 모든 구소련 부역자에게 취업을 제한하지는 않았다. 법률에는
(1) KGB 법에 규정된 직책에 있던 사람,
(2) (1)의 직책에 있던 사람이
정치적 목적에 따른 범죄수사 대상일 경우. 에 법적용을 한다.
(3) 취업제한조치 이후, 부당하다고 느껴지면
3개월 안에 법률구제가 가능하며,
(4) 리투아니아 독립을 위해 일했던
사람의 경우는 정부 재심의를 거친다.
☞
하지만,
<KGB법> 은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기본 조건으로 하고 있다. 원고들이 <충성심 부족>을 이유로 취업제한을 당하는 것은, 다른 리투아니아 사람들과의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
☞
리투아니아법은 사려 깊게 만들어져 있어 보인다.
하지만, <국가에 대한 충성심 부족>으로 <취업기회의 제한>을 두는 것은 타인과의 형평성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
라는 내용입니다.
더해서 법원은 말합니다.
⓵ 제8조
(사생활 및 가족생활을 보호받을 권리)
☞
<사생활> 이란 단어는 범위가 넓어 정의가 어렵다. 이에 법원은 사생활을 아래와 같이 정의한다.
(1) 원치 않는 관심을 벗어나,
사적으로 삶을 영위할 권리
(2) 개인의 정신과 육체 안정성을 보호하는 것
☞
원고는 숨겨왔던 직책이 밝혀지면서,
외부세계와의 교류에 상당한 영향을 받았으며, 이로 인해 사생활 향유에 대한 명백한 곤란을 초래하였다.
☞
<KGB 법>으로 이들의 사회활동의 장애가 있으나, 이들이 KGB 근무 당시에 이런 상황에 처할 것이라는 합리적으로 예측이 불가능했다.
☞
<사생활>이 무언지 딱히 정의하긴 힘들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원고가 불편한 건 사실이고,
이런 상황이 올 줄 알았다면 저들이 옛날에도 저런 짓을 했을까?
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제14조에 대한 내용으로,
이전 장에 말씀드린 '합리적 비례관계' 를 다시 이야기합니다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예전 글의 링크를 걸어놓았답니다~).
⓵ 추구하는 목적 (Aimed pursed)
☞
유럽인권재판소는 리투아니아 정부의 <KGB 법>의 목적이 정당한지를 주목했습니다.
(1) 이 나라는 오랫동안
소련의 압제에 시달린 역사가 있고,
(2) 여러 주변국들도 이런 법들을 제정하여
시행하고 있으며,
(3) 이러한 법이 국가안보 및 질서유지를
위해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법은 합목적성을 갖추었다고 보았습니다.
무엇보다도,
리투아니아와 같은 압제를 받은 국가들은
특수성이 있음을 고려하였습니다.
⓶ 사용한 수단 (Means used)
☞
단,
리투아니아가 제정한 법령이 특정 개인에게 제한을 가한다고 보았습니다.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결여된
반민족 부역자들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덕목은 '국가기관' 근무에 필요한 것이며, '사기업'의 취업에까지 적용하는 것은 '차별'이라고 보았습니다.
어떠신가요?
유럽재판소의 판결은 조금은 아리송하기도 합니다.
지금까지의 리투아니아의 역사를 돌아본다면, 소련의 편에 서서 부역했던 많은 이들은 목숨을 부지하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 생각해야겠지만, 오히려 그들이 큰소리를 내면서 자신들의 '권리'와 ‘당위성’ 을 주장합니다.
유럽사회는 자신들의 피해를 주장하는 이들에게
단호히 이야기합니다.
피해받은 국가들은
(너희 배신자들에 대한)
처벌법을 제정할
특수한 사정과 권리가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야기합니다.
이들
(민족 배신자들)은
분명 괘씸한 존재이지만,
그들이 살아갈 기본적인 권리마저
빼앗으면 안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이야기하죠.
다만, 새로운 세상에서는
이들이 다시는
권력을 잡도록 만들지 마라.
명쾌한 솔로몬의 판결인가요?
아니면, 모두를 만족시키지 못한 타협인가요?
제2차 세계대전 후,
프랑스는 광풍 속에서 나치 부역자들을 처단했지만 결국 뒷심이 부족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독일은 뼈아픈 나치정권의 범죄와 관련된
원죄에서 벗어나오기 위해 지금도 몸부림치고 있죠
러시아는 음... 네, 그냥 시베리아행 이었습니다.
하지만, 전후 유럽사회의 공통점은 반민족 부역자들의 권력진출을 철저히 막고자 했다는 점입니다. 두
번의 전쟁을 통해 더 이상의 독버섯은 뿌리부터 뽑겠다는 유럽 각국의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었기 때문이겠죠.
판결을 보면서 생각해 보았답니다.
전후 우리에게 저런
명확한 공감대가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저런 기준을 세우고 집행할 욕심 없는 행정부의 의지가 있었다면… 오늘날 우리를 둘러싼 여러 시끄러운 논쟁들이 정리 되었을것 같아 아쉽기만 합니다.
이것도 역사와 법률이 우리에게,
생각해 보라고 던져주는 메시지가 아닐까해요.
또다시 우리들이 한발 앞으로 나아가게 하기 위해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