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편도 2시간 회사를 다닌다는 것

장거리 출퇴근, 굉장한 애사심으로만 가능한 일이다.

by 달하

집부터 회사까지의 거리는 42km. 시골에 가까운 수도권 외곽에 살다 보니 어느 회사를 가도 멀지만 지금 우리 회사는 역세권도 아니고 위치도 좀 거지 같아서 더욱 멀게 느껴지곤 한다.


지금까지 총 6번의 회사를 다녔는데 결혼 전부터 집이 멀어서 한 번을 제외하고 모두 장거리 출퇴근을 했었다. 짧게는 한 시간 반 내지 두 시간 정도. 결혼을 빌미로(?) 신혼집을 얻을 당시, 이전 회사와 가까운 곳 위주로 탐색을 했었다. 좋은 집, 넓은 집 필요 없었다. 나도 꼭 집과 가까운 회사를 다녀서 워라밸을 지켜보겠노라며 위치에 집중했던 것 같다.


때문에 이 회사를 입사했던 이유 중 하나, 출퇴근 거리였다. 결혼 이후 여러 고민 끝에 이직을 결정하게 됐고 2014년 이직 당시, 우리 집은 회사에서 상당히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있었다. 회사 근처 큰길에서 버스를 타고 자빠지면 코 앞에 집이 있었다! 꿈만 같았던 출근거리 30분을 찍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아들이 태어난 후 2018년 다시 친정 근처로 이사하면서 나의 30분 출근길은 그렇게 다시 꿈이 되어버렸다. 아침 9시 출근인 회사에 출근하기 위해서는 적당히 자고 일어나서 치카를 하고 7시 50분에 슬슬 나와도 지각할 걱정이 없었는데.. 하루에 7시간 자는 것이 당연했는데.. 아 아득한 꿈이여.

꿈을 꾸었느냐


지금부터는 현실이다. 출근을 위해서 매일 5시 반에 기상을 한다. 6시간 조금 못 잤을 거다. 전날 야근이나 회식이라도 하는 날이면 4시간도 못 자고 나가는 경우가 다분하다. 분명 아침인데 어둑어둑한 방에서 겨우 눈을 뜨고 화장실로 향한다. 행여 잘못 발을 디디는 경우 소리라도 나면 아들이 깨버린다. 이건 뭐 도둑도 아니고 까치발로 겨우겨우 나와 아이가 잠들어있는 안방 방문을 조심히 닫는다. 대략 얼굴을 씻고 만들고(?) 옷을 주섬주섬 입고 난 뒤 아주 조용히 도어록을 열고나서야 큼직한 한숨을 건넨다. 휴~ 오늘도 무사히 나왔군.


늦어도 6시 15분에는 나와야 걸어서 출근이 가능하다. 17분이 넘어가는 순간 약간 빠른 걸음을 유지해야 되고 20분이면 뛰어야 한다. 평균적으로 버스는 6시 24~26분 사이에 도착한다. 예전에는 조금 차가워진 공기를 양껏 들이마시며 하루를 시작했는데 이제 마스크가 항시 있다 보니 주변을 경계하고 겨우 들이마실 수 있다. 정류장에 도착하면 얼굴만 아는 회사원들이 줄을 서있다. 매일 같은 시간에 타는 사람들이다 보니 타 지역에서 만나면 인사라도 할 것같이 얼굴이 낯익어졌다. 버스를 기다리며 그제야 안심하고 이어폰을 꽂는다. '잔잔바리' 플레이 리스트를 틀고 버스를 기다린다.


이 버스를 놓치는 경우 재수 없으면 지각을 한다. 그 시간에 버스를 타도 월요일은 거의 8시 45분쯤 도착을 한다. 다른 평일은 차가 좀 없으면 운 좋게 8시 출근을 하기도 하지만 드문 편이다. 이사하고 지각을 많이 하면 어쩌지 싶었는데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던가, 지각을 면하기 위해 남들보다 빨리 움직이게 됐다. 버스를 타도 아직 밖이 어둑어둑하다. 좌석버스이기 때문에 고속도로를 타기 전 마지막 정류장에서는 타지 못하는 사람도 발생한다. 참으로 안타깝다. 안타까운 마음도 잠시, 기사님께서 버스 안의 밝은 불빛을 꺼주면 이내 잠이 든다.


그렇게 잠이 들고 상모를 몇 번 돌리고 나면 어느새 여의도. 해가 중천까지 떴다. 따가운 햇빛이 눈을 찌르면 내릴 때가 된 것이다. 주변을 두리번거리곤 지나친 건 아닌지 다시 확인을 한다. 겨우 졸린 눈을 비비고 버스에 내린 곳에서 다시 환승할 버스를 기다린다. 환승버스는 배차간격이 7분 정도 되는데 가끔 광흥창 쪽에 막혀있거나 하는 경우 20분 정도 배차가 걸릴 때가 있다. 이런 경우 다른 버스로 다음 역까지 간 뒤에 또 다른 버스를 갈아타서 총 3번의 환승을 해야만 회사 근처를 갈 수 있다.


물론 지하철도 있긴 하다. 하지만 출근길 2호선은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지하철을 타면 약간 공황 같은 게 온다. 식은땀이 흐르고 주변인들과 붙어있는 게 힘든지 심장이 빠르게 뛴다. 호흡은 코로만 겨우 숨을 유지하는 수준으로 하고, 입은 가능하면 벌리지 않는다. 더구나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 시기에는 더욱이 지하철은 타고 싶지 않다.


그렇게 적게는 2번, 많게는 3번까지의 환승을 통해 회사 근처 정류장에 내리면 회사까지의 거리는 약 5~7분 정도 된다. 남들에게는 그저 흔한 출근길이지만, 나에게는 출근 한 번에 이토록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출근부터 바쁘게 움직이고 회사에 도착하면 거의 고정 멤버가 일찌감치 도착해있다. 아직 근무 전이니 약간은 여유 있게 커피를 하나 사고 자리에 앉는다. 앉는 순간부터! 출근길만큼 바쁜 일정이 기다린다. 회사는 신기할 정도로 항상 바쁘다. 분명 작년까지만 해도 올해까지만 고생하자 했는데 올해가 되니까 또 올해까지 고생하자고 한다. 내년에도 올해까지 고생하자고 하겠지?


편도 2시간 회사를 다니면 야근도 회식도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침 9시부터 짧게는 30분 단위, 1시간 단위의 미팅이 오후 6시까지 잡혀있기에 하루는 종일 미팅만 다니게 된다. 업무도 워낙 다양해서 뇌를 빠르게 회전하지 않으면 머릿속에서 업무도 사람도 믹스되어 버린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매 순간 미팅에 집중하고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그렇게 종일 미팅을 하고 나면 나에게도 주어진 과업들이 있다. 팀원 인사평가나 업무 보고서, 주간보고 준비와 각종 결정이 필요한 사안에 대한 회신, 유관부서 문의에 대한 답변과 외부 미팅 정리, 팀에서 관리되는 문서의 정리정돈, 고객 반응 체크 등 쌓인 업무는 결국 야근으로 이어지게 된다. 야근을 하고 나면 어느새 밝은 달님이 어둑한 밤을 밝힌다.


출출한 배를 대충이라도 채우기 위해 남은 팀원들과 밥을 먹고 복귀하거나 혼자 있는 경우 대충 샌드위치 같은걸 사 와서 자리에서 먹으며 일을 한다. 그렇게 치열하게 일을 끝내고 시계가 11시를 향하면 슬슬 퇴근을 한다. 회사에서는 11시가 지나면 택시비 지급이 가능하다. 택시를 불러 잠시 눈을 붙이고 집에 도착하면 약 12시. 택시비는 평균 4만 원이다.


12시에 집에 도착 후 또다시 도둑놈처럼 까치발로 화장실로 향한다. 머리를 감고 씻고 나와 로션을 거실로 가지고 나가 바른다. 곤히 잠들어 있는 아들을 보며 많이 컸다는 생각과 함께 손을 잡아본다. 작고 보드랍고 귀여운 손에 깍지를 껴보며 금세 또 성장한 걸 느낀다. 야근하고 들어온 날은 그렇게 잡은 손을 그대로 잠이 들어버린다.


업무가 유난히 많거나 야근을 길게 한 날은 꿈에서도 일을 한다. 지독한 워커홀릭. 가끔은 이런 내가 싫기도 좋기도 하다. 지루하게 사는 것보다 이렇게 바쁘게 움직이는 게 좋지 싶다가도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렇게 치열하게 살아가나 싶을 때도 있다.


돈 버는 게 이렇게나 힘들다. 이사를 하고 나서 편도 2시간 걸리는 이 회사에 2년을 다녔다. 회사에 불만이 크거나 한 것은 아니지만 출퇴근 때문에 가끔 너무 지쳐서 좀 가까운 데로 이직해버릴까 생각을 해본다. 그러다 또 이렇게 나를 인정해주는 회사가 얼마나 있겠냐 하면서 얌전히 다닌다. 그러다 욕이라도 시원하게 한바가지 먹는 날은 다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지쳐서 내려놓고 싶을 때쯤, 연봉협상을 한다. 그렇게 또, 나는 다시 노예계약을 한다.


장거리 출퇴근길 회사원들은 이 버거움을 공감할 것이다. 이래서 아무리 힘들어도 서울살이 하려고 아등바등 사나 보다 싶을 때가 많다. 편도 2시간 회사를 1년 이상 다니는 것, 이건 웬만한 애사심 갖고는 다니기 힘들다. 그리고 나의 이 고생을 회사는 모르더라도 나의 상사는 알아야 한다! 내가 얼마나 굉장한 일을 하고 있는 건지 알겠냐! 차마 외칠 수 없는 외침을 조용히 글로 외쳐본다. 하, 이렇게 또 월요일이군.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뭐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