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회 서울 환경영화제 ] 3일 차
'불쾌한 골짜기(Uncanny Valley)'. 도시 볼티모어의 서사를 다루는 영화는, 살아있는 삶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지만 생명의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수많은 살점들을 뜯어다 꿰맨 것처럼, 영화는 흘러가는 내내 관객에게 이질감을 준다. 흐름에 젖어들 즈음이면 이뤄지는 순간적인 장면 전환, 건조하고 메마른 목소리가 보여주는 도시의 역사, 그리고 어설픈 3D 게임 화면들. 불쾌한 골짜기의 원뜻이, 인간에 어설프게 가까질 때 느껴지는 혐오감을 말한다면, <랫 필름>은 오히려 인간과 멀어지려는 시도를 통해 독자에게 불편함을 준다.
<랫 필름>에서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오간다. 총과 방망이를 들고 쥐를 사냥하는 자들, 볼티모어의 쥐잡이 공무원, 3D 게임과 VR, 볼티모어의 도시 계획, 과학자들, 애완 쥐를 키우는 부부, 뱀쇼, 법의학자들의 미니어처 하우스, 그리고 쥐. 화면은 끊임없이 전환되고, 이야기는 뚝뚝 끊어진다. 영화의 중반을 넘어갈 때까지도, 관객은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진짜 의도를 찾아내기 어렵다. 너무나도 쥐에 대한 이야기들이 펼쳐지다가, 전혀 쥐 하고는 상관없는 이야기들이 펼쳐지기도 한다. 모든 이야기의 공통점이라곤 어쩌면 이야기들이 전개되는 배경이 쇠락한 도시, 볼티모어라는 사실 하나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중반까지 지독하게 불친절하게 자신만의 이야기를 펼쳐가던 영화는, 이후 서서히 연결고리들을 맺기 시작한다. 쥐를 몰아내기 위해 분투했던 과학자들의 이야기는, 쥐가 살아가는 사람의 환경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도시는 쥐와의 공존을 포기하고, 가난하고 음침한 유색인종의 지역구를 도시와 분리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쥐를 잡으러 다니는 볼티모어는, 마치 헛간에서의 실험처럼 버려진 채 서로를 갉아먹는 쥐의 사회처럼 빗대 진다. 그럼에도 그 경계를 건너는 사람들은 아직까지 매우 '인간적'이다. 마치 3D 게임처럼 온기를 잃은 낡은 도시의 기억을 살아가는 건, 여전히 사람들이다.
끝날 때까지, 영화는 어떠한 희망도 미래도 약속하지 않는다. 실제 지도를 반영한 3D 모델로 구현된 건조한 도시가, 그 도시를 살아가는 삶을 구현하는 순간 진행되지 않는 건 그 스스로 거대한 메타포다. 지독했던 '분리' 정책의 폐해는 아직까지 남아 도시를 지배하지만, 아무도 그 유령을 잡지 못한다. 영화는 말미, 상상 속의 '구원'을 제시하지만 그 구원은 지독하게도 비현실적이고, 절대로 이뤄질 수 없을 망상이다. 볼티모어는 변하지 않고, 80cm밖에 뛰지 못하는 노르웨이 쥐는 여전히 85cm의 볼티모어 쓰레기통을 뛰어넘기 위해 점프한다. 사람들은 쥐를 잡아주는 공무원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VR 화면 속 볼티모어는 3D 너머로 일그러진 별빛들을 보여준다. 뱀은 쥐를 천천히 삼키고, 사람들의 웃음소리는 오버랩된다.
이토록 지독하게 비인간적인 방식으로 인간의 '환경'을, 삶을, 아니 인간 자체를 다루는,
지독히 인간적인 영화는 찾기 어렵다.
* 사진 출처 : 서울 환경영화제 홈페이지(http://www.gffis.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