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비

짧은 에세이

by Mindweller

반년동안 얼굴 한 번 본적 없는 옆집여자가 문을 열고 들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녀는 아빠 저예요. 존댓말을 써가며 공손히 인사했다. 그녀에게는 유치원생 딸이 있다. 나는 아빠집 문을 열고 들어가 아빠, 나 왔어 했다. 나는 아직 자녀가 없다. 뭐가 맞는 걸까. 뭐가 더 어른인가. 아이가 없으면 어른이 아닌가. 아빠에게 존댓말을 하면 어른인가. 나는 아빠가 태워다주는 차를 타고 출근한다. 아빠가 출근하는 길에 잠시 들르는 거다. 가끔 나는 아빠한테 미안하고 고마워 스타벅스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사드린다. 아빠는 비싼커피 굳이 사마시지 말라면서도 내가 사준다고 하면 마신다. 나는 선물로 받은 스벅 기프티콘을 야금야금 썼다. 동이 나서 쿠폰 파는 앱에 급히 들어가 5% 할인을 받고 아빠 커피를 사준 적도 두번 정도 있다. 아빠는 내가 이제 내 돈을 주고 아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주는 걸 알고나서는 더이상 커피를 사란 말을 하지 않는다.


어제 귀갓길에 지하철역에 내리자마자 출구에 늘어선 사람들을 보고 나는 엄마가 우산을 들고 나를 마중나올 줄 알았다. 집중호우가 내린 탓에 우산이 없는 사람들은 지하철 출구에 발이 묶였다. 나는 최대한 출구 쪽으로 다가가 엄마를 기다렸다. 백팩이 젖으면 안 되니까 백팩을 앞으로 메고 핸드폰도 깊숙이 넣을 태세를 하고 엄마를 기다렸다. 익숙한 얼굴이 내 앞에 다가왔다. 엄마는 아닌데, 누구였지. 우산을 든 아빠였다. 아빠는 내게 장우산을 건네줬다. 나는 황급히 아빠에게서 우산을 받아 물웅덩이들을 건너갔다. 바지 젖을라 접어야지. 아빠는 폭우가 내리쳐 서로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 거리에서 내 바지 걱정을 했다. 괜찮아 아빠 어차피 다 젖을거라. 나는 아빠의 얼굴도 보지 않고 대충 대답했다. 미친듯한 폭우라고 말할 도리밖에는 없었다. 분명 회사에서 나올 때는 가랑비수준이었다. 40분만에 이런 동남아 날씨가 출몰했다. 우회전 하지말고 직진. 아빠는 평소에 역에서 집으로 가던 익숙한 길 대신 다른 길로 인도했다. 저긴 좁아서 못 건너. 아빠와 나는 쏟아지는 비를 가까스로 피하며 아파트로 들어왔다. 20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아빠는 비 노래를 불렀다. 기억이 잘 나질 않지만 70년대 대중가요같았다. 비가 내리고 어쩌고 하는 노래였다. 아빠 표정이 밝았다. 오 왠일로 노래야. 나는 아빠에게 말했다. 아빠는 웃으며 말했다. 너 덕분에 아빠가 이렇게 비도 흠뻑 맞고 고마워. 분명 아빠는 웃고 있었다. 평소라면 짜증을 낼 아빠가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표정이었다. 적어도 그렇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다. 아빠 짜증났지. 나는 웃으며 말했다. 아빠는 진심을 조금 들킨 듯 웃었지만 이내 비 노래를 이어갔다. 아빠는 현관 앞 창문을 열며 쏟아지는 비를 음미했다. 어쩌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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