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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규빈 Mar 03. 2020

첫인상,
브라질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5가지

젊은 건축가의 브라질 출장기 (2)

  극도의 무지(無知) 앞에서, 인간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가진 단편적인 정보만을 조합해 허구의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특히나 그 대상이 단순한 사물이 아닌 도시, 문화와 같은 형이상학적인 대상인 경우 사실은 더욱더 왜곡되고 실체와 멀어진다. 지금 나는, 출장을 떠나기 전 막연하게 가졌던 브라질에 대한 선입견에 대해 반성을 하고 있는 중이다.


  예전에 아프리카를 처음 여행하기 전에도 비슷한 실수를 범했었다. 마치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 '초원', '야생동물', '소수민족' 따위의 단편적인 이미지만으로 지구 상에서 가장 거대한 대륙을 일반화해버렸기 때문이다. 때문에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 한복판에서 번쩍이는 고층 빌딩 숲을 마주했을 땐 스스로가 부끄러워 숨어버리고만 싶었다.


상파울루 미술관(MASP)의 필로티를 통해 바라본 시내 전경


  브라질 상파울루의 첫인상은 '도시' 그 자체였다. 인구 천백만. 광역인구까지 포함하면 이천만을 훌쩍 넘는 세계적인 메가시티(Megacity)중 하나가 상파울루이니 제대로 본 것일 게다. 특히 내가 주로 머물렀던 파울리스타 대로(Av. Paulista)는 브라질 경제와 문화의 중심가로서 차와 사람으로 북적이는 건 물론이고 세련된 차림의 비즈니스맨과 고급스러운 상점가 또한 즐비하다.


 생애 첫 남미대륙, 나의 눈에는 브라질의 어떤 것들이 가장 신기했을까. 딱 다섯 가지만 추려보았다.




7월 말의 상파울루는 아침저녁으로 일교차가 꽤 심한 편이었다.


01

날씨,

브라질의 겨울은 생각보다 꽤 춥다


  남반구인 브라질로의 여행에서 가장 큰 인상을 남긴 건 당연히 날씨였다. 출국일인 7월 말 한국의 날씨는 말 그대로 한 여름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반팔티와 반바지 같은 얇은 옷들 위주로 가방을 꾸렸었다.

 

'그래도 명색이 삼바의 나라(?)인데 추워봐야 얼마나 춥겠어?!'


쿠리치바에서 상파울루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 두터운 재킷은 물론 패딩점퍼까지 보인다.


  가방이 무거워지는 게 싫었지만 정말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기모 청바지와 초겨울용 누빔 재킷을 마지막으로 가방에 넣었다. 그리고 이 선택은 그야말로 신의 한 수였다!


  분명 상파울루의 낮 최고기온은 25도 정도로 반팔 차림이 어색하지 않을 날씨였지만 해가 떨어지자 갑자기 10도 가까이 기온이 떨어지면서 곧바로 한기가 느껴졌다. 특히나 사흘째 되던 날에는 한 차례 비가 내린 뒤 낮 기온마저 20도 아래로 내려가 버렸다. 


내가 방문한 주간의 날씨, 하루 중 일교차가 10도 이상 크게 난다.


  기온만 보면 일교차가 심한 늦여름~초가을 날씨지만 겨울에도 영하로 떨어지지 않는 상파울루의 거의 모든 건물은 난방시설이 없다. 때문에 환절기면 으레 보일러를 키는 한국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에겐 실내에서 더욱 춥게 느껴질 수도 있다. 말 그대로 '냉골' 같은 호텔 방에서 잠을 청하기 위해선 두꺼운 이불을 몸에 칭칭 감아야만 했다. 혹시라도 7, 8월에 상파울루를 찾을 계획이라면 가방 한편에 경량 패딩 하나 정도는 꼭 챙기시길.




물 한 병? 볼펜 한 자루? 신용카드로 다 된다!


02

신용카드,

환전이 필요 없는 여행


  이번 출장을 위해 준비해 간 현금은 미화 100불짜리 8장이었다. 한국에 미리 브라질 화폐로 환전하는 것보다 환율이 상대적으로 괜찮은 미화 고액권을 준비해 현지에서 환전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막상 현지에 도착해 이것저것 하다 보니 환전할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한데 그러는 사이 한 가지 깨달은 게 있다. 이 나라, 생각보다 카드를 잘 받는다?


대부분의 가게 입구에선 비자/마스터 카드 마크를 쉽게 찾아볼 수 있고.


미술관이나 박물관 티켓팅도 물론 가능하며,


길 가의 작은 가판대에서조차 신용카드는 다 받는다!


  처음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식당에 들어가면 카드를 받는지 여부부터 물어보고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한두 차례 그러다 보니 카드를 거절하는 곳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소액결제에는 어쩐지 눈치가 보이는 한국보다 오히려 훨씬 편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한국과 차이가 있다면 결재 시 직불(Debit)인지 신용(Credit)인지 말해야 하고, 영수증에는 볼펜으로 직접 서명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직불카드가 거의 쓰이지 않는 한국에서는 듣기 어려운 질문이지만 브라질에선 그에 따라 결재 루트나 수수료가 달라진다고 한다. 단지, 소액 무서명 거래와 전자서명에 익숙하다 보니 오랜만에 펜으로 서명하는 게 좀 어색할 뿐이었다.


이번 출장에서 유일하게 만져본 현금이라곤... 두바이 공항에서 거스름돈으로 받은 디르함 약간 뿐.


  결국 난 이번 출장이 끝날 때까지 환전을 일절 하지 않았다. 신용카드만 쓰다 보니 브라질 돈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구경조차 할 수가 없었다. 물론 교통수단을 이용할 때에도 불편함이 없었다. 왜냐면 출장 내내 버스나 택시를 탈 일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게 가능했는지는 바로 아래에서!




현지 교민들로부터, 아무리 가까운 거리라도 꼭 우버를 타라고 조언받았다.


03

우버,

불안한 치안을 극복하는 방법


 

 겉으로 보이는 상파울루의 시내는 참 아름답고, 활기차고, 평화로웠다. 하지만 워낙 브라질의 치안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가 많아서 마음만큼은 늘 초긴장 상태였다.


  우버는 치안이 불안한 시내 곳곳을 비교적 자유롭게 다니게 만들어준다. 이미 상파울루나 쿠리치바 시내에는 수 천대의 우버 등록차량이 골목골목을 누비는 중이다. 게다가 나처럼 짧게 여행하는 사람들은 지리에 익숙해질 틈도 없을 터, GPS로 연동하여 목적지만 검색하면 알아서 기사와 차가 수 분 내 내 앞으로 대령하는 우버는 어쩌면 유일한 선택지일지도 모르겠다.


지리에 서툰 이방인에게, 우버가 제공하는 실시간 위치 추적 기능은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준다.


  둘째 날 아침부터 본격적인 시내 탐방에 나섰다. 본래 새로운 도시에 가면 2만 보, 3만 보씩 두 발로 걸어 다니는 편이라 애초에 걷기로 마음먹었던 것 같다. 하지만 상파울루의 중심가인 파울리스타 대로를 조금 벗어나자 갑자기 개미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는 으슥한 골목길에 들어서게 되었고 이유를 알 수 없는 공포감을 느꼈다. 결국 난 목표했던 행선지에 도착하기 전에 걸음을 돌렸고 그날로 우버 앱을 다운로드하였다.


  5일 머무는 동안 우버를 10회 이상 탑승했다. 상파울루와 쿠리치바 두 도시에서 내가 만난 대부분의 우버 기사들은 상당히 젊었고, 영어를 꽤 하는 편이었다. 더러 후기 중에는 기사들이 길을 몰라서 고생했다는 사람도 있지만 적어도 내 경우에는 다들 GPS를 충실히 따라가는 모범 운전자들이었다. 물론 우버마저도 불안하다고 느끼는 사람이라면 기사의 운행 횟수나 별점 등을 좀 더 세밀하게 따져가며 이용하길 추천한다.


브라질에서 우버는, 단순한 교통수단을 넘어서 하나의 문화를 형성하는 일에도 참여하고 있었다.


  쿠리치바에서의 마지막 방문지였던 아라메 극장(Ópera de Arame) 매표소 건물 한편에는 우버 로고가 붙어있다. 이유인즉슨 아라메 극장을 만들 당시에 우버에서 스폰서십을 해 주었고 이후 지속적인 홍보를 위해 우버로 이곳을 방문하는 기사들에 한하여 수수료를 면제해주고 있다고 했다. 재미있는 마케팅이다.


한국에선 찾아볼 수 없는 진풍경, 과를류스 공항의 우버 존


  우버가 가장 위력을 발휘하는 곳은 단연코 공항이다. 낯선 도시에 처음 도착한 이방인들은 언어도, 화폐도, 지리도 익숙할 리가 만무하다. 당연히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순간이 가장 긴장되고 힘들 텐데 이때 우버를 사용하면 꽤 많은 것들로부터 편해질 수가 있다.


  상파울루 과를류스 공항의 도착층 앞에는 우버 픽업만을 위한 존이 따로 마련되어 있어 눈길을 끌었다. 더욱 재미있는 건 우버 티셔츠를 입은 상주 직원들이 함께한다는 점이다. 앱 사용에 익숙지 않은 노인들에게 사용법을 알려주기도 하고, 손님을 찾지 못해 애타게 기다리는 기사들을 위해 목청 터져라 손님의 이름을 불러주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그야말로 '진풍경'이었다.




포르투갈어로 되어있는 영어 과외 전단지


04

포르투갈어,

스페인어와 닮아 더욱 반가웠던


  브라질은 중남미에서 유일하게 포르투갈어를 쓰는 나라다. 막강한 인구 덕택에 전 세계 화자의 85% 이상이 브라질에 있어 포르투갈 본토 보다도 많으니 실질적으로 '포르투갈어'라고 하면 세계적으로도 브라질어를 기준으로 가르치고 배운다고 한다.


  헌데 이 포르투갈어는 스페인어와 많이 닮아있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스페인어와의 언어적 유사성을 분석해보니 포르투갈어 89%, 카탈루냐어(스페인 바르셀로나 지역 언어) 85%, 이탈리아어 82% 순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이게 참 흥미로운 게 스페인 내의 지역에서 쓰는 언어보다 되려 옆 나라의 언어가 더 스페인 표준어와 가깝다는 뜻이다. 정말 단순히 비유하자면 경상도 사투리보다 일본어가 더 알아듣기 쉽다는 말이니 이것 참 재미있다.


상파울루 미술관(MASP)의 안내판, 왼쪽이 포르투갈어/오른쪽이 영어


  학창 시절 스페인어를 조금 익혀둔 게 의외로 도움이 됐다. 스페인어와 마찬가지로 알파벳을 쓰는 문자언어는 상당히 닮아서 기본적인 수준의 단어들은 대략 그 뜻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정도다. 간판이나 표지판, 메뉴판 등을 읽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을 정도였다.


  다만 음성언어로 가면 영 딴판인데 비슷하게 생긴 단어도 스페인어보다 상대적으로 비음이나 입이 안으로 오므려지는 발음의 경향이 강해 전혀 다르게 들렸다. 잘 모르고 들으면 프랑스어 화자가 스페인어 철자를 읽는 느낌과도 약간 비슷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포르투갈어 기초를 한 번 배워봐야겠다. 




미술관에서 만난 천진난만한 브라질의 아이들


05

인사와 미소, 

언제 어디서나 눈만 마주치면 따봉!

 

 정열의 나라 브라질. 직접 겪어보기 전까지는 그 정열이 단순히 미디어에서 비춰주는 축구나 삼바와 같은 육체적인 에너지를 뜻하는 줄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느낀 이들의 정열은 외면보다는 내면에서 찾을 수 있었다.


  호텔 복도에서든, 엘리베이터 안에서든, 길 위에서든 브라질 사람들은 눈만 마주치면 나에게 '봉 지~아!(Bom dia, 좋은 아침) 하고 인사를 건넨다. 하도 인사를 많이 받아서 영어로 치면 '파인 땡큐 앤 유?'에 해당하는 포르투갈어 표현을 연습해두고 써먹었을 정도다. 따봉(Tá bom)'이라는 표현도 정말 과장 조금 보태서 몇 초에 한 번씩 들을 수 있을 정도다. 그야말로 온 도시가 따봉 따봉!


무사히 출장 임무를 완수하고, 나 역시 따봉을 외쳤다!


  추억의 음료 광고를 통해 한국사람에게 '최고!'의 대명사로 잘 알려진 따봉이라는 표현은 사실 포르투갈어다. 하지만 본래 뜻은 그냥 'OK', 'No problem'에 더 가깝다고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브라질 사람들이 연신 따봉을 외치면 어쩐지 내 기분마저 좋아지는 경험은 한국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일종의 보너스(?)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이 나라, 생각보다 더 재미있어지려 한다! (계속)


*젊은 건축가의 브라질 여행기는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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