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의 이해는 많은 것을 해결한다.
최근 브런치 글에 처음으로 악플까지는 아니지만 신경 거슬리는 댓글이 달렸다. 육두문자나 인신공격은 없었기에 크게 상처 받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신경이 어찌 안 쓰일 수 있겠는가. 인간인데!
브런치에서 악플에 대해 검색을 해봤다. 역시나 많은 사람들이 당했고 예상대로 이런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들이 존재했다. 가장 많이 선택하는 방법으로는 무관심(댓글 씹기), 두 번째 방법은 삭제였다. 그리고 나름대로 신박했던 나머지 방법 하나는 악플러에 대한 '이해'였다. 이해라...
그래, 이해해보자. 상황을 곱씹어봤다. 이 사람은 왜 나에게 이런 댓글을 달았을까.
악플이 달린 글의 전반 내용은 '장거리 출퇴근'에 대한 글이었고 그는 내게 코로나 시기에 일 다니는 것에 감사한 줄 알라고 이직을 하든가 라면서 비아냥거렸다. 이직을 못하는 사유가 글에 있음에도 그저 비꼬고 싶었던가 보다. 그래, 아마도 그 사람은 코로나로 인해 안타깝게도 신변에 변화가 생겼거나 피해를 봤을 거다. 그렇지 않고서야 모르는 사람한테 괜히 비아냥 거리겠어하고 이해를 하려고 했는데,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딱 하나 있었다. 말이 짧네?
일하는 게 감사한 줄은 알겠고 언제 봤다고 반말이냐고 상대와 똑같이 반말로 답글을 달았다. 무시하는 방법도 삭제하는 방법도 있었겠지만 상대가 나에게 보인 이 상황이 얼마나 무례한지 똑바로 알려주고 싶었다. 당신은 크게 틀린 말을 한 것은 아니지만, 예의는 정말 코딱지만큼도 없었다고.
어느 정도 정해진 룰이나 방안이 있더라도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해석하고 대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제 아무리 뛰어난 언변술사라 할지라도 필요한 상황에 적절하게 말을 꺼내지 않는다면 아무짝에 쓸모가 없다. 상황에 대한 이해, 그것은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한 아주 중요한 조건이다.
오늘은 회사에서 일어나는 특정한 상황에 대해 대처하는 방법에 대해 적어볼까 한다. 우리 회사원들이 회사를 다니면서 언젠가 꼭 한 번씩은 겪게 되는 상황들, 상황의 천재가 되어야 하는 순간들이다.
업무를 하다 보면 마치 정답과도 같은 모범답안이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상황을 맞닥뜨리게 된다.
원래 이 프로세스대로 하는 거야
원래 그 팀은 그렇게 일해
원래 우리는 이것만 하는 거야
특정 조직에서 또는 나의 상사나 동료로부터 원래 그런 상황이 있다고 들을 때가 있다. 정말 그 원래부터 존재하는 상황은 늘 정답이 있는 것일까? 참 신기하게도 경험상 정말 그들은 정해진 정답 안에서 일을 하는 경우가 많더라. '원래부터' 그렇게 지내왔다는 업무 방식이 존재하는 부서는 대체로 그 행동 패턴의 울타리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런 부서와 일을 하게 됐다면 먼저 심심한 위로를 건넨다. 안타깝게도 그들은 당신이 지금 무엇을 얼마나 야심 차게 준비했든 간에 가드부터 칠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당신의 의견을 애초에 받아줄 생각 자체가 없다.
그러나 상황을 절대 바꿀 수 없다는 절대 진리는 없다. 상황이 대한 이해를 하고 대처한다면 생각보다 높은 확률로 원하는 방향으로 일을 이끌어갈 수 있다.
제 아무리 도전적이고 설득에 자신이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이런 부서를 만났을 때는 일반화된 방법은 통하지 않는다. 방식을 달리해야 한다. 원하는 방향을 먼저 말하고 조율하고 싶더라도 꾹 참아내야 한다. 잡스 행님의 멋진 프레젠테이션도 이런 상황에서는 안 통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먼저 그들이 정해둔 프로세스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 일반적으로 '원래'조직은 그들의 컨셉에 맞게 프로세스를 만들어둔다. 해당 부서의 프로세스를 정확하게 밟고 난 뒤 하고픈 말을 아주 아주 조심히 던져야 한다. 그렇게 했음에도 '아 죄송한데, 우리는 원래 그런 거 안 해요'로 차단당할 확률이 높다. 상처 받지 말도록 한다. 그들은 '원래'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미괄식으로 일을 진척시켜야 한다. 즉, 아주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설득하며 일을 해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것을 함께 - 사실상 함께하지는 않을 확률이 높다 - 이뤄냄으로써 '그들이 얻어가는 이득'에 대해 잘 설명해줘야 한다.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물을 수 있다. 그냥 싸우면 안 되냐고, 힘이 더 센 조직이 이기지 않냐고 할 수 있다. 안된다. 나중이 힘들어진다. 일이 잘 되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 우리는 회사라는 공동체에 속한 회사원이니까. 가끔은 아니꼽고 귀찮더라고 맞춤형 답안을 준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신기할 정도로 어느 회사나 성격이 아주아주 급한 상사가 하나씩 존재한다. 어제 일을 시켜놓고 시킨 지가 언젠데 아직도 안됐냐며 얼마나 걸리냐고 묻는 상사들. 아무런 정보도 안 줬으면서 아직도 분석만 하냐고 대체 기획은 언제 들어가냐고 버럭버럭 하는 상사 등 차암 성격들 급하시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에게도 상사가 있을 것이고 시켜놓은 것에 대해 물어볼 때 '아직 진행 중입니다' 이야기를 하는 것이 눈치가 보일 것이다. 그러니 만만한 아랫 직원을 데려다 달달 볶으면 나오겠지 싶은 거겠지.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업무의 크기를 체크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상사 얘기 들어보면 회사에서 일어나는 일 중에 안중요한 일은 없다. 뭐가 제일 중요하냐고 물으면 다~ 중요하다고 한다. 그렇게 때문에 업무처리 시 '중요도'로만 우선순위를 따졌다간 욕먹으러 불려 갈 확률이 높다.
이런 경우, 스펙을 명확히 체크하고 업무 진행에 필요한 시간에 대한 예측(Estimate)이 필요하다. 먼저 비교적 간단한 업무와 아닌 업무를 나눈다. 단순한 UI개선이나 텍스트의 수정, 일부 콘텐츠의 보완 등과 같이 기능에 영향범위(Side effect)가 적고 시간이 적게 드는 업무들부터 나열을 하고 그중에서 상사가 시켰던 것과 아닌 것을 구분한다.
진행에 필요한 시간도 적고 상사가 시킨 일이라면 우선순위를 높이 설정하고, 다른 업무와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병행하는 것이 좋다. 즉,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수시로 보고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상사는 실제로 이걸 빠르게 배포해서 직접 사용해보고 싶은 게 아니다. '내가 그 일을 시켰는데 진척이 되고 있는지' 상황을 보고받고 싶은 거다.
보고를 할 때는 가능하면 두괄식으로 보고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예정된 시간보다 시간이 더 필요한 경우 구구절절 왜 느린지 사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일정이 2일 정도 더 필요합니다."를 말하고 그 사유를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 성격 급한 상사는 그 사유가 아무리 합당하다 하더라도 이야기가 길어지면 핑계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또한 장기간 진행해야 하는 큰 규모의 프로젝트의 경우는 무엇을 하겠다를 명확히 해야 한다. 가능하면 Task단위를 그룹화하여 보고해주는 것이 좋다. 프로젝트 차터에 적힌 내용 줄줄이 읽었다가는 프로젝트 일원이 줄줄이 들어가 욕먹는 상황이 될 테니 동료들에게 피해 주고 싶지 않다면 절대 금지.
왜 듣지도 않고 그렇게 공격적이고 급하게 물어보는지 애초에 성격이 더러운 건지, 상사가 되면 다 저러는 건지 이해가 안 갈 수 있다. 아마도, 평생 이해를 하려 해도 잘 이해가 안 되지 않을까. 그리고 딱히 이해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그저 그 상황에 천재가 되면 된다.
세상 아래 같은 상황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때문에 위와 유사한 상황이어도 앞서 말한 방법들이 통하지 않을 수 있다. 회사는 사람과 사람이 일하는 곳이기 때문에 같은 상황이더라도 상대방이 누구냐에 따라 결과가 많이 달라질 수 있다. 그렇기에 항상 상황을 주시하면서도 상대방의 컨디션을 체크하고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것이 바로 회사생활에서 꼭 필요하다고 익히 들어온 '눈치'라는 기능이다.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식이나 분위기는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어떤 상황이든 관계없이 공격적으로 얘기하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급박한 상황에서도 부드럽게 해결하려 노력하는 사람도 있다. 개개인 고유의 성격을 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가능하면 두 성격 고루 갖춰서 상황에 맞게 꺼내면 좋겠지만 한 사람이 둘 다 갖추긴 참 어렵다. 때문에 만약 내 성격이 좀 더 잘 맞는 상황이 됐을 때, 때를 노렸다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것을 연습하면 된다. 즉, 부드러운 성격의 소유자라면 상대방이 오늘따라 뭘 얘기해도 기분이 좋은 날을 노려 부드럽게 원하는 것을 꺼낼 때 성공확률이 높은 것.
상황의 천재가 되는 것은 우리가 일을 잘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지만 확실히 쉬운 일은 아니다. 나 역시 아직도 트레이닝 중이고 잘못 해석했다가는 하루 종일 먼지 나게 털리는 날이 수두룩하다. 그러나 다행히도 눈치는 선척적인 언변 스킬이나 지식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키울 수 있는 능력이다. 집중과 긴장을 놓지 않고 상황을 바라보다 보면 어느새 성공확률이 높아진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돌이 켜봤을 때 그 상황에서 상대는 내게 왜 그랬을까? 생각이 들 때 상황을 이해하려 노력하다 보면 끝내는 보이게 될 것이다. 불미스럽게 행동을 한 상대를 인정하기는 어렵겠지만 이해는 해보려고 노력해보자. 자신이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의 수가 많아짐을 깨닫는 순간, 일하는 것이 조금 더 수월해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회사원 여러분, 월요일 파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