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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뭐했어?

면접관이 되고 나서 알게 된 질문의 수준

by 달하

얼마 전, Daum에서 이런 콘텐츠를 봤다


내 이야기인가 싶었다. 오래전 기억 속에 잊혀가던 신입사원 면접 하나가 떠올랐다. 수많은 면접 중 최악의 면접을 차지한 바로 그 면접! 그 면접관 하나로 인해 서울대생과 교육회사 사람들에 대해 부정적인 색안경을 쓰기 시작했다.






대학입시 및 교육 전문 U사

웹기획 부문 - 신입 및 경력 2년 미만


그리 좋은 학교로 볼 수는 없지만 인서울 4년제, 졸업학점 3.8과 싸트준비 때문에 획득했던 중간 레벨 OPIc점수, 삼성전자와 코카콜라 등 대학생 마케터 수료와 작은 공모전 수상. 나의 신입사원 이력서의 스펙이었다. 엄청난 고스펙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는데 면접관이 내게 말한다.


- 면접관:
학교 다닐 때 뭐했어? 학교도 그렇고, 학점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술 먹고 나다니고 그랬나 봐? 막, 나이트 같은데 전전하고 그러다 졸업했나?

*워딩이 정확하지 않지만 '술 먹고 나다니다'와 '나이트'라는 표현은 명확히 기억하고, 질문의 유치함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자기들끼리 깔깔거리며 웃는다. 얼굴이 벌게진다. 면접자 4명 중 나에게만 그런 질문을 던진 걸로 봐서 나를 제외한 모두는 고스펙 또는 고학력, 고학점을 가지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럼에도 꿋꿋하게 대답했다.


- 나: 아뇨, 그렇지 않았습니다. 공부만 죽어라 하는 것보다 더 넓은 경험을 하고 싶어서..
- 면접관: (말 끊고) 아니~ 아무리 그래도 기본이 있어야지 기본이. 학생이 말이야, 공부를 잘해야지 다른 거 잘해서 무엇에 쓰나?
- 나: (...)


면접이 끝나고 나와 하늘을 바라보니 한숨이 절로 났다. 경력직이었다면 면접 중간부터 '뭐야? 이 병신 같은 회사는?'하고 대충 봤겠지만, 신입사원인 나에게는 정말 취업이 쉽지 않구나 하며 진심으로 학점에 목숨 걸지 않은 나 자신을 질책했다.


내가 면접을 봤던 회사는 당시 대학입시 교육으로 업계 1위 회사였고 나에게 그런 면박을 준 면접자는 포털에 검색해보니 업계에서는 이름깨나 알려진 '서울대 경영학과'출신 팀장이었다. 사람 얼굴로 뭐라 하면 안 되지만 낄낄거리는 인상은 참 더러웠고 면접 태도는 그야말로 쓰레기였다.


그럼에도 신입인 나는 그 사람이 잘못됐다고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나는 취업을 해야 했고, 그게 정답처럼 여겨지는 신입사원 면접을 망쳤을 뿐이었다. 면접이 끝나고 인턴 시절 - 그 회사도 교육회사였다. -나를 잘 챙겨주셨던 선배에게 연락을 해서 이런 면접이 있었다고 원래 이 업계는 이렇게 면접을 보는 거냐며 훌쩍거렸다. 인턴 선배는 자기 역시 지방대 출신이라 입사 이후에도 고학력 선배들 대면하는 게 쉽지 않다고. 아마도, 자신은 회사에서 수명이 짧을 거라며, 자기를 생각해보면 오히려 그런 회사는 가도 문제라며 토닥여주었다. 넌 어디 가도 잘할 거라고 힘내자고, 나를 그렇게 응원해주셨다.


선배는 10여 년 다닌 자신의 회사를 결국 버티다 못해 퇴사를 했고, 현재 가족과 함께 제주도에서 작은 카페를 운영하며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면접관이 되어 바라본 면접자의 삶

면접관이 된 지 벌써 2년이 흘렀다. 사실 2년이 지난 지금도 아직 채용을 하는 입장인 게 익숙하지 않다. 수많은 면접자를 만났고 개중에서는 '면접 전문가'도 만났다. '면접 전문가'란 소위 면접 스터디나 여기저기서 인사팀에서 알려주는 인터뷰나 기사 등에서 발췌한 대답을 막힘없이 술술 청산유수로 대답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나는 면접자 시절, 면접 스터디를 썩 신뢰하지 않았다. 자신감이라도 얻어올까 싶어 스터디를 하러 나간 경험이 있는데 오히려 질타만 된통 받고 왔다. 명쾌하지 못하다, 대답이 잘못됐다, 태도가 어떻다 등 나의 그 어떤 대답도 크게 의미 있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규격화된 대답을 벗어나면 그저 잘못된 대답이 될 뿐이었다.


물론 대기업 신입사원 공채와 같이 대규모 채용이라 어느 정도 규격화가 필요한 면접이라면 제법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러나 나는 교육회사 면접 경험 이후 어차피 학벌이나 스펙이 큰 회사에 비빌게 안된다는 것을 느꼈기에 공채는 애당초 포기했었다. 그렇게 면접 스터디 없이도 이직 잘만했고 결국 대기업 취업도 성공했다. 친구들이 오죽하면 책을 써보라고 하며 제목도 정해줬다. [이직이 제일 쉬웠어요]


이직을 할 때 승부를 본 것은 나를 대표하는 '이야기'였다. 경력직으로 이직하면 대부분 비슷한 질문을 한다. 지난 회사의 경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즐거웠던 경험과 힘들었던 경험, 본인 성격의 강점, 단점 등 신입사원 면접만큼 현란한(?) 질문이 자주 나오지는 않는다. 어느 정도 규격화된 질문에서 늘 같은 대답을 듣는 면접관의 입장을 생각했었다. 때문에 솔직하면서도 독특했던 경험 위주로 면접에 임했었고 면접관 입장에서 다소 신선했던 나의 이야기들 덕분에 대체로 좋은 결과를 얻었던 것 같다. 단, 아주 긴장을 하고 보는 면접은 대부분 탈락했다. 긴장을 하면 면접 스터디에서 배웠던 진부한 '면접용 정답'이 나오게 되더라.


수많은 이직을 통해 개개인의 '개성'은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고, 면접관이 된 지금도 자신만의 개성이 중요하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또한 면접스터디를 통해 정해진 대답을 구현하는 전문가들은 생각보다 매력적이지 않다는 것을 면접자 때보다 면접관이 되고 나서 더욱 실감하게 됐다. 요즘 스터디 내용은 좀 달라졌으려나.


면접자 때는 예상 질문을 정리해서 스스로 되내었지만 면접관이 되고 나서는 면접자를 잘 알아볼 수 있는 면접 질문을 나날이 리스트업 한다. 물론 막상 면접에 임하게 되면 못하고 넘어간 질문이 수두룩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면접관 입장에서 질문을 정리하는 이유는 하나다. 특출난 사람을 뽑기 위함이 아닌 우리팀에 꼭 맞는 조화로운 사람을 찾기 위해서다. 면접자 때는 인지하지 못했던 것, 회사는 잘난 사람을 뽑는 게 아니라 '함께할 사람'을 뽑는 것이다.






면접관으로 바라본 지난 면접 경험

면접관이 되고 나니 면접자의 지나온 회사나 경험을 아무래도 신경 쓰게 되긴 한다. 신입사원이면 모를까 경력사원의 경우 스펙은 크게 신경 쓰지 않게 되는데 오히려 너무 고학력이나 고스펙의 경우는 조금 거리감을 두게 된다. 어쨌든 서류만으로 면접자를 약간은 평가하게 되고, 그것이 바로 그 어렵다는 '서류전형'인 것이다.


서류전형을 통과한 사람들이 면접을 보러 오면 내가 면접관 입장에서 특히 조심하는 것이 압박면접이다. 필요 이상으로 깐족거리거나 허세가 심한 경우 상대의 기를 눌러주기 위해 똑같이 필요 이상의 전문지식을 묻게 되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대체로 드물다. 우리 회사의 면접은 제법 편안한 분위기에서 - 물론 주관적인 견해일 수 있음 주의 - 면접을 보려고 노력한다. 그 편안한 분위기로 인해 면접자의 자연스러운 말버릇이나 모습들이 나오기 때문에 면접관 입장에서는 상대를 판단하기 조금 더 수월하다.


서류전형을 탈락시키는 경우도 분명 있다. 서류에서 보이는 것이 그 사람의 이미지를 결정한다는 것이 면접관이 되고 나서 어느 정도 이해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학점이 현저하게 낮은 경우 낮은 사유가 궁금해지긴 하더라. 대학 졸업 후 첫 취업까지의 기간이 길거나 이직하기 이전 회사의 경력이 과하게 짧고 많은 경우는 서류에서부터 반감을 갖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면접까지 왔다면 얘기가 다르다. 우리팀의 경우 특히 어느 정도 회사에서 원하는 최소한의 스펙만 맞다면 서류는 가능한 통과를 하는 편이다. 서류보다 면접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서류전형이 통과된 면접자라면 대우를 해야 마땅하다. 면접은 면접자, 면접관 쌍방의 평가다. 면접관은 면접자가 우리 회사에 적합한가를 평가한다. 반면에 면접자는 자신을 알리러 온 것과 동시에 다닐만한 회사인지 평가하는 자리다.


면접관은 회사를 대표하는 첫인상이자 얼굴이다. 내가 겪은 그 회사가 제 아무리 업계 1위를 달렸고 면접관 자체만 놓고 봤을 때 상당히 난놈이었다 하더라도 그 회사는 내 머릿속에서 쓰레기 회사로 기억되고 있을 뿐이다. 면접관의 태도나 발언 하나하나가 회사의 이미지임을, 질문의 수준이 회사를 기억하는 수준임을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한다.


면접관이 되고 다양한 것을 이해하게 된 지금, 여전히 그 교육회사의 서울대 출신 팀장의 저급하고 치졸한 질문들은 이해가 안 된다. 이름을 기억했다면 시원하게 까발릴텐데, 참으로 아쉬울 뿐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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