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앰 히스 레저>, 마치 한 여름밤의 불꽃놀이처럼

by 디아키


한강의 불꽃놀이 - 사람이 많은 곳을 싫어해 실제로는 가본 적이 없는 - 를 가끔 생각하곤 한다. 상상 속의 불꽃들은 항상 화려하고 요란해 왠지 모르게 시끌벅적하다. 온갖 색으로 피어나 반짝이는 불빛들이 끝난 뒤의 찾아올 아직 알지 못하는 쓸쓸함이 더 크게 느껴지곤 하는 까닭도 그 때문이리라. 다만 그 순간을 수놓은 광채의 잔상은 망막에 오래도록 남아 아른거린다.


영화 속에서 그려진 히스 레저도, 말하자면 그런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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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이 앰 히스 레저>는 인물 다큐의 정석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는 안전한 전개를 택한다. 어찌보면, 평범하고 단조로운 전개. 카메라의 시선은 그의 거의 모든 연애사마저 공개할 만큼 철저하게 그의 발걸음을 좇는다. 그를 기억하고 사랑했던 사람들은 그들이 기억하는 한없이 반짝거렸던 히스 레저의 인생의 조각들을 충실히 증언한다. 항상 배우를 꿈꿨던 천상 배우는 열일곱부터도 그를 무대 위로 세워 줄 재능마저 갖고 있었다. 그리고 영화는, 천상 배우인 히스 레저의 모든 면모를 전개한다.


그렇게 영화 속 히스 레저는 항상 웃음을 잃지 않은 채로 반짝거리며 영화를 가득 채운다. 화려한 파티가 연일 이어지고 갈 곳 없는 사람들로 가득 찼던 그의 집에 대한 설명은 <위대한 개츠비>를 연상케 한다. 히스 레저는, 항상 카메라와 캠코더를 손에 놓지 않고 그의 모든 순간들을 기록하고 찍었다. 한 번 맡은 배역엔 진심을 다해 흠뻑 빠져들었다. 잠이 없었고, 영화 연출을 꿈꿨으며, 실제로 찍기도 했다. 체스광이었고, 관대했으며, 친구들을 사랑했고, 수많은 예술적 재능들로 반짝거렸다. 그렇기에 영화 말미에 묘사되는 그의 죽음은 그가 사랑했던 모든 이들에게 더욱 큰 충격으로 다가온 것으로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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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영화 컷(cut)들과 지인의 인터뷰가 아닌, 히스 레저가 직접 찍은 영상들은 조금 다른 말들을 하는 것만 같다. 자신을 담아낸 영상들 속에서도 그는 웃고, 연기하지만 간간히 드러나는 그의 표정에는 감출 수 없는 우울의 그림자가 느껴진다. 자신의 모든 재능을 다 꺼내 전부 다 불태웠던 그의 삶은 거리의 네온사인처럼 한없이 불타올랐지만, 그 자신의 잠을 앗아갔고 그를 피로로 몰아갔다. 정적인 표정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그의 얼굴의 장난기가 걷히는 그 찰나에는, 타오랐던 만큼 쏟아졌을 피로들이 느껴진다. "나는 오래 살지 못할 것 같아"라는 그의 말은, 어떤 의미에서는 진심이었을 것이다. 그 자신은 요절을 꿈꾸지 않았겠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그의 요절은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기까지 한다. 홈비디오의 희미한 화질처럼 흔들거렸던 그의 삶은, 모든 것을 한꺼번에 터뜨리는 폭죽과도 같이 화려했지만 불안정했다.


아마도, 기분 탓, 일려나.


영화 앞 뒤로 흘러나온 Bon Iver의 Perth(https://www.youtube.com/watch?v=c3GN9CqxKAY)를 흥얼거리며 지하철을 타고 오는 길. 역을 나서 집까지 가는 길에 문득 떠올랐던 노래는 뜬금없게도 유재하의 가리워진 길, 이었다. 한 여름밤처럼 화려하게 수놓았던 불꽃의 여운은 아직도 마음속에 남아있건만, 비가 내린 후 쌀쌀해진 가을 공기에는 그 어디에도 흔적이 묻어나질 않아 괜스레 마음이 서걱거린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스물 여덟은, 죽기엔 너무 이른 나이었다.


히스 레저.


*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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