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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아키 Apr 10. 2018

논문을 읽다가

아무래도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공부하는 수업시간에는 사람이 죄지은 범죄자가 된 것 마냥 쭈구리가 된다. 오늘 역시 여느 때처럼 잠이 부족해 졸린 눈을 비비며 잘 들어오지 않는 논문의 글자들을 억지로 해석하는 척하며 숨어있던 하루였다.


읽은 논문은, 교수가 직접 쓴 글. 그렇기에 다소 날카롭게 느꼈던 비평과 반박 - "감정과 태도와 mood는 서로 구별될 수 있는 개념일 수 있는데, 이를 혼합해서 보신 것은 아닌가요?" "그게 구별될 수 있는지 자체를 잘 모르겠는데"와 같은 - 들이 이어진 후에, 질문을 가장한 다소 낯간지로운 찬사(?)가 이어졌다.


몸을 배배꼬며 듣는데 짧은 찬사 - 아마도 이 질문을 하기 위한 수사였던 듯 싶다 - 뒤에 곧바로 질문이 따라붙는다. "이 논문을, 어떻게 쓰셨나요?"


아마도 다른 뉘앙스(어떻게 구성하고 작성했는지와 같은 방법론적 문제)에 대한 물음이었을 테지만, 선생님은 뭔가 핀트가 살짝은 어긋난 대답을 하신다.


"뭐 묻고자 하는 말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대답해야 하는 말은 알 것 같아."


"그냥 그때, 뭐라도 쓰고 싶었어. 그런 사건이 터졌는데도, 오히려 6월 지방선거의 경우 여당이 승리했단 말이지. 그게, 설명이 안 되는거야.  그때까지는 뭐랄까, 다른 사회과학자들처럼 데이터 뒤에 숨어있는 경우가 많았거든. 근데,  잘 모르겠더라고. (...) 그래서 다소 감정적으로 썼어. 리뷰들을 보면 너무 감정적이다, 그런 말도 많았는데, 그때는 그렇게 쓰고 싶었어.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좀 더 드라이하게 쓰는 것도 어땠을까란 생각도 들긴 하지만.(...) (그래도 썼던 이유가 뭔지를 묻는다면) 뭔가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아. 대신 웃지 말아."


항상 피로에 쩔어 계시기에 다소 시니컬하다고 느꼈던 선생님의 말이 다소 먹먹하게 다가왔다. 그건 아마도, 자신이 쓴 것조차 모르겠다고 한 논문들과 달리, 이 논문만큼은 자신있게 썼다했던 선생님의 말이, 아직까지 남아있었던 탓이리라.


"2014년 6월에는, 더 좋은 사회과학자가 되고 싶었어."


웃음 대신 침묵이 흘렀고, 교수님은 자기 논문을 수업에 쓰는 것은 영 아닌 것 같다는 혼잣말과 함께 서둘러서 짐을 챙겨 나가셨다. 얼음은 곧 풀렸고, 사람들은 청소를 한 뒤 흩어졌다. 말의 흔적은, 어디에도 남지 않았다.


졸음 탓에, 글을 쓰는 나 자신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말들. 다만 그 말 뒤에 느껴졌던 감정의 무게가 녹록치 않아서, 좋은 사회과학자가 되고 싶었다는 말의 뉘앙스만큼은 억지로 어떻게든 끌고 돌아왔더랬다.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잠을 좀 줄이더라도 선생님이 내주신 논문들을 좀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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