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부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불을 지르는 소년. 아파트 지하는 물론 다리 밑부터 상담소 쓰레기통에 이르기까지 태울 수 있는 모든 것을 찾아 불태우려 드는 그의 모습에 관객들은 웃음을 터뜨린다. 그 희극적 장난이 어쩌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비극적 은유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 건, 크레딧이 내려간 후 영화관을 나설 때였다.
1950년대 미국의 코니 아일랜드. 아직은 꿈과 환상으로 가득하지만 점점 쇠락의 길을 걷고 있던 유원지. 험티(제임스 벨루시 분)와 지니(케이트 윈슬렛 분)가 살고 있는 집은, 유원지 중에서도 쉴 틈 없이 총성이 빵빵 터져나가는 사격장 위다. 서로가 상처를 입은 두 커플의 관계는 사랑보다는 위로에 가깝지만 그들은 그럼에도 비교적 평온한 - 지루하지만 안정적인 - 삶을 살아왔다. 험티의 딸 캐롤라이나(주노 템플 분)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술은 끊었지만 여전히 생활력은 떨어졌던 험티는 그의 희망이었던 딸이 돌아오자 의욕을 불태우지만, 구조원 믹키(저스틴 팀버레이크 분)와 불장난에 빠져있던 지니에게 캐롤라이나는 점점 껄끄러움을 넘어서는 공포가 된다. 밝은 금발에 푸른 눈, 젊은 나이가 내뿜는 매력은 믹키를 휘감고 지니는 이를 직감한다. 화려한 연극 무대에서 이미 한 번 자신의 불륜으로 나락으로 떨어져봤던 지니기에 그의 구원일지도 모를 믹키의 변심을 그 무엇보다 두려워한다. 자신을 향했던 믹키의 불과도 같은 사랑이 옮겨가는 것을 느낄 때마다, 그는 질투하고 괴로워한다. 두통과 짜증이 그 자신을 휘감을수록, 지니가 갖고 있던 캐롤라이나에 대한 가족애는 부서져 내린다. 가족의 위기가 심화되고, 극이 극으로 치달을 수록 이와 교차되는 소년의 불장난도 계속된다. 그들 모두의 불장난이 최대로 불타 오른 순간, 믹키와 캐롤라이나는 사랑과 진실을 함께 목도하고, 지니는 찰나의 순간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을 한다. 그리고 그 선택은 파국으로 향한다.
지니가 그토록 걱정했던 아들의 불장난은 단순한 불장난들로 끝났지만, 지니 스스로가 벌인 감정의 불장난은 끝내 그 자신과 함께 모든 걸 태워버렸다. 꿈과 환상, 희망이 반짝였던 코니 아일랜드가 쇠락해가듯 한 순간 불타올랐던 지니의 섬광과도 같은 꿈도 그렇게 다시 원래대로 사그라들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연극적 은유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영화는, 곳곳에서 연극적 장치들을 통해 관객들의 감정을 만난다. 무대 장치처럼 등장하는 연극적 소품들("햄릿과 오이디푸스")은 극에 숨겨진 메타포를 암시한다. 영화 속 뉴욕은 연극 무대의 연장선과 같이 느껴진다. 믹키는 방백을 통해 제 4의 벽을 넘나들고, 전직 배우인 지니는 영화 속 내내 끊임없이 의상을 바꿔가며 '극을 이끈다.' 예민하고 섬세한 영혼을 가진 지니는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불꽃처럼 영화 내내 꿈틀댄다. 낭만을 꿈꾸지만 어딘가 밋밋한 믹키의 정열과, 화려함을 좇았던 캐롤라이나의 왠지 나사 빠진 순수함은 파국으로 이끄는 불길의 제물이 된다.
지니와 믹키의 연극과도 같은 마지막 조우 후에 모든 것은 불타버린다. 재만 남아버린 그 황량한 공간 위에서, 아무것도 몰랐고 앞으로도 아무것도 모를 험티의 좌절과 폭발은 이 위험했던 불장난의 흔적을 적나라하게 조명한다. 이처럼 영화는 너저분한 감정들의 고양을 통해 해소되지 않는 너저분한 감정의 찌끼들을 통해 전통적 비극과는 다른 영화만의 감성을 관객들에게 안겨준다.
한탄 후에 낚시나 가잔 험티의 말에 힘없이 "낚시가 싫다"라고 응수하는 지니. 하지만 그는 언젠가는 험티와 함께 다시 낚시터로 향할 것이다. '원더 휠' 관람차처럼 험티가 돌리는 회전목마도 계속해서 돌아갈 것이고, 지니도 그 자신의 '웨이터리스 연기'를 계속해나갈 것이다. 캐롤라이나와 믹키가 없었던 그때처럼, 말이다.
비록 그 일상은, 불장난 전과는 영영 같을 수 없을지라도.
* 사진 출처 : 다음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