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내 것이 되어주면 좋겠다
늦가을.
그렇게 사노와 요네모토와 라멘을 먹고 난 후, 우리 셋과 나의 동기였던 유코와 넷이서 함께 망년회를 하기로 했다.
나와 유코가 동기이고, 사노는 우리와 입사가 2주 차이여서 사이가 좋았다.
그리고 요네모토와 사노 역시 입사 차이가 얼마 나지 않았고, 매장의 남자 스텝이 적은 만큼 둘 역시 금방 가까워졌다.
내가 스물 여섯, 요네모토가 스물 넷. 사노와 유코가 스무살.
전혀 친해질 수 없을 법한 나이 차이의 우리였지만, 우리는 넷이서 자주 어울렸다.
그렇게 12월 둘째주 어느 날.
우리는 망년회를 하기로 난바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 날 내가 무슨 옷을 입었는지, 사노와 유코의 머리나 옷 차림새가 전혀 생각나지 않는데
그가 입었던 옷은 아직도 어제 만난 듯이 전부다 또렷히 생각난다.
베이지색 아페쎄 코트와 흰색 옥스퍼드 셔츠, 흰색 코듀로이 데님, 그리고 유니클로 경량 조끼, 그리고 블랙 백팩. 그 모습이 잊혀지질 않는다. 그의 코트가 아페쎄라는 걸 안 건 후에 일인데, 휴게실에 코트가 걸려 있었고, 아무도 없을 때 그의 코트에 얼굴을 파묻고 그의 냄새를 맡아 보았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기억한다.
마치 그를 안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 혼자 엄청 두근거리며 맡았던 것이 떠오른다.
그와 둘이 만나서 약속 장소에 가기로 해서, 그를 기다리다 그를 발견했을 때
오늘도 참 멋있네 라고 생각했다.
키가 커서, 165센티인 내가 올려다 봐야했던 그. 그가 날 내려다 보는 시선이 좋았다.
쌍꺼풀이 없지만 옆으로 긴 눈을 가졌고, 치아가 커서 웃을 땐 귀엽게 느껴졌었다.
그렇게 부끄러운 마음을 꽁꽁 감추고 그와 함께 약속 장소로 걸어가며, 함께 데이트를 하는 것 같아 혼자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걸었다.
사노와 유코가 이내 보였고, 단 10분만에 끝나버린 짧은 우리 둘의 시간을 내심 아쉬워하며 이자까야에 갔다.
내가 안 쪽에 앉고 그가 내 앞에 앉았다.
마주하고 그를 보고 있자니, 더더욱 긴장되었다.
긴장을 풀기 위해 마시지도 못하는 맥주를 시켜서 반 잔을 벌컥 마셔버렸다.
그 날,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조차 나질 않는다. 그럼에도 그저 이야기를 나눈 시간 속, 교차했던 그와 나의 시선만이 떠오른다.
그렇게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 그가 갑자기
"나는 최근에 카세료(일본 배우) 닮았다는 얘기를 들었어."
라고 이야기를 꺼냈다.
카세료는 내가 좋아하는 일본 배우였고, 그에게도 몇 번이나 이야기 했던 적이 있었다.
그가 카세료를 닮았다는 이야기를 꺼내자 유코와 사노가
"카세료는 다름이가 좋아하잖아. 다름아 요네모토 어때?"
라고 놀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 놀림에 "닮은 것 같기도하네." 라고 대충 얼버무리며 혹시라도 내 마음이 들킬까봐 긴장을 했다.
그 후로는, 그 긴장감 때문에 그를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스물 여섯. 그렇게 어리지 않은 나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나에게 그런 순수한 마음이 다시 나에게 생겨날지 몰랐다.
어느덧, 술자리가 무르익고 마지막으로 요네모토가 라멘을 먹고싶다고 했다.
그 때까지만해도 일본 라멘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나는 먹지 않겠다고 했고,
요네모토는 라멘을, 우리는 디저트로 아이스크림을 주문했다.
어느덧 라멘이 나왔고, 그가 좋아한다고 하니 나도 먹어보고싶었다.
그에게 국물 한 번만 먹어봐도 돼? 라고 내가 물었고
그가 숟가락을 나에게 건네주었다.
조심스레 그 숟가락으로 국물을 떠 먹고, 그 숟가락을 돌려줘야할지 그대로 두어야할지조차 몰라 망설일 때 그가 웃으며
"숟가락을 줘야지 먹지. 주세요."
라고 말했다.
그가 그 숟가락으로 국물을 떠서 후후 불어가며 먹는 것을 바라보며,
역시 나는 당신이 좋아요.
라고, 나는 생각했다.
곁에 있고 싶다. 그가 나의 것이 되면 좋겠다.
그의 근사한 오사카 사투리.
그의 시선. 그와 나의 어깨 높이 차이.
모든 것 하나 하나에 의미를 부여해가며, 그에 대한 마음이 커져가는 것을 느끼며,
헤어지는 길.
자연스럽게 유코와 사노가 함께 걷고, 나와 요네모토가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며 난카이선 난바역에 다다랐을 때, 그가 나에게 장난스레 웃으며 "혼자 갈 수 있지? " 라며 물어왔을 때, 연하인 주제에 라고 생각하면서도 그가 나를 아이 취급해주는 것이 좋아, 그가 나를 더 귀엽게 봐주길 바라며 "응, 갈 수 있어. 조금은 무섭지만" 이라고 대답했던 사랑스러웠던 나.
"그럼 내일 또 보자"
라고 손을 흔들며 헤어져 뒤돌아 미도스지선으로 걸어가는 그 날 밤.
터져 나오는 웃음을 숨기지 못하고, 들뜬 마음으로, 추운 날씨 탓에 새빨개진 얼어붙은 손이 녹기도 전에 핸드폰을 꺼내 그에게 메세지를 보냈다.
"오늘 너무 고마웠어. 그리고 또 만나고싶어."
라고.
"그래 또 보자."
라는 그의 대답에 내가
"우리 둘이서 보는 건 어색해?"
라고 용기를 냈다.
"아니, 안 어색해. 둘이 보자."
라고 그에게서 답장이 왔다.
그렇게 나는 그와의 첫 데이트를 기대하며, 2주 동안 한국에 돌아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