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쩌면 일부 내용은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곱씹어봐야 맛이 나는 영화가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은 억지로 눈물을 자아내려 하지 않지만 담담하고 차분한 어조로도 사람의 마음을 울리고 잡아끌 수 있음을 보여주는, 그런 영화다.
<어느 가족>의 전반부. 영화는 '좀도둑' 가족의 소소한 일상을 보여준다. 한 겨울 추위에 떨던 아이를 데리고오면서부터 가족의 일상은 삐걱거리지만 가족은 그럼에도 삶을 함께 나누며 행복을 찾아간다. 원제의 제목처럼 그들이 갖고자 하는 모든 것은 '도둑질'을 통해서 얻을 수밖에 없지만 그들은 그 작은 것들을 통해서도 충분히 행복한 모습을 보인다. 온 가족이 모여 불꽃놀이의 폭죽 소리를 '훔쳐 들으며'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는 모습은 이 가족이 누렸던 행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 어딘가 모르게 삐걱거리지만, 그 또한 여느 가족이 겪는 어려움 정도의 문제로만 느껴진다. 그들은 그럼에도 "행복"해 보였기에.
적어도, 할머니의 죽음으로 감춰진 듯한 했던 균열이 드러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할머니의 죽음과 쇼타의 입원, 그리고 도주 중의 검거 이후 가족이 숨겨왔던 진실들이 드러나기 시작하는 후반부는 전반부의 환상과도 같은 가족의 '행복'마저 의심하게 만든다. 서로가 서로에게 감춰왔던 많은 비밀들이 드러날수록, 가족은 더 이상 서로를 믿을 수 없다. 애써 싸우기 위해 사회에 자격을 묻고, 의미를 묻지만 그들의 행위는 그럼에도 정당화되지 못한다. 행복으로 감춰왔던 진실이 서로의 폐부를 찌르고, 억지로라도 맺어지고자 했던 가족은 그렇게 다시 붕괴된다. 손녀는 할머니가 자신을 이용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고, 어머니는 5년 형을 선고받고는 "어쩔 수 없잖아."라며 부득불 소년에게 돌아갈 수 있는 '열쇠'를 쥐어준다. 소녀는 다시 가족의 품에서 '버려지고', 소년은 자발적 고아가 돼 살아간다. 애써 아버지가 되고자 했던 아버지는 결국 사실을 고백하고 다시 아저씨가 되고, 뒤돌린 등 뒤로 아들은 자신이 일부러 붙잡혔음을 말한 뒤 애써 외면한다. 가족은 분열되고 다시 뭉치지 못한다. 아마도 끝끝내 되돌릴 수 없을 것이다. 서로 여전히 사랑하지만 그럼에도 다신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어느 가족>은 암시적이지만 강하게 단언한다.
그럼에도 <어느 가족>은 그 가족이 만들어왔던 행복이 결코 거짓은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믿었던 할머니를 믿지 못하게 된 손녀는 그럼에도 다시 옛 집을 돌아본다. 한 번도 아저씨를 아빠라고 부르지 않았던 소년은, 아빠가 스스로 아저씨로 되돌아가겠다고 선언한 뒤 자신을 떠나보내는 버스 안에서 비로소 그를 아빠라고 부른다. 어쩔 수 없는 환경, 돌이킬 수 없을 과거. 선듯 이해할 수 없는 그들의 관계는 역설적으로 그것이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이 드러나는 후반부의 장면들에서 더욱 강해진다. 비록 해피엔딩은 아니지만 새드 엔딩이 될 수 없는 까닭은, 그렇게 물리적으로는 되돌릴 수 없는 가족의 유대와 연대가 정신적인 측면에서까지 끊어진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진짜 가족이 채워주지 못하는 걸 채워준 '훔친 가족'은 그렇게 훔쳐낸 1년 동안 그들이 가꿔온 행복 안에서 계속 될 것이다. 마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함께 떠난 바다에서 찍힌 점프샷이 담긴 스냅샷처럼.
다시 처음처럼 복도에서 맴돌던 소녀의 눈을 붙잡은 것도, 아마 그런 '사랑'이 아니었을까. 피로 맺은 가족이 가족이란 이름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진짜 가족"만이 만들 수 있는, 그런.
* 사진 출처 : 다음 영화(https://movie.daum.net/moviedb/photoviewer?id=121058#1248739/Photo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