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하던 일이 엎어진 밤에
꾸벅꾸벅 졸다 깬 이는 오랜만에 필사를 한다
예약 구매까지 했던 김연수의 신간을 깨작거리며 만지작만 대다 손을 대 끝까지 다 읽은 밤은, 마치 한 달과도 같이 길게만 느껴졌던 일주일의 끝이 구체화 된 언어의 형태로 흐릿하게 마무리 된 날의 일이었다. 직접 인용은 별로 효과적인 것 같지 않다고, 너무 오글거린다고 혼자 속으로 구시렁대며 넘기던 책장은 점점 끝으로 갈수록 탄력을 받는다. 비록 <세계의 끝, 여자 친구>나 <원더보이>처럼 한창때의 날 선 문체들은 없지만, 모든 것이 너무나도 직선화 돼 비루해질 수밖에 없었던 삶 속에서도 결코 비루하지 않았을 이에 대한 위로는 따뜻했다. 마치 너무나도 추웠던 여름날 바다에서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홀로 마주했던 모닥불을 바라보는 심정으로, 책을 읽고 문장을 옮긴다.
밤은 길지만 내겐 낮의 일이 있다. 내일의 나는 또다시 반복되는 삶 속에서 스스로의 입을 걸어 잠근 채 일을 할 테지만, 그럼에도 그 속에서 미래를, 거듭거듭 찾아 헤맬 것이다.
필사해야 할 문장만큼 남아있는 날들이 많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