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유서를 썼다.
그렇게 나는 휴학을 했다.
엄마에게는 '이대로 살다가는 내가 죽을 것 같아.'라는 말 한마디를 전하고.
휴학을 하고 겨우 유지해 왔던 인간관계들을 멀리했다.
그리고 좁은 고시원 방에 틀어박혀 하루종일 영화를 보거나, 도서관에 가서 하루종일 책을 읽었다.
제대로 대학 생활을 해내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허무함이 날 엄습해 왔다. 부모님의 기대를 배신했다는 죄악감이 나를 조여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나와 달리 쌍둥이 언니는 남자친구가 생겼고 동기들과 늦은 밤까지 영화를 만들러 다니면서도 학교 수업을 꼬박꼬박 출석했고 좋은 성적으로 한 학기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언니가 너무나 부러웠고 질투가 났다.
그리고,
점점 더 나 자신이 초라해 견딜 수가 없었다.
고등학교 때는 한 학년의 전교생이 300명이 조금 넘는 작은 학교였기 때문에 3년 내내 생각보다 쉽게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다. 친구들과도 사이가 좋았고, 남의 앞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 학급 임원을 쭉 맡아오며 학창 시절을 보냈다. 누군가가 한 번쯤은 경험했을 법한 너무나 소소하고 평범하지만, 즐거운 학창 시절이었다.
나의 대학 생활도 이처럼 평범하지만, 두근거리고 설레면서 즐거운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보고 싶었던 영화나 연극을 잔뜩 보고 싶었고, 친구들과 밤새도록 미치도록 술을 마셔보고 싶었고, 남자친구를 사귀어 보고 싶었고, 학과의 많은 행사들을 동기들과 어울려 즐겁게 참여해 보고 싶었다.
그렇지만 난 더 이상 학교에 나갈 수 없게 되었다.
사람들 속에 섞이면 섞일수록 커져가는 고독감을 견딜 수가 없어, 난 학교에 가는 날이면 입을 떼지 못했다. 말을 하려고 하면 매 순간 목구멍 끝까지 차오르는 눈물을 견딜 수가 없어서 학교에서 난 도망쳤다.
학교를 휴학하고, 평일엔 늘 아르바이트를 했다. 주말엔 차비만 들고 지하철을 타고 교보문고에 가서 엉덩이를 깔고 앉아 책을 읽었다. 책을 읽는 동안에는 아무 생각을 하지 않아서 좋았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 창문이 없는 그 작은 빈 방을 보면 너무나 외로워 견딜 수가 없었다. 아무라도 좋으니 당장 밖으로 뛰쳐나가 누군가에게 매달려 애원하고 싶었다.
아무것도 해주지 않아도 돼요.
그냥 내 곁에만 있어주세요.
라고.
나의 감정들을 부모님에게 털어놓을 수 없었고, 친구들에게 말하는 건 죽을 만큼 자존심이 상했다. 내가 늘 솔직할 수 있었던 쌍둥이 언니와는 잦은 다툼으로 이미 허물 수 없는 벽이 생기고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절망을 느꼈고, 이유 모를 우울함에 매일을 울었다. 밖에서는 웃으며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했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늘 공허함에 울었다.
그런 나날들이 몇 개월동안 이어졌다.
그 지옥 같은 시간 끝에 결국 나는 결심했다.
더 이상은 이대로 살 수 없다.
유서를 썼다.
하루에도 몇 번을 죽는 상상을 했었다.
그리고 정말 자신 있게 그대로 삶을 끝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유서를 쓰면 쓸수록, 모순적이게도 삶에 대한 갈망이 커져갔다.
그날을 계기로 나는 매일 우울한 날들과 함께 마음을 비우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혼자임을 인정하고, 나의 능력과 나의 상황을 받아들이자고.
더 이상 타인을 부러워하고 시기하는 대신 타인과 나의 다름을 인정하자 받아들이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인간관계에 있어서 또한 아무것도 바라지 말자고 다짐했다.
그렇게 내가 밖으로 나와 사람들과 마주하기까지 일 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휴학한 1년이라는 시간은 오로지 나를 위한 시간으로 보냈다.
내가 나약하고 초라한 나를 인정하고 마주하고 보듬어주는데 시간을 다 할애했다.
많은 또래 친구들이 스펙을 위해 학원을 다니고 해외 어학연수를 가고 대외 활동들을 하는 그 시간을 난 나를 알아가는데 모두 소비했다.
그리고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을 했다. 답은 간단했다.
가질 수 없는 것을 바라지 않을 것
그렇게 일 년을 보내고 학교로 난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