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아치는 업무 속에서 살아남기
하루하루는 참 긴 것 같았는데, 그래서 너무너무 힘들었는데... 정신차리고 보니 놀랍게도 연말이다. (...분하게도..)
다른 직업군들도 그렇겠지만, 학교 역시 연말 연시가 가장 바쁜 시기이다. ‘봄방학’이 존재하던 몇년 전까지만 해도 모든 마감이 ‘2월’에 되었기 때문에 그래도 겨울방학을 빌어 일처리를 할 시간을 벌수 있었지만, 늦어도 1월 초까지 종업, 졸업 등 모든 학교 행사를 종료하는 현재와 같은 시스템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학생들은 겨울방학을 길게 누릴 수 있게 되었지만, 그만큼 교사들은 12월까지 수업과 동시에 모든 학년말 업무 처리를 완료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좋은 점도 있으나 그만큼 부담감도 큰 부분이 있다.
11월은 이렇게 몰아치는 학년말 업무 파도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는 시기이다.
일단 6학년은 졸업원서를 제출하고 졸업과 관련된 각종 준비를 시작한다. 학교에는 교육과정 평가회, 다면평가, 관외 내신서 제출, 학년말 성적처리 등등 각종 학년말 업무와 관련된 공문과 메세지들이 날아들기 시작한다. 행정실에서는 예산과 관련하여 집행하지 못한 부분을 계속 확인하고, 차년도 예산 요구서를 받기 시작한다. 11월 자체가 휴업일이 없다보니 빡빡하게 수업을 하느라 긴장도도 높고 힘이 드는데, 이런 업무 메세지들까지 오기 시작하면 서서히 부담감이 밀려들게 된다. 각종 잡생각들(내년에는 어떤 학년을 가야하나? 학교를 옮겨야 하나 말아야 하나? 담임을 해야 하나 전담을 해야하나? 어떤 업무를 해야 하나? 등등)로 심기가 불편해지는 것은 덤이다.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만한 점은 같은 학년을 현재 3년째, 같은 업무를 2년째 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학교 규모가 작다보니 가능한 일이었고, 감사히 생각하고 있다. 같은 학년과 업무를 연속으로 할 때의 좋은 점은 어느 시기에 무엇을 하면 되는지를 알고 추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점이 주는 메리트는 생각보다 정말 크다. 왜냐면 같은 학년과 같은 업무를 연속으로 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초등교사라는 직업의 특성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해마다 학년과 업무를 협의한 후 분장하는 형태이다보니, 내가 올해 A라는 업무를 맡았다고 해서 내년에도 A라는 업무를 꼭 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학교를 옮기게 된다면 더더욱 어떤 업무를 하게 될지 알 수 없으며 모두가 선택하고 남은 업무(기피업무)를 하게 될 확률이 높다. 그러다보니 아무리 연차가 높더라도 한번도 해보지 않은 업무가 있을 수 있고, 그럴 경우에는 신규와 크게 다르지 않은 업무처리로 인해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학년도 마찬가지다. 가르치는 학년이 매해 바뀐다면 교육과정을 매해 새로 연구해야 하지만, 같은 학년을 연속으로 가르친다면 그럴 필요가 없이 작년의 자료를 변형하여 활용할 수 있고 업그레이드도 가능하기에 가르침의 질도 훨씬 높아진다.
어쨌든, 유리한 조건에서 11월을 맞이하긴 했지만 그래도 만만치 않은 것은 마찬가지다.
업무달력에 빼곡히 적힌 스케쥴을 보며 한숨을 한번 푹 쉬었다. 맡은 업무와 관련해서 들어야 하는 연수만 1주일 간격으로 2개가 잡혔고, 거기에 학교 교육과정 연수도 같은 주에 겹친다. 학교가 작다보니 위원회가 많아 각종 회의도 여러번이다. 들은 연수를 바탕으로 내가 직접 해야 하는 교직원 연수자료를 만들고 계획서를 올린 뒤 연수를 진행해야 한다. 그리고 선생님들이 작업한 것들 하나하나 틀린 부분이 없는지 확인도 해야 한다. 따로 교육청 측에 점검도 받으러 나가야 한다. (물론 담임으로서 해야 하는 각종 성적처리, 생기부 작성, 학급마무리 활동 등은 다 별도이다.) 당분간 바쁘긴 하겠지만, 그래도 어찌어찌 달려보면 12월 중순 안에 급한 업무는 일단락 지을 수 있을 듯 보인다.
성격상 일을 미루면 불안해지고 가슴이 답답해지는지라, 어떻게든 보이는대로 해치우는 스타일인데 평소에는 이런 성격이 참 싫지만 연말에는 큰 도움이 된다. 일이 몰려드는 시기에 한번 미루기를 하게 되면 자칫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연말은 부담스럽고 조심스럽다. INFJ이기는 해도 ‘파워 J'는 아닌 나를 ’슈퍼파워J‘로 만드는 시기, 그게 바로 연말이다.
마지막 한 장 남은 12월 달력을 슬쩍 보면서, 빨갛게 박혀있는 ‘24’일을 손가락으로 쓱 만져보았다.
열심히 한달 버티고, 그래서 이날은 행복하게 쉬며 연말을 누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화...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