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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다비 Jul 25. 2022

한인 마트에서

에치 마트


"내 월급만 빼고, 나머지 다 올랐어요."   유행어처럼 인터넷 상과 사람들 간의 오르내리는 하나의 말. 말. 말들. 미국에서도 월급만 빼고 모두 올랐다. 500lm 30병 들어가 있던 생수 한 박스 가격은 2.99센트에서 4.99로 올랐다. 휴지도 3배 가까이 올랐다. 휘발유 2.45 하던 것이 4달로 넘게 올랐다. 한국에서면 정수기 하나 장만해서 수돗물 정화해 마시면 구만이지만 미국에서는 쉽지 않다. 정수기 살 수도 있지만 한국처럼 체계화되어 있지 않다. 


장보기 위해 2주에 한번 가던 횟수를 4주에 한번, 혹은 한 달에 한 번으로 줄여 마트로 향한다. 갈 때마다 물가는 위로 솟구치고 있다. 값만 오르는 게 아니다. 돈은 더 지불하지만 질과 양은 떨어진다. 먹고살기 위해 구매하는 필수품들의 불친절이 나의 미간을 찌푸리게 만든다. 푸념하듯 '어쩔 수 없지 뭐' 라며 장바구니에 물건들을 하나 둘 담고 계산대로 향한다. 


계산을 마치고 양손에  장바구니를 들고 계산대에서 빠져나왔다. 한 아줌마가 나의 양손에 들려져 있는  장바구니를 살짝 건들며 스쳐 지나간다. 단발머리의 제법 큰 키다. 은은한 스킨 냄새가 착용한 마스크를 헤집고 들어온다. 하얀 피부에 탄력이 저하된 50대 초반 여성이다. 처음으로 본 중년 여성의 얼굴에서 낯설지 않은 인상을 받았다. 


어디서 봤지? 분명 어디선가 본 얼굴인데, 라며 나는 혼자 생각했다. 계산을 다 마쳤으니 여느 날처럼 습관처럼 출입구로 나와 차로 향했다. 그러다 문득 생각이 났다. 어디서 본 그 얼굴, 엄마의 여동생이면서 나에게는 이모인 얼굴이 떠 올랐다. 그 중년 여성이 어쩌면 이모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기 시작하며 불안함을 느꼈다. 두려움의 불안함이 아니다. 나에게는 이상한 감정이 있는데 좋은 일이든 슬픈 일이든 가슴이 이상하게 불안을 먼저 느끼며 뛰기 시작한다. 


점점 차로 가까워졌지만 나는 다시 마트 안으로 들어갔다. 마침 그 낯설지 않은 중년의 여성이 계산대에서 본인이 산 물건들을 계산하고 있었다. 다시 가슴이 뛰고 있다. 이 멀리서 어쩌면 이모의 얼굴을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제발 엄마의 여동생이었으면 좋겠다, 생각하게 됐다. 


이모와 20년 전 헤어지고, 두 번 다시 얼굴을 보지 못했다. 저기 계산대에서 계산하는 낯선 중년의 여성이 이모라면 내가 생각하는 연령대가 비슷하다. 키도 얼추 비슷해 보인다. 계산을 마치기를 기다리며 나는 마스크를 고쳐 썼다. 시국이 시국인 만큼 불쾌감을 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트 안에서  말고 밖으로 나가면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계산을 마친 여성이 작은 보폭으로 걸어왔다. 그 여성이 가까워질수록 눈빛이 선명하게 보였다. 마스크에 가려진 얼굴에서 나의 혈육의 DNA를 찾으려 노력했다. 


중년의 여성은 내 앞을 지나 출입문을 통과했다. 그 뒤로 나도 따라 나갔다. 다시 스킨 냄새가 풍겼다. 전형적인 중년 여성들에게 흔히 맡을 수 있는 화장품 냄새다. 


"저기 안녕하세요. 혹시 죄송한데요. 아무개 씨 아니신가요?" 불러 세우는 나를 향해 중년 여성이 "네?"라고 답한다. 다시 한번 나는 " 아무개 씨 아니신가요?" 물었다. "아, 아닙니다. 다른 사람과 착각하신 것 같네요." 중년 여성은 가벼운 눈웃음을 짓고 뒤돌아서 갔다.  이모를 미국 땅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기적보다 더 기적, 어쩌면 예수가 21세기에 부활하는 것 못지않게 어려울 것이다. 


북한에 있어야 할 이모가 남한도 아닌, 미국 땅에서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20년 전, 헤어진 이모를 한국에서도 아니고 미국에서 만난다면 어떤 감정일까?  며칠이 지난 지금도 그때 그 낯선 여자에게서 나는 왜 이모의 얼굴을 발견했을까? 그리고 마스크로 얼굴 절반을 가린 여성에게서 나의 혈육의 DNA를 찾으려 했던 나의 감정상태는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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