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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아키 Mar 28. 2018

수업시간에 만난 이야기들

그저 잠이 오지 않아서 2시간을 채 못 잔 날, 쏟아졌던 Constant과 Hayek와 Friedman의 생각들은 무거워서 조는 것조차 쉽지 않았더랬다. Hayek는 읽고 듣다 보면, '심플'한 - 내용은 어려우나, 그 간결하고 고차원적인 추상 체계 - 논리가 참 세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까일 것도 많지만, 그만큼 (Hayek 본인이 살아있다면) 반박도 큰 어려움 없이 해냈을 것이란 설명에 (여전히 잘은 이해를 못했더라도) 고개를 끄덕하게 되는 이유.


세미나치곤 사람이 제법 많은 강의라 사람들이 얘기를 엄청 길게 풀어내진 못하지만, 다들 한 가닥씩 썰은 풀 수 있는 급들이라서 듣고 있다 보면 흥미로울 때가 많다. 그중에서도 특히 재밌는 건, 끼어있는 청강생 격인 학부생의 말과 생각. 아테네 민주주의 속의 시민들의 정치참여를 '인형놀이'라고 비유해서 웃음을 터뜨렸던 그는, 오늘은 "Hayek는 왠지 비겁한 것 같다"라는 말로 주의를 끈다. 수면부족과 적응기의 문제라고 치부하기에는 뭔가 생각이 정리가 안 돼서 마냥 흐물거리는 나로선, 그 퐁퐁 솟아나는 날 것의 생경함이 부럽기까지 하다.


공부는 가만 보면, 진득하니 앉는 시간이 길다고 꼭 잘 되는 것만은 아닌 것 같기도.


그 흥미로운 학부생이 가져온, 바디우가 흥미롭게 재해석한 <국가> 속의 민주주의에 대한 설명이 재미있어서, 기록해둔다.  


"민주주의적 인간은 순수한 현재만을 산다. 스쳐가는 욕망은 법이 된다. 오늘은 기름진 진미를 술에 곁들여 먹고, 내일은 부처를 위해 금식하고 청정수를 마시며 지속가능한 발전을 추구한다. 월요일엔 고정식 자전거 위에서 여러 시간 페달을 밟으며 다시 몸을 만들고, 화요일엔 온종일 자다가 일어나서는 담배 피우며 진수성찬을 먹어댄다. 수요일엔 철학책을 읽겠다고 선언하고는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낫겠다며 책장을 덮는다. 목요일엔 점심을 먹으며 정치를 논하다가 흥분해서는 상대의 의견에 격분해 가슴을 벌렁거리고, 격앙된 채 소비사회와 스펙타클의 사회를 비난한다. 저녁이 되면 영화관에 가서 중세의 전투장면이 나오는 허접한 블록버스터를 본다. 집에 돌아와서 잠자리에 들 땐 예속된 인민들의 무장해방에 가담하는 꿈을 꾼다. 그 다음날엔 과음한 탓에 목이 칼칼해져 일터에 나가서는 옆 사무실 비서에게 수작을 걸며 삽질을 해댄다. 맹세하건데 그는 사업에 뛰어들 것이다! 그에게 부동산 수익이 떨어질 것이다! 그런데 주말엔 또 위기이다. 다음 주가 되면 이 모든 것을 보게 되리라. 어쨌든 이런게 삶이다! 질서도 없고 생각도 없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즐겁고, 행복하며, 무엇보다 의미 없지만 그만큼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다. 무의미에 대한 대가로 자유를 지불하라, 그건 별로 비싼게 아니다."

(알랭 바디우, '민주주의라는 상징', <민주주의는 죽었는가>, p.37, 38)


딱히 '민주주의'적이지 않은 듯 '민주주의'적인 밤이 저물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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