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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름 Oct 19. 2018

그럼에도 무너지지 않았다

とにかく笑顔。ひたすら笑顔。振り返っても笑顔。いつも笑顔




어느덧 8월. 유니클로에서 일을 한 지도 3개월이 지났다.




입사 후 한 달 정도 창고에서 재고 정리를 하고, 매장에 나가서 계속 큰 목소리로 인사를 하는 연습을 했다.


내가 입사 때 동기가 나를 포함해서 모두 다섯명이었는데, 모두 일본인이었고 그들은 나보다 조금 빨리 피팅룸 근무를 배우기 시작했다.

내가 창고 근무를 할 때, 그들은 피팅룸에서 일을 하기 시작했고 그걸 바라보는게 싫었다.

왜 나는 함께 피팅룸 OJT에 넣어주지 않았을까.

내가 외국인이라, 내가 일본어가 서툴러서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존심도 상했고 솔직히 정말 괴로웠다. 내가 이 곳에 있어야 할 이유가 있는걸까 라는 생각이 가장 크게 들었다.



하지만 나도 머지 않아 피팅룸 교육을 받게 되었고, 곧 피팅룸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옆에서 봐주는 선배들이 있었는데 3번의 트레이닝이 끝난 후, 혼자서 해야만 했다.

그 때부터 무전기를 사용해야했는데 그 당시 어느 정도 일본어가 가능했다고 했지만 무전기로 들리는 일본어는 또다시 나에게 절망을 안겨다 주었고, 매일매일 긴장을 놓치 못하고 살았다.


하루는 피팅룸에서 손님에게 잘못된 안내를 했는데,

손님은 나에게 장난으로 "점장한테 말할거야." 라고 하셨었다.

정말 지금 생각해보면 오사카 아저씨들의 특유의 장난이었는데 나는 혹시라도 가게에 민폐를 끼치게 되는게 아닐까 덜컥 겁이나서 대행자분을 불러서 상황을 설명했다.

그 때 대행자분이 "괜찮아. 별 거 아니야. 내가 할테니까 들어가서 얼른 쉬어. 수고했어" 라고 해주셨는데

나에게는 괜찮아 라는 말이 나에게는 얼마나 따뜻하게 들렸는지 모른다.

휴게실에 들어서자마자 울었다.

정말 바보같이 엉엉 목놓아 울었다.

그 때 선배들이 다가와 엄청 많은 위로를 해주셨는데, 그 때 처음으로 이 곳에서 함께 일하고 있다는 무언가의 소속감을 느꼈던 것 같다.




3개월 동안 정말 혹독하고 엄격하게 선배들에게 교육을 받았었고,  누구 한 사람 하나 나에게 따뜻하게 대해주는 사람이 없었다.내가 먼저 다가가지 않으면 먼저 다가오는 선배들은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입사 후, 몇 개월동안은 입사하는 후배들이 없었기에 내가 마음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상대가 없었다. 동기들과는 늘 시간이 맞질 않았다.

그러다보니 매일 웃었지만, 매일 선배들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하며 말을 걸었지만 사실은 너무 고독했다.


너무 외로워서, 나는 집에 돌아가 매일 울었다.

근무가 끝나면 친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집에 함께 가는 모습을 보면서 더더욱 내가 너무 초라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그 일을 계기로 조금씩 말을 편하게 하는 분들이 늘었다. 그렇게 3개월을 보내고 피팅룸 교육이 무사히 끝나고 피팅룸 근무도 익숙해질 때쯤, 학교의 방학이 시작되었다.


생활비가 부족했던 나는 방학동안 친구 소개로 번역 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국어 레슨도 함께 시작하게 되었다.


평일엔 오전 9시에 회사에서 출근해서 번역일을 하고 그 일이 오후 3시쯤 끝나면 조금 쉬고 오후 4시 30분부터 유니클로에 갔다.

혹시 번역 근무 후 유니클로 근무가 없는 날엔 오후에 한국어 레슨을 했고,

유니클로 근무 전 번역 근무가 없으면 오전에 한국어 레슨을 했다.


회사에서 점심 시간은 자유여서 혹시 필요하면 쉬어도 되고 쉬지 않아도 된다고 했기 때문에,

나는 일을 하며 대충 삼각 김밥이나 빵으로 점심을 때우며 일을 했다.

점심을 위해 한 시간이나 쉬어야 하는게 나에게는 사치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매일을 일을 했지만 친구들과의 시간도 소중히 여기고 싶었다.

그래서 일을 몰아서 해야하는 날이 점점 늘었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하루종일 쉴 수 있는 날이 필요했고 적어도 한 달에 3번은 그런 날을 갖고 싶었기 때문에

일을 하루에 몰아서 하는 경우가 정말 많았다.


예를 들면 유니클로 출근 시간이 종종 18:15 부터인 날이 있는데 그런 날은


오전에 번역 알바를 9:00-14:00(15:00)

까지 하고

중간에 한국어 레슨을 15:00-17:00 (2회) 를 하고

끝나고 바로 유니클로 출근을 하는 식이었다.


그렇게 일을 하다보니, 시간 관리를 하는게 굉장히 힘들었다.

꼼꼼하지 못하고 덤벙거리는 성격이었던 나에게는 시간 관리와 회사에 제출하는 시프트에 굉장히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그런 시간들이 있었던 덕분에 지금은 굉장히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시간 관리에서 실수하는 일은 사라졌다.



매일 아침에 눈을 뜨면 몸에 힘이 하나도 없어서 늘 온 몸이 떨렸다.

지하철을 타러 역으로 가면서도 눈이 떠지지 않아서 매일 건조하고 뻑뻑해진 눈을 억지로 뜨며 지하철을 탔고, 공부를 했다.

그럼에도 내가 견딜 수 있었던 건 그런 날 인정해주는 분들이 점점 더 늘어간다는 사실이었다.



어느 날, 새로 오신 유니클로의 슈퍼바이저 분이 매장을 전부 다 둘러보시고 작성하시는 일보에 다른 이름도 아닌 내 이름을 써주셨다. 그리고 그 분이 나에 대해 써주셨던 한마디.



とにかく笑顔。ひたすら笑顔。振り返っても笑顔。いつも笑顔


어쨌든 웃는 얼굴. 한결같이 웃는 얼굴. 돌아봐도 웃는 얼굴. 언제나 웃는 얼굴.




웃는 얼굴이 근사한 사람.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힘이 나에게도 생겼다.



그게 날 더욱더 열심히 살게 하는 이유가 되었다.

그리고 점점 유니클로 분들과 어딘가에 놀러가거나, 집에 함께 가거나 하는 일들이 생겼다.

그러면서 동기들은 점점 하나 둘 씩 그만두기 시작해 결국 나와 유코 둘 만 남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피팅룸 근무가 익숙해질 때쯤, 8월 계산대에서 근무 하는 레지 교육을 받게 되었다.



그렇게 또다시 나에게는 새로운 근무에 대한 정신적 압박감은 생겼지만,

더이상은 주눅들지 않았다.




私は不器用やけど、笑顔と頑張り屋さんやから。

誰にも負けないみ。それがあったか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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