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바라보는 두 나라의 시선
'야마오카(다카쿠라 켄)' 는 수 십 년째 바다를 터전 삼아
배를 몰고 고기를 잡는 생활을 하는 평범한 어부입니다.
그런 그에게는 아름다운 아내
'도모코(다나카 유코)' 가 있습니다.
과묵한 야마오카 는 감정을 잘 드러내질 않습니다.
아내의 이름을 딴 어선 <도모마루> 가 과묵한 그의 사랑의 표현 방식이죠.
그리고,
그런 무뚝뚝한 남편을 아내는 항상 상냥하게 맞아줍니다
평온한 삶을 이어가던 야마오카 에게도 한 가지 걱정이 생겼습니다.
신장병을 앓던 도모코,
그런 아내의 상태가 점점 나빠지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1989년,
일본 전역에서는 일왕의 죽음 소식으로 세상이 시끄러워집니다.
새로운 시대에 대한 기대로 사람들이 들떠있던 그 해,
야마오카 의 마음은 편하지가 않습니다.
가슴속에 묻어놓았던
이야기들이 하나 둘 떠오르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한때 신이라 불리던
한 인간의 죽음을 알리는 종소리,
방송을 보면서 왠지 야마오카의 생각이 깊어만 갑니다.
평화로운 어촌 마을에 한 젊은이가 찾아옵니다.
스스로를 기자라고 이야기하는 젊은이,
그는 야마오카 에게 한 이야기를 물어옵니다.
2차 세계대전 막바지 일본 군부의 자살공격대
'가미카제' 대한 이야기입니다.
살아남은 가미카제 대원 중 하나였던 야마오카.
그에게 기자는 죽어간 이들에 대한 심정을 물어옵니다.
"단지 명복을 빌뿐이다."
그를 찾아온 젊은이에게
야마오카는 짧은 한 마디를 남기고 자리를 피합니다.
새로운 시대,
야마오카와 와 함께 살아남았던 또 한 명의 특공대원이 있습니다.
후지에다 (이가와 히사시),
그 역시 무거운 마음으로 새로운 시대를 맞습니다.
손녀딸과 함께,
과거 자신과 동료들이 출격했던 가고시마의 비행장 가미카제 기념관을 방문한 후지에다.
관람이 끝나고 기념관 앞에서,
죽음을 향해 날아가던 그들을 마지막으로 위로해주던
작은 주점 '치란' 의 여주인 도미코(나라오카 토모코) 여사를 만납니다.
출격 당일,
기체 고장으로 다시 돌아온 후지에다.
평생을 마음의 짐을 안고 살아온 그에게,
전쟁의 무게는 사라진 과거가 아니라 고통스러운 현실임이 다시 떠오릅니다 .
그리고 얼마 뒤 눈 내리는 산에서 그는 주검으로 발견됩니다.
"죽은 동료들과 출격하겠다"
는 말을 남긴 체...
오랜 동료 후지에다 의 죽음,
그를 떠나보내는 야마오카 에게 후지에다의 손녀딸은 낡은 노트를 가지고 찾아옵니다.
살아남은 그가 짊어지었을 무거운 기억들을 바라보는 야마오카.
그는 가슴속에 묻어 놓았던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다들 여기서 날아갔어
단 하나밖에 없는 목숨을 버린 거야
모두 그 의미를 알고 싶어 무척 괴로워했지만,
마지막엔 미소를 보였지.
그 미소가 무슨 의미였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어.
울다가 웃다가 죽기 싫다는 생각에 너무 괴로워지지.
하지만 가족과 나라를 위해
자신이 죽어야 한다는 결심으로 날아간 거야."
오랜 시간 치란 주점을 지켜온
도미코 여사가 요양원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정들었던 치란 주점을 떠나는 자리,
송별회 자리에서 만감이 몰려오는 그녀.
죽음의 비행을 앞두고 치란을 거쳐간 많은 조종사들의 기억을 그녀는 더듬어 갑니다.
그런 그녀의 많은 기억 속에서도 유독 마음속에 남는 사람이 있습니다.
출격 전날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 없이 혼자서 술을 들이켜던 사람,
가네야마 소위의 모습입니다.
그런 그의 옆자리를 도모코 여사가 채워줍니다.
내일이 출격인 가네야마.
그는 처음으로 자신이 조선인 '김선재' 이며
그의 고향이 한국 안동 임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의 분대원인 야마오카, 후지에다 가 지켜보는 가운데
마지막으로 구슬픈 가락의 '아리랑' 을 부릅니다.
도미코 여사는 그의 유품 하나를 꺼냅니다.
'하회탈' 이 있는 조그만 주머니.
그리고 야마오카 에게 부탁합니다.
거동이 불편한 자신을 대신하여,
한국에 있는 가네야마(김선재) 의 가족들에게 그의 유품을 전해 달라고 말이지요.
망설이던 야마오카 는 한국으로 갈 결심을 합니다.
그 역시 전해주지 못했던 가네야마(김선재)의 마지막 유언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말하지 못했던 아내와 그의 사연도 있었습니다..
송별회가 끝나갈 무렵,
도미코 여사는 후지이에의 손녀딸을 보며,
죽음의 전장으로 떠밀려갔던 어린 특공대원들을 떠올리며
가슴속에 담아옸던 이야기를 합니다.
"이렇게 멋진 젊음으로부터
기쁨과 꿈을 빼앗은 겁니다
만세를 부르고,
일장기를 흔들며,
떠나보낸 겁니다.
죽인 겁니다.
진정한 어머니라면
자식에게 죽으라곤 못합니다.
자신이 죽더라도 자식은 지킬 겁니다."
안동에 도착한 야마오카 부부,
그런 그들 앞을 사람들이 막아섭니다.
일본을 위해 죽음의 비행에 내몰린 가네야마, 김선재.
유가족들에게 일본에서 온 그들은 불편한 존재들입니다.
그런 이들에게 야마오카 는
조선인 조종사 가네야마(김선재) 의 마지막 유언을 전합니다.
난 내일 출격입니다.
고마워요.
난 당신 덕분에 정말 행복했어요
나는 내일 적함을 격침시킬 겁니다.
하지만 그것은 일본을 위한 것이 아니오
난 조선인의 긍지를 갖고,
나의 가족과 당신을 위해 출격할 거요.
조선민족 만세.
감사합니다.
부디 행복하게 살아줘요.
그리고,
그가 들었던 아리랑 노래의 구절을
마치 어제의 일인양 기억을 더듬으며 부릅니다.
고개를 숙이며 통역을 통해 이야기를 듣고 있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 아내 도모코 가 앞으로 나섭니다.
오랫동안 가슴에 담아온 마지막 이야기를 꺼내기 위해서...
이 영화는 식민지 조선인이면서도,
일본군 장교의 신분으로 죽음의 비행을 해야 했던 한 젊은이와 주변인들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1944년 10월,
대만과 필리핀 전역에서 남은 베테랑 파일럿들을 모두 소진해버린
일본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습니다.
전쟁 초기 최고의 전투기로 이름을 날리던
일본의 '제로센' 전투기는 미국의 '헬캣' 전투기에 밀리고 있었고,
평균 2년 이상의 전투비행 경험이 있었던 미군 조종사들과 달리,
겨우 3달 미만의 초보 비행 경험을 가진 조종사들을
전선에 투입해야 할 정도로 일본군의 수준이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항모 이착륙 훈련에서도 사상자가 속출하던 상황,
차라리 저런 신병들을 훈련시킬 시간에 폭탄을 매달아 적의 배로 돌진하게 만드는 것이
아름다운 장면이 될 거라 생각을 하는 이들이 생겨납니다.
그리고,
이런 엽기적인 발상이 비극적이게도 채택이 되어 악명 높은
'자살돌격' 이라는 공격 형태를 만들어냅니다.
이 공격에 효용에 대한 논란은 많습니다.
(관련 내용은 나무위키 등의 문서에 잘 기술되어 있습니다).
효과가 있었다 (vs) 가성비 최악의 공격이다.
논쟁은 아직도 존재하지요.
하지만 이 전술에 대한 평가는 미국이나 일본 모두 동일합니다.
"가미카제 파일럿들
'일왕 만세' 를 외치며, 기쁨에 겨워 울고,
용기 있게 비행기에 올랐다는 내용은
모두가 거짓이다.
그들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들 같았다.
모두가 바닥을 보며 비틀거리며 걸어갔다.
어떤 이들은 제대로 서있지도 못해
병사들에게 끌려와
비행기 안으로 밀어넣어졌다."
(와타나베 츠네오, 요미우리 신문 대표)
"조종사라는 고급 인력을
무의미하게 소모하다니.
나라면
그런 명령을 내린 놈을 그 자리에서
쏴 죽였을 것이다
(더글라스 맥아더, 남서 태평양 방면 연합군 최고사령관)
한마디로...
<미친짓>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는 것이지요.
문제는 이런 미친짓이 육/해/공군 모두에게서 실시되었고,
우리가 잘 아는 자살항공기, 자살어뢰, 자살보트, 자살기뢰 ....등
수많은 양산형을 만들게 됩니다.
이 모든 작전들이 '타군에 질수 없다' 는 마인드를 가진
각 군의 고위 장교들의 광대짓거리로 만들어졌음을 아직도 이야기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유가족을 만난 두 부부는
가네야마(김선재) 의 부모의 묘에서 반딧불이를 발견합니다.
그의 아내는 이야기합니다.
"한국에 오기를 참 잘했어요."
그렇게 그들은 위안을 얻습니다.
모든 과거로부터 면죄부를 얻은 것처럼 말이지요.
하지만 이상합니다
분명 수많은 젊은이들이 광대들의 놀음으로 죽어갔는데,
영화에는 정작 그들에 대한 아무런 언급도 분노도 없습니다.
영화는 그런 언급 대신,
<평화> 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죽은 이들을 기리는 기념관과
대책 없는 사무라이들의 건들거리는 대사들로 가득합니다.
실제 자살 출격을 앞둔 이들의 심경은 비참했습니다.
강요된 죽음의 길을 떠나야 하는 이들,
'조국, 민족, 사랑 을 위하여'
라는 거창한 구호를 대신
'살고싶다'
가 이들의 본마음이 아니었을까요?
안동을 방문한 야마오카가
아리랑을 부르는 대신 무릎을 꿇고 울었다면 어땠을까요?
사실 자기도 죽으러 가기 싫었었노라고,
비행기를 몰던 대부분이 그런 마음이었고,
광기 어린 시대에 선택지 없이 희생된 이들이라고,
그렇게 말했다면 어땠을까요?
더하여
유품을 전하고 유언을 전했으니,
과거의 빚은 다 청산했다며 웃음 짓는 태도는
피해자인 우리들의 머리를 갸웃하게 만듭니다.
실제 이 영화가 일본 내부에서는 인기를 몰았음에도,
한국에서는 혹평에 시달렸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일본 극우세력들은 역시 영화를 비판했다고 합니다.
'일본을 위해 죽는 것이 아니다' 라는 대사들 때문이었지요).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의 한계는 명확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인의 시각에서 바라본 '전쟁' 의 의미,
전쟁의 원인을 비판하고 후세에게 교육하는 것이 아닌,
역사로부터 단절과 회피를 선택하는 사람들.
그리고,
피해자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다고 하더라도 원인을 만든 살아있는 권력들을
'비판' 하지 못하는 일본 사회의 한계를 반영하고 있으니깐요.
그런 의미에서 여러모로 노력한 작품임에도 영화의 메시지는 아쉽습니다.
어쩌면 한국과 일본 모두의 아픔일 수도 있는 전쟁 징용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면서
'우리 모두가 힘든 시기를 지나온 피해자이니 이제 모두 잊고 화해하자'
라는 메시지가 진하게 묻어 나오기 때문입니다.
점점 미화되는 제국주의 기억물들 사이에서,
도미코 여사 같은 이들의 절규는 빛이 바래버리고,
아오야마 부부의 한국 방문은 어색하기만 합니다.
2014년, 일본은 가미카제 기념관을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 하려 시도합니다.
2019년, 일본은 헌법을 바꾸려 시도 중이고 한국과의 관계는 갈수록 악화되고 있습니다.
2001년,
역사의 상처를 바라보던 그들의 눈이 아직도 발전하지 않은 것 같아, 그리고 침략전쟁을 미화하던 그들의 교육 효과가 조금씩 나타나는 것 같아 옆 섬나라가 불안하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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