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한 너의 대답에 반했다
그렇게 그와 나는 처음으로 함께 스노우 보드를 타러 갔다. M은 나가노(長野)현 출신이었기 때문에 스노우 보드를 자주 탔다고 했다. 덕분인지 그는 보드에 아주 능숙했고, 서툰 나에게 속도를 맞추며 다정히 알려주었다.
날 밀어내지 않은 그에게 고마웠다.
그리고 다행히 그도 자신에게 다가오는 날 밀어내지 않았다.
그렇게 무사히 우리는 즐겁게 가까워졌다.
그렇게 스노우보드를 핑계로 연락이 잦아졌고, 함께인 시간이 늘어갔다.
어느 날 M과 나의 휴무가 같았던 날 우리는 그 날도 함께 스노우보드를 탔다. 그리고 모두 퇴근 후,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해 몇 명의 일본 친구들도 함께 스노우 보드를 탔고 늦은 저녁 우린 함께 온천에 갔다.
온천을 마치고 입구에서 만나 아이스크림과 커피 우유를 마시며 다 같이 수다를 떨며 기숙사에 돌아왔다.
그러다 H 언니와 마주쳤다.
언니를 보고 인사하는 것이 두려웠으나, 그래도 미움 받고 싶지 않았기에 먼저 용기를 내어 인사를 했다.
"언니 안녕하세요!"
언니는 그건 날 흘려보고 무시한 채, 내 옆의 M에게 말을 걸었다.
「最近、ダルムと仲良いね?(요즘 다름이랑 사이 좋네?)」
언니가 나를 대하는 태도를 보고, M은 언니의 말을 언짢아했다. 언니가 가고 나에게 무슨 일인지 물었다. 왜 언니가 나에게 그러는지.
나도 이유를 몰랐기 때문에 딱히 M에게 해줄 수 있는 대답이 없었다. M에겐 그냥 대충 얼버무리고 기숙사에 들어갔고 언니에게 나는 또 불려가게 되었다.
언니는 날 불러서 "그렇게 노니까 좋니?" 라며 앞으로 M과 어울리지말라고 했다. 내가 그와 사이 좋은 모습을 보면 견딜 수 없을만큼 화가 난다며.
언니의 말대로 나는 M에게 연락을 했다.
당분간은 연락을 못할 것 같아. 미안해
라고.
그는 당황해했고, 이유를 물었지만 이유를 말하고나면 언니와 그의 사이가 틀어지게 될까봐 나는 입을 닫았다.
그 때의 나는 어렸고, 순수했고, 사랑받고싶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모두가 함께 모여 飲み会(술 자리)를 했다. M을 보고 평소처럼 인사를 했지만, 그와 나 사이엔 약간의 묘한 기류가 흘렀다. 그리고 어쩌다보니 그와 난 옆자리에 앉게 되었다.
그리고 M과 친한 남자 친구들도 모였고 우린 같이 술을 마시며 수다를 떨었다. 그리고 언니들이 왔다.
나는 또 언니들에게 인사를 했고, 언니들은 또다시 굳은 표정으로 날 보았다.
투두둑, 하고 마음에서 잘 버텨온 상처가 벌어진 느낌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울음이 나올 것 같아 테이블을 등지고 M을 보고 앉았다. 그는 내 편일 것 같아서.
다행히 그는 다정히 이야기를 하며 내 기분을 이해해주었다.
그 때, 뒤에서 두루마리 휴지가 날아와 뒷통수를 가격했다. 처음에는 아이들끼리 장난을 치다 맞은 건가 라고 단순히 넘겼다. 근데 M과 주변 친구들이 표정이 좋지 않아졌다. 몇 명의 친구들과 M은 날 밖으로 불러냈다.
"Hにいじめられてるでしょう?私たちはダルムの味方だよ。何かあったらいつでも言ってね。(H한테 괴롭힘 당하고 있지? 우리는 네 편이야. 무슨 일 있으면 얘기해)"
그 날을 계기로 나는 언니들에게 인정 받고싶다는 마음을 버렸다. 그리고 조금 더 강해지자고 다짐했다.
그렇게 나는 언니들과의 점점 더 멀어지기 위해 노력했고, 한국 사람들과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M과 나는 다시 잘 지내게 되었다.
그리고 나에게는 많은 일본 친구들이 더 생겼다.
알게 모르게 소문은 퍼져 사람들은 다 날 챙겨주었다. 내가 괴로움으로 그간 잊고 지냈던 미소를 그들이 또 나에게 돌려주었다.
난 일본 친구들의 따뜻한 진심이 너무나 고마웠다.
그리고 M의 보살핌이 너무나 좋았다. 늘 기대고싶고, 어리광 피우고 싶었다.
그렇게 난 M이 좋아졌다.
그리고 M도 나를 좋아하게 되었다.
우리 사이에 사귀자는 말은 없었지만 우리는 연인처럼 가깝게 지냈다.
그는 나보다도 나이가 훨씬 많았는데도 불구하고 어린 아이처럼 천진난만한 부분이 있어 나와 잘 맞았다.
그는 내가 우울해하고 괴로워 할 때면 나를 데리고 여기저기 드라이브를 시켜주거나, 맛있는 걸 사주거나 했다.
언니들을 피해 밤엔 늘 산책을 했던 날 걱정해 늘 나와 함께 걸어주었다.
공기가 맑고, 하늘엔 수많은 별들이 보이고 사방은 온통 하얀 눈으로 덮인 그 마을.
내가 그에게
"우리가 있는 지금 이 공간, 꼭 스노우볼 속에 마을 같다. 우리 지금 그 속에 있는거야. "
라고 하니 그가
"그럼 누군가가 스노우볼을 흔들면 여기에 눈이 내리겠네?" 라고 대답해주었다.
그의 로맨틱함.
나는 한층 더 그가 좋아져갔다.
늘 불면증을 앓던 날 위해 그는 조수석의 팔 걸이를 젖혀 내가 기댈 수 있게 해주고 내가 잠이 들면 조심스레 내 어깨에 팔을 감쌌다.
그가 나의 어깨에 닿았던 그 순간의 전율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가끔은 그게 좋아 일부러 자는 척을 했다.
하루는 내가 바다가 보고싶다고 하니 비가 오는 날, 그는 바다에 날 데려가주었다.
바다에 도착해 내가
"나 귀찮아서 안 내릴래." 라고 변덕을 부려도 그는 못말린다는 듯 웃으며
"いいよ。また来れるし(괜찮아. 또 올 수 있어)"
라고.
그렇게 그에게 빠져들며 그와의 미래를 그리며 설레여하던 나날들 속 또다른 절망이 내게로 다가왔다.
아직도 침대의 흔들림이 어제의 일처럼 선명한
3.11 동일본대지진
나는 니이가타에서 더이상 살 수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