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페이버릿> 화려하나 쓸쓸한 '연극'

by 디아키

* 일부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화려하지만 쓸쓸한 궁전에서 펼쳐지는 여성들의 정치적 수싸움, 이라고 플롯만 보고 영화를 단순하게 정의 내리기에는 <더 페이버릿 : 여왕의 여자>는 훨씬 더 복잡한 영화다. 이때, 여기서의 '복잡하다'의 의미는 예컨대 영화가 끝나갈 무렵의 '폭력적이면서 동시에 비극적인' 시퀀스 아래 오버랩되는 계속해서 증대하는 토끼들을 마주하다 떡하니 엔딩 크레딧을 마주하게 될 때 우리가 느끼게 될 감정과 유사하다.


여왕이 잃어버린 자식들이자 동시에 여왕의 '살아있는' (혹은 살아있기에 벗어날 수 없는) 불행들을 상징하는 그 살아 움직이는 토끼들은, 영화 극초반까지만 해도 감옥과도 같은 창틀 속에서 벗어나질 못하다 점점 방 안에서의 자유를 찾지만, 그 자유로 인해 '죽음'의 위기까지 겪는다. 토끼를 죽음 직전까지 몰아세웠던 이는 새철장 안에서 시들어가고 있던 여왕 앤(올리비아 콜맨)을 구원할 것처럼 보였던 애비게일(엠마 스톤 분). 그 애비게일을 다시 자신의 권력(혹은 힘)으로 굴복시키려는 여왕 앤의 슬프고 처절한 절망이 묻어나는 손길은 그렇기에 쓸쓸하다. 영원히 닿지 못할 편지들을 쓰다가 '추방'의 위기를 맞이하게 되는 사라 제닝스(레이첼 와이즈 분)의 독백처럼.


권력 추구를 넘어 각자의 욕망에 집착에 가까운 광기를 보이는 여성들.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그러나 영원히 손에 잡을 수 없는 신기루이기에, 모든 것을 얻게 된 - 혹은 됐다고 느끼게 된 - 순간이 오면 그들은 필연적으로 모든 것을 잃게 된다. 그들의 탐욕은 스스로를 파괴하고, 옭아매여,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자기 자신들을 망가뜨린다. 그렇기에 광각렌즈를 통해 왜곡돼서 까지 크게 그려지는 그들의 무대인 왕궁은, 화려하지만 빛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이 스스로의 마음(혹은 욕망)을 위해 드는 촛불이, 그 어떤 궁궐의 장식들보다 밝게 빛나는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넓지만 아주 작은 부분들만 계속해서 조망되는 영화 속 '정치적' - 엄밀하게는 권력의 암투가 벌어지는 검투장에 가까운 - 공간인 궁궐은, 전체가 조망되기보단 부분으로 나뉘어서 보인다. 사격장, 각자의 침실, 연회장, 의회 등으로 분할된 공간은 결코 합쳐지지 못한다. 시간 역시 마찬가지다. 매우 짧은 시간의 일들조차 8장에 이르는 분할을 통해 나눠진다. 이를 통해 관객은 마치 영화가 아닌 연극을 보듯, 각종 메타포가 넘치는 '정치적 공간'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고 주어진 역할을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는 배우들의 사건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영화는 연극들처럼 수많은 인물들의 존재를 인위적으로 제거하는 대신 그 무대 속에서 주인공들을 드러내 비추어냄으로써 그들의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수없이 등장하는 남자들의 존재감이 영화가 끝나고 난 뒤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세 여자의 투쟁과 사랑과 결핍만이 기억에 남듯이.


아마도 그들의 '비극'은 그렇게 영원히 끝나지 않고 계속될 것이다. 막이 내리고 난 뒤에도.


*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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