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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름 Feb 14. 2016

평범하게만 살고 싶었다.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게 보였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은 아주 작은 시골 마을이다.


지금은 흔히 있는 편의점 또한 물론 없었기에 한 밤중에 군것질이 생각나도 참아야 하고,  패스트푸드점은 내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처음 생겼다. 밤이 되면 상점들이 모두 닫아 컴컴한 어둠 속을 가로등에 의지해야만 하는 그런 시골 중에서도 시골. 

외국인은 물론이고, 외국어조차 생경한 마을에서 나고 자란 나는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제2 외국어 과목을 통해 일본어를 접했다. 

처음 알게 된 언어, 어쩐지 여성스럽고 간질간질하게 느껴지는 언어에 빠져 일본어 공부를 시작하기 위해 학원을 찾아봤지만, 생각처럼 쉽게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아니, 학원은커녕 동네 서점조차도 일본어와 관련된 교재를 파는 곳이 없었다. 

차로 1시간 이상을 가야 하는 큰 시내에 있는 일본어 학원이 있었지만, 단순한 일본어에 대한 흥미만으로 일본어 학원에 보내달라는 말을 부모님께 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당시의 나는 매달 급식비를 내지 못해 항상 급식비 영수증을 나눠주는 날이 오면 이번에도 내 이름이 불리는 건 아닐까 하며 불안에 떨어야만 했으며, 결국엔 석식 급식까지도 먹지 못할 만큼 힘들고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런 가난한 가정에서 자란 내가 시내까지 나가야 한다는 건 너무나 큰 이기심이었다.




집안 형편은 우리 세 자매가 모두 대학을 졸업을 하고 일을 할 때까지 좋아지지 않았다. 

자식이라면 죽는시늉도 마다하지 않았던 아빠가 얼마나 가정 형편이 어려웠으면 국립대가 아니면 대학을 보내지 않겠다고 하셨다. 아빠가 우리에게 어떤 괴로운 마음으로 전했을지 어린 나는 조금도 헤아리지 못했고, 그저 아빠를 무능력하고, 지독하게 모질다고 느꼈다. 



결국 난 국립대로 지원을 해서 대학엘 합격했지만 고등학교 졸업 후, 새로운 학교 생활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했고 결국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하지 못한 채, 대학을 입학했다. 입학을 하고 보니 모두 친해진 친구들이 있었고, 나는 그 무리 안에 들어가 어울리려 노력했으나 겉도는 관계들에 지쳐만 갔다.

학비는 학자금 대출을 받아야 했으며, 집을 떠나 처음 생활하게 된 타지 생활의 외로움은 견디기 힘들었고 더불어 다시 또 힘든 가정 형편 때문에 학교를 다니는 것이 옳았을까에 대한 의구심은 점차 커져만 갔다.

그렇게 한 달 반 동안 이방인으로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했던 4월의 봄날


결국 난 학교를 자퇴했다.


처음으로 내린 이기적인 결정이었다. 난 자퇴하고 돌려받은 학비를 우리 가정의 생활비에 보탰다. 부모님은 걱정하셨지만, 나를 믿어보겠다고 자퇴를 허락해 주셨다. 자퇴를 하고 고향집으로 돌아와 매일 도서관에 다니며 책을 읽었다. 그러면서도 대학교를 다니는 또래 친구들을 보며 대학에 다시 가고 싶다는 열망은 커져갔고, 이번에야말로 그동안 배우고 싶어 했던 일본어과를 입학해 보자고 생각했다.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들은 학비가 너무 비쌌고, 전문대가 훨씬 학비가 저렴했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전문대로 입학을 했다. 그리고 서울에 있는 원룸을 구할 보증금 100,200만 원조차 없어 언니와 함께 고시원 작은 방에서 둘이 살게 되었다. 학교 동기들보다도 한 살 늦은 출발, 그리고 어려운 가정 형편. 모든 것이 열등감으로 다가왔고 그런 나를 들키기 싫어 많은 사람들과 거리를 두기에 급급했다.


학교를 다니며 또 아르바이트와 학교 생활을 병행했고, 학교 수업은 따라가질 못했다. 이미 입학 전에 일본어 자격증을 갖고 있는 친구들이 과반수였으니, 단순한 흥미로 일본어를 접해왔던 나에게는 너무나 벅찬 수업들이 이어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친해진 친구 두 명이 모두 자퇴를 했다. 학교에 가면  "언니""누나"라며 따르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그룹 과제를 할 때면 일본어가 서툰 나와하길 꺼려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자존심이 상했다. 내 이름을 속삭이며 얘기하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애써 무시하려고 했지만, 스물한 살의 나는 그저 그런 순간들을 직면하는 것이 오로지 내 탓인 것만 같아 스스로가 부끄러웠고 학교가 싫어졌다.

그 일들을 계기로 지금까지 견뎌왔던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날들이 이어져, 나는 



오늘도 난 살아있구나





그렇게 난 매일을 절망과 마주하며 눈을 떴다.
내 나이 스물한 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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