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공간, 다른 세대의 공존에 대하여
사회 초년생 시절, 선배들로부터 익히 듣고 배워왔던 '사회생활 잘하기'의 표본이 조금씩 무너지는 것을 느낀다. 물론 나도 세대차이는 종종 느꼈었지만 기본적인 사회생활 법칙이나 규율이 크게 변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지금은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갈피를 못 잡을 때가 생긴다. X세대와 Z세대, 그 사이에 있는 Y세대(밀레니엄 세대라고도 부른다.)인 내가 그들과 함께 살고 있는 요즘 사회는 그렇다.
지금은 상상할 수도 없는 과거 회사의 모습은 그야말로 참담했다. 사무실 내 재떨이의 존재라던가 A4용지의 피날레, 부장님이 신고 있던 슬리퍼가 던져지는 모습들까지. 돌이켜보면 잿빛인 그 시절에는 건물 내 전체 금연, 존칭과 성희롱에 대한 차단 등을 과연 상상했을까. X세대와 Z세대는 그렇게 서로 다른 입장에서 '상상할 수 없는'일들을 겪으며 하나의 공간에서 공존해왔다.
서로 다른 세대가 한 공간에 살아간다는 것, 두 세대 중간에 낀 Y세대인 내가 바라보는 공존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X세대와 Z세대는 회사를 바라보는 시각부터 차이가 두드러진다. 먼저 X세대인 70년대생에게 회사의 가치는 주로 조직에 대한 충성심이 중요하고, 평생직장을 꿈꾸며 살아왔다. 회사 사람이 가족이요, 회사가 삶의 터전이었다. 회사는 나에게 피 같은 돈을 주는 곳이기에 개인의 성장 같은 키워드보다는 희생, 소속감 등의 키워드를 더 가치 있게 느껴 회사에 충성하는 모습을 바라고 원한다.
반면 Z세대가 바라보는 회사는 그저 하나의 돈벌이 수단 중 하나다. 매체로부터 회사에 대한 어려운 면을 많이 봤고 부모님의 회사생활 고충을 보며 자라왔다. 굳이 힘든 걸 선택할 필요가 없다. 회사가 아닌 돈벌이 대안이 이미 넘치는 시대에(대표적으로 1인 창업, 유튜버 등) 회사를 택했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결정일 수 있다. 때문에 이왕 다닐 거 재미있게 다니고 싶고 성장하길 원한다. 때문에 회사에서의 충성과 같은 불편함은 가볍게 패스한다.
이토록 다른데 공존할 수 있는 이유는 이들이 생각하는 회사의 가치가 어떻든, 두 세대는 돈을 벌기 위해 회사를 왔다는 목적이 같다는 것이다. 이처럼 1차원적이지만 중요한 목표 때문에 이들이 회사에서 함께 공존할 수 있다.
두 세대가 회사에 공존하면서 Y세대인 내가 가장 어렵게 느끼는 것은 대화법의 차이다. 회사 사내 메신저를 통해 대화를 하다 보면 전화벨이 울린다. 메신저가 귀찮은 X세대의 대화법이다. 뭐든 마주 보거나 직접 목소리를 들으며 말로 해야 편하다. 보고는 대면보고를 하는 것이 원칙이고 불가피한 상황에서도 메신저로 가볍게 공유하는 것은 위험하다. X세대는 주로 상사이기 때문에 대화를 주고받기보다는 상대의 말을 받아들인 후 의견을 조심스럽게 표하는 것이 중요하다.
메신저에 익숙한 Z세대의 대화는 상대적으로 편하다. 메신저이기 때문에 한 번 더 생각해보고 말을 할 수 있고 감정표현이 다채롭기 때문에 꽤 유쾌하고 재밌게 대화를 할 수 있다. 다만 Z세대의 특징인 '간단하고 솔직하게 말하기'대화법은 아직 익숙하지 않을때가 있다. X세대의 의견에 대해 거침없이 불편함을 드러내는 솔직함에 X세대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경우가 있다. 그 상황을 양쪽에 설득하느라 진땀을 빼는 경우가 많다. 솔직히 이 상황에서 Y세대가 하드캐리한다는 것은 인정해줘야 한다.
이 두 세대의 충돌하는 대화에도 하나의 공동의 목표가 있다. 지금 상황에 놓인 이 문제를 훌륭하게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 노력이다. 좋게 포장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의지가 없다면 굳이 대화에서 충돌이 있을 이유도 없는 것이다.
두 세대는 미묘한 감정선의 차이도 존재한다. '귀를 기울인다'는 표현을 받아들이는 주체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상대에 대한 '관심'을 예로 들 수 있겠다. 단적인 예로 '휴가'를 쓴다고 가정해본다. 상황을 하나 만들어보자면 프로젝트가 한창 진행되는 도중 갑작스럽게 2일의 휴가를 쓰겠다는 Z세대 직원이 있는 상황.
X세대의 입장에서 '이 중요한 시기에 휴가를 왜 써?'라고 생각할 수 있다. 프로젝트의 중요도가 높을수록 후자에 더 가깝게 느낄 것. 주로 이런 경우를 보고 꼰대라 하겠지만 중요한 프로젝트를 잘 성공시키고 싶은 선배의 입장이라 포장해본다. Z세대가 올린 휴가계를 보고 X세대는 묻는다. "무슨 일 있어?" 내포하는 의미야 어떻든, 난 지금 당신이 휴가 쓰는 사유를 알아야겠다는 X세대 나름대로의 '관심'이다.
그러나 Z세대의 입장에서는 '왜 물어보는 거야?'라는 마음이 들게 된다. 프로젝트를 하다 보니 심신이 지쳐서 그냥 좀 쉬고 싶은 마음일 수도 있고 중요한 여행 계획이 잡혔을 수도 있다. 전후 가리지 않고 쓰는 것은 회사생활에서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2일 비운다고 그렇게 호들갑을 떨 일인가 싶게 느낄 것이다. 사유를 묻는 것도 불편하다. X세대가 좋은 마음으로 물어봤던 '관심'이 '참견'처럼 느껴진다.
실제로 이 상황은 내가 팀장이 되고 겪었던 상황이다. 프로젝트 진행 중간에 아무런 내용 없이 휴가를 쓴 막내의 휴가계 승인을 한 뒤 선배로부터 "막내 무슨 일 있어?"라는 문의에 아차 했었다. X세대와 Z세대의 중간에 놓인 Y세대는 별 일 아니고 개인적인 상황이 있다고 설명을 한다. 양쪽 누구도 상처 받지 않도록, 그렇게 위태로운 충돌의 경계를 허문다.
아주아주 오래전부터 회식의 문화는 소속감의 중요한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술을 먹지 못하더라도 회식에 가면 겨우 한 잔이라도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X세대일 확률이 높다.) 못 먹는다고 대놓고 표하는 사람(예상대로 Z세대) 이 있다. 양쪽 세대의 소속감의 기준은 조금 다르다. 억지로라도 소속되다 보면 마음이 통한다는 X세대와 나의 취향이나 성향을 존중하는 게 중요하다는 즉, 취존주의의 Z세대의 성향적 충돌이다.
Z세대가 하나의 화두로 떠오르면서 한 가지 떠오른 단어가 있는데 바로 '싫존주의'다.
[싫존주의]
다양성이 추구되는 현대 사회의 모습을 반영한 신조어로, 불만이나 선호하지 않는 취향 등을 당당히 밝히는 현상이다. 젊은 세대의 직설적이고 솔직한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 네이버 시사상식사전
주로 X세대는 회사원이라면 내가 조금 싫더라도 남에게 맞추는 것을 당연시하며 지내왔다. 그렇기 때문에 조직생활, 사회생활의 룰을 어느 정도 규격화되는 것이 가능했다. 지켜야 할 규칙 몇 가지만 알면 회사를 다니는데 큰 무리가 없었다. 그러나 Z세대는 달랐다. 싫어하는 것도 취향이라는 것이다. 굳이 취향을 맞춰가면서까지 그 불편함을 감당하는 것에 불편함을 느낀다.
X세대는 나로 인해 남에게 피해 주지 말자는 주의고 Z세대는 나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맞추지 말자는 주의다. 돌이켜보면 내가 X세대와 살아왔던 시대에는 나 역시 X세대의 취향과 가깝게 자라왔지만 지금은 또 Z세대의 취향과 가까워지고 있다. 시대가 바뀌면서 취향이 바뀌는 것,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 아닐까? 개취(개인의 취향)를 정답이라고 여기는 것만 서로 조심한다면 두 세대가 공존하는데 충돌의 문제는 없을 것이다. 세대를 떠나 회사에서 공존하기 위해서는 서로 취향을 배려하는 모습이 필요해보인다.
인간은 본인이 살아가는 시대에서 여러 가지의 상황에 대한 선택지가 있고 그중의 하나의 답안을 선택하여 살아가는 것이다. 우리 회사원도 한 명의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세대가 달랐어도 결국 '회사'라는 하나의 공간을 택했고, 내가 선택한 선택지 안에서 인간답고 훌륭하게 일하는 것. 그 하나의 공동목표로 함께 회사에서 공존하며 살아가고 있다.
아마도 X세대 이전의 세대들은 X세대를 보며 '요즘 것들은...'이라며 혀를 찼을 것이다. 지금은 Z세대를 보며 X세대가 동일한 말을 하고 있다. 우리의 Z세대는 언제가 있을 또 다른 세대를 보며 동일한 말을 할 것이다. 그리고 미래에는 지금의 Y세대와 같이 중간에 낀 세대가 그 두 세대의 완충제의 역할을 하며 공존하게 될 것이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환경의 변화나 취향의 차이가 있을 뿐, 한 공간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것에 변함은 없었다. 현재 코로나 이슈로 인해 또 다른 '회사'의 개념이 새롭게 예견되고 있는 시점이다. 재택근무가 활성화되면서 점차 비대면 업무들은 늘어날 것이고, 이런 환경으로 변화된 또 다른 세대를 맞이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는 모두 회사에 소속된 회사원들이고 공동의 목표를 위해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달려갈 것이다.
서로 다른 언어체계와 환경이지만 '회사원'이라는 이름 아래 X세대 부장님도 Y세대인 나도 Z세대인 막내도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세대도 인간답고 훌륭하게 일을 해낼 것이며 함께 공존하고 있을 것이라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처럼 다양한 세대가 함께 공존하며 살아가는 '회사원'인 것이 여전히, 나는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