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교사와 '거짓'교사

교권침해, 반복과 상처

by 혜윰


오늘도 어제도, 아니 그저께도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정확히는 잠이 들었다가 새벽에 깨어난 후 출근시간까지 자다깨다를 반복했다고 해야 맞겠다. 이미 이런 문제를 여러번 겪어온터라, 어제는 잠시 묵혀뒀던 수면유도제를 먹고 잠이 들었다. 덕분에 조금 길게 자기는 했지만 역시나 뒤숭숭한 꿈자리 때문에 하루종일 머릿속은 여전히 뿌연 안개가 낀 듯 불편했다.


그나마 평화롭던 마음에 돌이 던져진 건 얼마 전, 한 방송이 시발점이었다.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학부모들의 이야기라는 시사다큐의 예고편을 보는 순간부터 손이 떨렸고, 차마 본방은 보지도 못하다가 주말이 되어서야 빼꼼하고 용기를 내어 영상을 보았더랬다. 그리고 혹시나 했으나 역시나였던 그 내용을 보며 느껴지던 참담한 마음. 뭐라 말로 표현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작년 서이초 선생님의 사건이 일어난 이후, 교사들이 아동학대로 협박받고 민원에 시달리는 사실이 대중에게 알려지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었다. 나도 하나의 검은 점으로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시위에도 참여하고 투표도 하고 했던 기억이 난다. 실제 학교에서 무엇이 변했냐 묻는다면, 솔직히 시원하게 답할 수 있는 건 아직 없지만 그래도 노력했으니까, 조금은 달라지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방송을 보며 분노를 느낀 사람도 많을 것이고, 공감을 하는 사람도 많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직 교사로서 느낀 가장 큰 감정은 바로 공포와 무력감이었다. 교직생활을 이어나간다면 언젠가는 나도 저런 학부모를 만날 지도 모른다는 '공포', 그리고 말 그대로 누구의 도움도 없이 당해야 한다는 사실과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으로 인한 '무력감'. 아무 잘못도 없이, 나의 능력이나 노력과 상관없이 오로지 '운'에 의해 결정되는 이 상황이 두렵지 않을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될까.


나 역시 17년 교직생활을 하며 수없이 많은 학부모를 만났다. 그중에 정도는 좀 달라도 방송에 나왔던 학부모들처럼 경우없이 연락을 하거나 막말을 하고, 말도 안되는 억지를 부리는 사람도 당연히 있었다. 한달동안 밤 10시마다 전화를 걸어서 자기 아이가 힘들고 나도 힘들다는 얘기를 한시간씩 전화로 호소하던 학부모, 자기 아이가 맞은 건 못 참아서 찾아와 삿대질하더니 자기 아이가 때린 건 그럴 수도 있다고 말하고 툭 전화를 끊던 학부모, 선생님은 아직 애를 안낳아봐서 모르는거라며 훈계하던 학부모, 퇴근시간에 대뜸 찾아와 낮에 아이가 친구랑 싸운 일로 따지고 들던 학부모, 애가 바빠서 숙제를 할 시간이 없으니 숙제 내주지 말라던 학부모, 선생님이 조퇴를 자주 한다며 민원을 넣던 학부모, 왜 맨날 똑같은 옷 입고 출근하냐고 타박하던 학부모, 샌달에 맨발로 출근했더니 품위가 없다며 흉보던 학부모...


요즘 다시 그 모든 이들의 표정과 말들이 머릿속을 계속 돌아다닌다. 부임하고 얼마 안되었을 때는 내가 부족해서겠지 생각하고 넘기기도 했고, 뭔가 대응을 잘못해서 그런가보다 하기도 했다. 그냥 그렇게 넘기고 괜찮아 진 줄 알았다. 잊어버린 줄 알았다.


하지만 사실 그 모든 것은 하나도 소화되지 못한 채 내 속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 일들이 모두 내가 정말로 잘못해서 받았던 항의라면 그렇지 않았을 텐데. 경력이 충분이 찬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왜 그 전화를 다 받아줬을까, 왜 가만히 듣고만 있었을까, 왜 그때 이렇게 말해주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들이 들면서, 동시에 그랬다한들 뭐가 달라졌을까 하는 의구심과 무력감이 함께 떠올라 괴로워진다. 마치 가슴에 구멍이 뻥뚫린 것처럼, 바람이 빠지고 맥이 풀리는 것처럼.


요즘 교사들사이에는 "참교사는 단명한다"라는 말이 우스갯소리처럼 돌고 있다. 정말 우스갯소리면 좋겠는데, 돌아가는 세태를 보면 이게 정말 현실이 되어가는 것 같아 너무나 마음이 아프다. 누구보다 아이들에게 열정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성장시키고자 노력하는 참교사들의 노력이, 누군가에게는 '학대'가 되어버리는 세상. 그런 그들을 보호해주지 않고 벼랑으로 내모는 이들만 즐비한 세상.


보고도 못 본 척

듣고도 못 들은 척

알아도 모르는 척


이 세상에서 교사로 살아남기 위해, 나는 '참'교사 대신 '척'하는 '거짓'교사를 택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학급에서 일어나는 아이들과의 모든 말과 행동을 검열하고, 꼬투리 잡힐 짓은 하나도 하지 않으며, 로보트처럼 매뉴얼대로 정해진 말만하며 지도하는 교사. 학생과의 개인적 관계는 일체 맺지 않으며 감정을 싣지 않고 무심하게 학생들을 대하는 교사. 방과후에 학생을 남기거나 숙제를 많이 내주는 등 너무 열심히 지도하려 애쓰지 않는 교사.


과연 나는 그런 교사가 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런 교사가 되면서까지 학교에 계속 남고 싶을까?

아니면 그저 운이 좋기를 기도하며 한해한해 살아나가야 하는 걸까.


출근길마다 되뇌이는 말이 하나 있다.

'아이들에게 죄짓지 않는 어른이 되자.'

그리고 생각해왔다. 교사가 죄짓지 않는 방법은 누구보다 열심히 가르치는 것, 진심으로 아이들과 마주하는 것이라고.


앞으로 얼마나 더, 죄짓는 마음 없이 아이들과 편안하게 마주할 수 있을까.

감히 장담할 수 없음이 너무나 부끄럽고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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