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규빈 Apr 16. 2020

에어프랑스 티켓 두 장을 샀다, 무이자 3개월로

작은 수도원 기행, 프롤로그

 결혼을 하고, 나는 가장이 되었다. 이제는 늘 두 사람이 함께니 무엇을 하더라도 혼자일 때 보단 어렵고 힘이 든다. 하물며 여행도 마찬가지다. 철없던 연애시절엔 하룻밤에 5유로짜리 호스텔에도 곧잘 묵곤 했었다. 하지만 일 년에 단 한번 부부가 함께하는 여름휴가에 그런 숙소를 택할 수는 없는 법이다. 미리부터 세워보는 휴가 계획에는 비행기 값도 두 배, 식비도 두 배, 숙박비는 두배 플러스 알파로 계산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우리 회사의 공식 여름휴가 기간은 주말을 합쳐도 단 6일이 전부였다. 제아무리 머리를 굴려본들 우리 부부의 이번 휴가지는 멀리 가도 동남아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난 올해 여름 꼭 '라 투레트'에 가봐야겠다고 결심했다. 말이야 쉽지만 프랑스까지 가려면 돈도 시간도 꽤 많이 들게 분명했다. 일주일도 채 안 되는 짧은 일정 중에 무려 이틀이나 비행기 안에 꼼짝없이 앉아있어야 하는 것도 정말 바보 같았다. 하지만 한 번 마음먹으면 쉽게 고치지 않는 나였다. 생각은 확고했다.


 학생 시절부터 도면과 사진을 통해 수도 없이 보아온 '라 투레트'였다. 그런 그곳을 여태껏 못 가봤다는 사실에 순간적으로 형언할 수 없는 자책이 밀려들었던 것 같다. 늦었다고 생각됐을 때가 가장 빠른 때라고 했다. 그날로 나는 에어프랑스 티켓 두 장을 샀다. 무이자 할부 3개월로.


리용 IN - 니스 OUT, 나흘 안에 700km를 달려야 하는 고된 일정이다.


 일주일 안에 프랑스를 왕복하는 빡빡한 일정을 세웠다. 심지어 라투레트는 직항편도 없는 리용(Lyon) 근처에 있었다. 이왕 멀리까지 가기로 마음먹은 김에 니스 근교의 '르 토로네 수도원'도 여정에 넣었다. 계획을 세우면 세울수록 욕심도 커지는 건지 자꾸만 일정은 비현실적으로 늘어만 갔다. 고민 끝에 승선생님의 지혜를 조금만 빌리기로 했다. 선생님께선 이미 여러 차례 수도원 기행을 다녀오셨고 그때마다 가이드북을 손수 제작하셨다. 사무실 서고에 꽂혀있는 오래된 가이드북들을 꺼내어 두어 번 정독했다. 그중 꼭 가보고 싶은 장소만을 추려 나만의 일정표에 추가시켜 나갔다. 마지막으로 펜을 들어 모든 지점들을 하나의 선으로 연결하니 비로소 700여 km를 차로 달리는 고달프고도 벅찬 여정이 완성되었다. 참고한 페이지들만 따로 추려 제본을 하니 단 하나뿐인 나만의 가이드북도 한 권 생겼다.


 길눈이 어두운 아내를 대신해 여행 계획과 경로를 정하는 건 언제나 나의 임무였다. 떠나기 전에 많은 에너지를 써버려서 인지 막상 여행지에 도착해서는 시큰둥한 편인 나다. 반면 아내는 예민한 감각과 풍성한 감수성으로 현장에서 더 생기가 넘치는 타입이다. 서로 상반된 성향에도 우리의 여행은 의외로 대 성공인 경우가 많았다. 출발을 앞둔 어느 날 저녁, 식사가 막 끝난 식탁 위에 완성된 여행 지도를 펼쳤다. 나는 신나게 침을 튀겨가며 시시콜콜 모든 계획을 아내에게 소상히 일러바쳤다. 가만히 듣고 있던 아내는 이내 두 눈을 끔뻑거리며 나에게 되물었다.


 '표 이미 샀지? 그럼 됐어'


 내가 세우는 여행 계획은 보통 지나치게 자세하고 빡빡한 편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만일을 대비하여 그렇게 하는 것이기에 실제로는 그 절반도 다 못 지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여행 방식이 이제는 익숙해서인지 아내는 떠나기 전 나의 계획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이견이 잘 없다. 아내 입에서 나오는 '됐다'라는 말은 나만 알아들을 수 있는 일종의 'OK' 사인인 셈이다.


 비로소 모든 준비가 끝이 났다. 출근만 해도 등줄기에 주르륵 땀이 흐르던 그해 초여름, 내 마음은 이미 지중해와 나란히 뻗은 A8번 고속도로 어딘가를 달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계속)




라 투레트, Éveux


유니테 다비타시옹, Marseille


르 토로네, Le Thoronet


생 레미 드 프로방스, Provence


방스, Vence


일정

1일차 (인천-파리-리옹)
2일차 (리옹-생 레미 드 프로방스) 라 투레트
3일차 (생 레미 드 프로방스-고르드-마르세유) 생폴 드 모졸, 세낭크 수도원, 유니테 다비타시옹
4일차 (마르세유-르 토로네-벙스) 지중해 문명 박물관, 르 토로네, 방스
5일차 (벙스-니스-파리-인천)


*젊은 건축가의 프랑스 휴가기는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에 연재됩니다.

작가의 이전글 첫인상, 브라질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5가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