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건축가의 출장기’가 탄생하기까지
글을 써야겠다고 처음 생각했던 건 막 스무 살이 되던 해였다. 그 당시 나 역시 여느 건축학도들과 마찬가지로 제도실에서 밥 먹듯 밤을 새 가며 설계 과제를 하거나, 술을 마시거나, 혹은 그 둘을 동시에 하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도서관에 들러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의 일화를 읽게 되었다. 지금도 현대 건축의 아버지라 추앙받는 그는 십 대 시절부터 서랍 한편에 자신의 글과 그림 등을 잘 정리해두는 습관이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좀 재미있었다. 훗날 자신이 유명해질 것을 미리 알고 일종의 아카이빙(Archiving)을 한 것이라는 믿기 힘든 이야기였다.
블로그를 시작하게 된 것도 그즈음이었다. 거장 건축가가 그랬던 것처럼 감히 스스로 유명해질 것이라는 생각은 결코 아니었겠지만 나의 글과 생각을 정리해두는 습관을 들이는 건 나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작은 글 공간에는 학교를 졸업하고 건축가로 일하고 있는 오늘까지 십수 년 간의 기록들이 고스란히 담겼다. 300편이 조금 넘는 글들은 평범한 여행기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 평범한 글들 덕분에 출판 제의를 받아 원고 작업을 하기도 했고 방송에 출연하는 등 특별한 추억도 많이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정말 쓰고 싶었던 글은 따로 있었다. 누구나 쓸 수 있는 여행기보다는 건축가만의 특별한 시선을 듬뿍 담은 특별한 글을 쓰고 싶어 시작했던 블로그였기 때문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일을 시작하면 여행기보단 조금 더 수준 있는 ‘건축가스러운’ 글을 쓰게 될 줄 알았지만 그럴 용기도, 내용도, 식견도 턱없이 부족했다. 게다가 건축가들이 즐겨 쓰는 주제의 글들은 대부분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었다. 나의 글이 하나 둘 쌓여갈수록 오히려 고민이 깊어지는 까닭이었다.
'출장기'라는 콘텐츠를 처음 생각해낸 건 작년 봄 일본을 다녀와서였다. 이미 사원, 대리이던 시절부터 이탈리아, 중국, 일본 등지를 여러 차례 업무차 다녀오긴 했었지만 책임자 직급을 달고 간 출장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무래도 일도 손에 익고 마음에 여유도 생겨서인지 다른 때보다 혼자 생각할 시간이 조금 더 많았었고 자연스럽게 '출장'이라는 주제로 처음 글을 써보게 되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게 바로 '젊은 건축가의 일본 출장기'였다.
그해 여름에 브라질로 또 출장이 잡혔다. 나로서는 난생처음으로 밟아보는 남미 대륙이었기에 볼 것도, 할 일도, 쓸 말도 많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게다가 이미 '출장기'라는 주제로 글을 엮어본 뒤였으니 두 번째 출장기가 나오는 건 시간문제였다. 곧 열 편의 글이 '젊은 건축가의 브라질 출장기'라는 이름으로 묶이게 되었다.
블로그에서만 연재하던 두 편의 출장기는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다. 나는 자연스럽게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힐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었고 '브런치'를 알게 되었다. 지난 3월, 단번에 브런치 작가 승인을 받은 뒤 곧바로 첫 번째 글을 올렸다. 이후 지금까지 약 100일이 넘는 시간 동안 앞선 두 편의 '출장기'와 '젊은 건축가의 프랑스 휴가기'까지 총 세 권의 '브런치 북'을 펴냈고 무려 14만 명이 넘는 독자들이 나의 글을 읽었다.
구독자 '200명'은 브런치를 시작하며 나름 세워본 첫 번째 목표점이었다. 그 이유는 내 블로그의 이메일 정기 구독자의 수가 200명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유명 작가들에 비하면 적은 숫자일지는 몰라도 나에게만큼은 대단히 의미가 있는 까닭이다. 지금은 연재 중인 '산으로 간 이탈리아 출장기'를 계획한 열 편의 글 중 절반까지 올렸고 추가로 '미국 편'과 '중국 편'의 연재를 준비하고 있다. 올해 안으로 총 여섯 나라의 출장기 연재를 모두 마치면 내년 봄 정도에 단행본으로 묶어 출판하는 작은 목표도 세워 두었다.
아직까지 웹상에서 '건축가의 출장기'라는 주제로 연재되거나 묶인 글은 보지 못했다. 세상에 수많은 건축가와 작가가 있지만 그 어디에도 없는 나만의 특별한 콘텐츠라는 사실이 자판을 두드리는 손끝에 조금 더 힘을 실어주는 것만 같다. 무엇보다도 부족한 글을 항상 즐겁게 읽어주시는 구독자들 덕분에 오늘도 힘을 내서 조금씩, 그리고 꾸준히 나의 이야기를 적어 내려 갈 용기를 얻는다. (끝)
*모든 구독자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