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부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tvN의 알쓸신잡 시즌 2. 서울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 네 사람의 대화 중간에, 한국에 왜 돌아왔냐는 유희열의 질문에 장동선 박사가 이런 말을 시작으로 얘기를 시작했던 것을 기억한다.
"살면서 어떤 것이 가장 중요한가?"
<코코>는 말하자면, 물음에 대한 답이다.
체감상 지나치게 긴 올라프 이야기가 끝난 후 펼쳐지는 <코코> 속에서 재구성된 멕시코는 굉장히 매력적인 공간이다. 알록달록한 색감들로 가득한 미겔의 동네는 평화롭고 따뜻하다. 꽃길로 연결되는 죽은 자들의 도시는 이와 대비되는 펑키한 색감을 줄곧 뿜어내지만, 그 역시 매력적이다. 음악과 색깔이 맞물려 춤추는 도시는 화려한 형광불빛들로 가득하지만 촌스럽지 않다. 그리고 그 공간을 변주하는 새로운 '죽음의 무도'는, 기존의 '엄근진'했던 바니타스를 유쾌하게 비틀어 내보인다. 마치, 죽음은 더 이상 끝이 아니라는 듯.
그러나 화려한 영상 이면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생각보다 진지하다. 가족을 버리고 꿈을 좇았던 고조할아버지와,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모든 음악과의 연결거리를 끊어버린 가족들. 그 사이에서 음악가를 꿈꾸는 미겔은 '존재'의 죽음조차도 불사한 채 인정을 받으려한다. 하지만 그 끝에서 그가 마주하게 되는 현실은 따뜻하지만 냉정하다. 모든걸 잊어가는 가운데서도 기억되는 가족을 위한 노래는 마치 꿈과 현실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처럼 그를 유혹하지만, 미겔은 끝끝내 가족을 떠나지 못할 것임이 후반부에 암시된다. 적어도 <코코>의 세계 속에선 기억하기 위해서, 서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가족은 함께 살아야만 한다. 잊힌 것은 다시 회복되고,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아왔지만, 미겔에게는 새로 생긴 동생과 기타를 연주할 수 있는 공간만이 남았다.
그래도 가족과 함께이니 행복한 것이라고, 네가 찾던 꿈 역시 그곳에 있는 것이라고 영화는 답을 주지만, 그것이 실제로 '미겔'이 찾아야 했을 행복한 답일까. 유쾌하고 밝게 편곡된 la bikina의 숨겨진 가사 내용처럼, 그 결말이 씁쓸하게 느껴졌던 것은 과한 해석에 불과한 것일까.
아마도 활기찬 죽음의 무도 뒤에서 느꼈던 것은, 꿈의 죽음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건 그 때였다.
장동선 박사는 스스로 '잔인하고 완벽하게' 자신의 꿈(자아실현)을 찢음으로서 행복을 찾았다고 말한다. 우울했던 아내를 위해 가족을 위해 꿈을 내려놓고 돌아왔던 그의 모습은 분명 감동적이지만, 그 후의 대화들 속에서 느껴지는 미련의 무게 역시 가볍지 않다. 어쩌면 당연한 선택일지도 모르지만,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은 쉽게 가시질 않는다.
<코코>가 안겨줬던 달달함 뒤의 떫음은, 그 미련의 맛일지도 모른다.
* 출처 : 네이버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