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석 감독의 영화 <아이 캔 스피크>는 어쩌면, 전형적인 한국 영화의 문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영화다. 소소한 - 사실 대놓고 아재 개그에 가까운 - 유머 코드, 감동적인 상황 연출을 위한 약간의 인위성의 가미, (기이할 정도로 한국 영화들이 공유하는) 중후반부에 약간은 꼬인 듯한 스토리텔링. 그의 전작 중 하나였던 <스카우트> 떄와 마찬가지로, 그의 이번 영화 역시 정교하고 완벽하게 잘 만든 가이세키(일본식 가정식)보다는 질박한 느낌을 주는 된장찌개에 가깝다. 다만 감독 김현석의 힘은 - 역시 <스카우트> 때와 마찬가지로 - 그 투박함 이면에 놓인 색다른 스토리텔링과 그 기저에 흐르는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에 있다.
사실 초, 중반 펼쳐지는 9급 공무원 민재(이제훈)와 도깨비 할매 옥분(나문희)의 이야기는 중요한 전환 계기(영화의 핵심 소재)를 기점으로 변하는 순간 사실 매력이 깎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소소하지만 아기자기하게 구성되고 심지어 약간의 긴장감마저 주던 두 인물간의 드라마는, 시대의 불운이라는 거대한 풍랑 속에서 약간의 방향 상실을 겪는다. 이해할 수는 있지만 영 매끄럽지 않은 중, 후반의 플롯은 잘 짜여진 각 씬의 감정 고조를 방해하기도 한다. 초, 중반부에서 보여줬던 유사 - 가족으로서 민재와 옥분이 보여줬던 관계의 생생한 섬세함은, 미국으로 건너간 옥분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과정에서는 시들시들해진다.
그럼에도 영화가 힘을 갖는 건 인위적으로 재가공한 이야기임에도 불구 이야기 자체가 가지고 있는 '맛' 자체를 해치는 일은 없기 때문이다. 영화 속의 사람들 - 진주댁(염혜란)과 같은 - 은 조연일지라도 허투로 쓰이는 대신,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입체적인 감정을 가진 주체들로 움직인다. 중반까지 민재가 보여줬던 감정선이나 옥분의 다채로운 성격은, 자칫 심각한 신파로 전락했을 지도 모를 영화의 후반부에서 그들을 건져올려내준다. 무엇보다도 <아이 캔 스피크>는 위안부라는 아픈 역사의 상흔을 다루면서도, 이를 단순히 피해자의 이야기 선에서 멈추게 하는 대신, 끝나지 않은 고통 속에서도 어떻게든 살아가려 했던 사람 본연의 삶을 다루려했기에 다른 영화들과 차별성을 갖는데 성공했다. 이는 사건이 아닌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영화 속에서 우선시됐기에 가능한 부분이다.
<택시 운전사>, <남한산성> 등 2017년 한국 영화의 주요 흐름 중의 하나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는 상황 속에서, <아이 캔 스피크>가 가지는 강점은 바로 거기에 있다. 거시적 역사적 조류와 같은 압도적인 스케일에 대한 접근보다는, 영화는 투박하지만 아기자기하게 사람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이를 입체적으로 그려내기 위해 노력한다. 여전히 한국 영화의 클리셰에 가까운 문법들에 충실하지만, 그 속에서도 최대한의 역량을 끌어내기에 이야기가 '뻔해'지지만은 않는다. 너무나도 한국영화스럽지만, 오직 한국에서 한국 영화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한다.
역사적 사실을 영화로 다루는 건 어려운 일이다. 아무리 좋은 소재와 의도를 가지고 만들지라도, 이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경우들 역시 다분했다. 그런 점에서 김현석 감독의 <아이 캔 스피크>는, 적어도 그 무게 앞에서 무너지지 않은 채 최선을 다했던, '강한' 영화라고는, 볼 수 있을 듯 싶다.
* 사진 출처 : 다음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