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리 올드만에게 '첫' 골든 글로브 남우주연상을 안겨 준 다키스트 아워는, (영국인들을 위한) '그들만의' 영화라는 인상을 강하게 안겨주는 영국식 '국뽕' 영화다. 놀란의 <덩케르크>가 일반 사람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국난극복을 비교적 담담하게 자랑했다면, 영화 <다키스트 아워>는 일종의 판타지까지 섞어가며 그들 자신의 이야기를 높힌다.
영화는 철저하게 처칠의 동선과 시선 속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타협하지 않는 완고하고 고집쟁이인 처칠은 체임벌린(로널드 픽업 분)과 핼리팩스 자작(스티븐 딜레인 분)을 위시한 영국 정치인들의 '온건책'에 타협하지 않은 채, 자신을 싫어했던 조지 6세(벤 멘델슨 분)마저 자신의 편으로 만들며 위기를 극복한다. 일상 속에서 보여주는 고집 쎈 '뒷방 노인네의 치기' 같은 면모들에도 불구, 처절하게 연설을 준비해 사람들을 설파해나가는 그의 모습은 그 누구보다 강렬하고 화려하다. 위기는 자주 찾아오고, 상황은 녹록치 않지만 그럼에도 돌파해나가는 처칠의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전쟁과도 같다. 비록 사실과 판타지가 너무 섞여 있어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판타지인지조차 알 수 없다는 점이 아쉽지만, 아마도 이 영화를 보는 영국인들은 역사적 사실들을 알고 있기에 그를 구별해가며 젖어들 것이다.
타협하지 않고서 처절하게 싸웠기에 몰락의 길을 과속화했지만 바로 그렇기에 히틀러를 막아냈다는 그 자부심은 기억을 공유한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다. <다키스트 아워>가 우리에겐 과하지만, 그들에겐 그럴법한 영화일 이유다.
이야기의 완성도와 별개로, 영화의 구성과 연출 그리고 연기만큼은 비판의 여지가 거의 없을 정도로 완벽했다고 생각한다. 전체적으로 어두운 톤을 유지하면서도 다양한 연출 기법을 통해 영화는 그 당시 영국 사람들의 삶은 물론 감정까지 담아낸다. 처칠의 고뇌, 상황, 생각 역시 말해지기보다는 보여지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노출된다. 3차례 가량 반복되는 차창 밖 신 중에서도 마지막 신(하이라이트로 연결되기 직전의 장면)의 경우는, 오히려 모든 감정들이 응축돼 폭발하는 영화의 하이라이트 신보다 더 인상적일 정도.
그리고, 연기는 더 얘기할 필요가 없다. 영화 속엔 게리 올드만이 없다. '인간' 처칠만 있었을 뿐.
* 사진 출처 : 다음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