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강화도 여행일기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외벌이 엄마이자 회사의 노예. 12월의 어느 날, 불쌍한 나의 뇌를 쉬게 해 주고 오라는 남편의 하명에 따라 하루의 시간이 주어졌다. 고심한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있을까(성격상 못한다에 한 표), 친구를 만나서 미친 듯이 수다를 떨까(뇌가 쉴 수 없다), 빡세게 육아와 밀린 집안일을 할까(미쳤나 싶다) 많은 생각이 스친다. 그러다 문득 가고 싶은 곳이 떠오른다. 절이다.
부모님은 내가 어려서부터 석가탄신일만 되면 절에 가서 공양미를 먹고 기와를 올리곤 했다. 딱히 불교 신자도 아니지만 그렇게 해야만 마음이 편하신가 보다. 부모님을 따라서 몇 번 갔는데 밥도 맛있고, 선선한 공기와 절 특유의 고요함이 좋았던 기억이 있다. 아마도 이때부터 절을 좋아했던 것 같다.
나이가 들고 법문집을 입문하고 나서 점점 더 절에 대한 애정이 쌓였다. 그렇다고 불교의 교리를 따르거나 할 생각은 없지만 절에 가는 행위가 심리적 위안을 준다는 것을 알고 있다. 힘이 들면 법문집을 읽고 절에 가고 싶다는 나를 보고 남편은 머리 깎고 절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냐며 진심 어린 걱정을 한다. 소세지와 맥주를 못 먹는 곳에서는 살고 싶지 않다. 안심해도 괜찮을지 싶다.
게다가 이번에는 무슨 일인지 차를 써도 된다는 선심을 쓴다. 이게 무슨 일이지! 회사 때문에 지친 몸은 회사에게 보상을 받아야 하는데 뜻밖에 집에서 엄청난 보상을 받는다. 신차를 뽑은 지 1년 만에 홀로 나의 차를 타고 여행의 허락을 받았다! 굉장한 날이다. 신중해야 한다.
두 가지 후보가 있었다. 불에 타버렸던 비운의 절 낙산사와 오래된 역사를 지닌 전등사였다. 사실 마음이 탁 트이는 바다와 산을 함께 만족시키기에는 낙산사가 딱이었지만, 지리적으로 너무 멀기도 하고 암만 운전을 좋아해도 차로 강원도까지 운전해서 갈 엄두가 나지 않아 전등사로 결정을 한다.
20대, 전등사에 온 기억이 있다. 당시에는 어떤 의미를 찾기 위해 방문했다기보다 누군가에게 끌려가 매우 불편한 사람들과 어울려 전등사 아래 있는 음식점에서 도토리묵과 막걸리를 먹는 것이 목적이었다. 의미 없는 대화가 오갔고 듣기에 불편한 섹드립들이 오갔다. 별로 친하지도 않은 누군가의 드립을 들으며 깔깔거리는 그 자리가 꽤 불편했다.
당일 불편했던 그 자리 때문에 심하게 체해서 한참을 고생하다 결국 응급실까지 실려간 기억이 있다. 사실 전등사가 내게 불편함을 준 것도 아닌데 괜스레 전등사 근처도 가고 싶지 않았다. 여러 의미로, 강화도는 내게 별로 기억이 좋지 않다.
좋지 않은 기억이 있는 장소에는 다시 가고 싶지 않게 마련. 그럼에도 나는 전등사에 가기로 결정을 했다. 전등사와 강화도에 대한 안 좋은 기억들을 훨씬 좋은 기억으로 덮어 불편했던 내면을 극복해내기를 스스로에게 바랐다.
그렇게 굳은 다짐을 하고 아침에 눈을 떴는데 이 무슨.. 갑자기 첫눈이 펑펑 내린다. 보통 첫눈은 약하게 오게 마련인데 함박눈이 내렸다. 바깥의 아이들은 눈이 온다며 신나서 나와있고, 눈사람을 만들고 눈싸움을 하고 있었다. 아들도 펑펑 쏟아지는 눈에 관심을 가졌고 나는 이런 상황에 절로 떠난다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싶었다. 가지 말라는 신의 뜻은 아닐까 마음의 혼돈이 올 때쯤, 남편은 뒤돌아보지 말고 떠나라고 했다.
안 그래도 장거리 운전을 안 한 지 제법 돼서 운전이 약간 겁나는 상태인데 펑펑 쏟아지는 눈을 맞으며 떠나야 한다니, 마음이 불편했다. 육아에 지쳐 보이는 남편의 표정도 눈이 오는데 밖에서 같이 놀아주지 못하는 아들도 눈에 계속 밟혔다. 가지 말라는 신의 계시처럼 느껴졌다.
그럼에도 남편의 등 떠 밀림에 떠나보기로 결정했고 안전하게 도착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눈은 점점 강하게 내리고 와이퍼는 열심히 움직였다. 강화도로 들어가는 길에 위치한 막국수 맛집에 도착하여 배를 든든하게 채우고 다시 전등사를 향해 조심스럽게 밟았다. 다행히도 눈은 점점 사라져 갔고 이내 맑은 하늘과 밝은 해가 중천까지 떠올랐다.
그렇게 전등사 남문에 안전하게 도착을 했다. 입구에서 주차비 2천 원, 입장료는 3천 원. 총 5천 원이면 전등사의 모든 곳을 둘러볼 수 있다.
처음 전등사에 입장하니 넓은 터와 군데군데 수놓은 법당들, 사각사각 거리는 대나뭇잎 소리와 내딛는 곳마다 뽀드득거리는 하얀 눈의 소리까지. 지금까지 떠나지 말까 고민하고 불편했던 마음들이 햇살 좋은 날의 눈처럼 사르르 녹아들었다.
사실 나는 불교도 아니고 역사도 젬병이라 전등사에 대한 역사나 각 법당 명칭의 유래 따위는 잘 모른다. 그저 내딛는 걸음 하나하나마다 무거웠던 짐을 내려놓는다는 기분, 그것 하나로 전등사에 온 이유가 충분했다.
천천히 조금씩 길을 따라 올라가다 뒤를 돌아서 보니 전등사의 전체적인 모습이 시야에 담겼다. 발걸음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계속 올라가다 보니 포토존이라는 법당까지 올라가게 됐다. 그 법당 뒤로 산길이 하나 보였다. 진입금지 표기도 없고 오히려 화살표로 이정표가 놓여있는 걸로 봐서 올라가도 좋다는 뜻인듯했다.
끊임없이 이정표를 따라 올라갔다. 회사에서 힘들었던 기억도 육아로 지쳤던 심신이 다 풀려버릴 때까지 계속 올랐다. 어떻게 내려가지?라는 생각도 못할 정도로 뭔가에 홀려 계속 올라가다 보니 꽤 높이 온 모양이다.
조금 더 오르면 가까이에 꼭대기가 있을 것 같아서 올라볼까 했는데 눈이 너무 쌓여서 땅이 어딘지 돌이 어딘지 보이지 않았다. 등산객이 아니라서 지팡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올라가다가 자칫 발이라도 잘못 디디는 경우 저세상으로 갈 모양새였다. 그럼에도 무슨 오기 때문인지 올라가겠다는 의지가 불타올랐다.
참고로 나는 등산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오른 등산이라고는 어릴 때 멋모르고 좋아하던 남자애가 등산하자고 해서 따라갔거나 아빠 등살에 떠밀려 심학산에 올라가 본 게 전부다. 성인이 되고 나서 내 의지로 산에 오른 것은 내 인생 최초였다.
그런 내가 어디서 굴러들어 온 불굴의 의지로 꼭대기에 도착하겠노라 의욕을 다졌고 올라가기에만 전념했다. 그렇게 어쩌다 보니, 삼랑성 정상에 오른다. 사실 오르기 전까지만 해도 어딘지도 몰랐던 산 꼭대기에 오르게 됐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살피고 마스크를 내렸다. 탁 트인 강화도 전체의 풍경을 고스란히 눈에 담아본다. 5분 정도 그렇게 가만히 서서 눈을 감고 청아한 공기를 마셔본다. 시원하다. 정말 좋았다.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됐다고 남편과 아들에게 영상통화를 해서 주변의 풍경을 보여준다. 아들은 하얀 눈이 와서 눈사람을 만들러 나왔다며 자기가 만든 것도 아닌 눈사람을 썽끗거리며 소개한다. 귀여운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났다. 역시, 아들은 좀 떨어져 있으니 매우 사랑스럽다. 하하... 우린 좀 떨어져 있을 필요가 있어.
강화도의 전체적인 모습을 눈에 담으니 참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인다. 다양한 감정선을 그대로 느껴보기로 한다. 가끔은 억지로 감정을 눌러버리거나 넘겨버리지 않을 용기가 필요하다. 그 작은 용기로 한 발짝 감정에서 더 나올 수 있는 거다.
그렇게 어쩌다 닿은 삼랑성 정상에서 좋지 않던 감정은 버리고 새로운 기억으로 뒤덮는다. 새하얗게 눈으로 덮인 강화도처럼. 생각을 정리하고 나니 배가 고파지고 아래를 내려다보니 내려갈 생각에 정신이 혼미하다. 아, 이런 맛에 등산하는구나. 등산이 제법 좋아져 버렸다. 나이 들었나 보다.
내려오는 길은 예상보다 수월했다. 내가 눈을 휘저어놓은 덕에 흙과 돌을 구분할 수 있었고 차근차근 내려오다 보니 어느새 전등사 입구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다 내려오니 작고 소박한 카페가 눈에 담긴다. 살며시 들어가 유자차와 함께 산꼭대기 올라갔던 몸을 살핀다. 따뜻한 유자차가 속에 들어오니 나른한 게 오늘 할 일을 끝낸 느낌이 들었다. 다음에 오면 여기서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유자차를 마시고 마지막으로 전등사를 주변을 둘러본다. 전등사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는 법당이 하나 있다.
[대웅전의 일화]
대웅전 공사를 맡았던 도편수가 절 아래 주막 주모와 사랑에 빠져 번 돈을 모두 가져다주었는데 공사를 마칠 무렵 주모가 도망을 갔고, 이에 도편수는 평생 부처의 말씀을 들으며 죄를 뉘우치기를 바라며 대웅전 처마 네 귀퉁이에 주모의 형상으로 나녀상을 새겨 놓았다.
자세히 보면 정말 내 귀퉁이에 못생긴 주모가 놓여있다. 괜스레 피식하게 된다. 착하게 살자. 대웅전을 뒤로하고 이제 쉬러 가야지.
다시 차를 끌고 숙소로 향한다. 숙소를 얻는 조건은 간단했다. 1. 저렴할 것 2. 뷰가 좋을 것 3. 청결할 것. 300여 개가 되는 리뷰를 다 읽고 하나의 숙소를 고른다. 여러 가지 컬러로 방의 테마가 정해져 있는데 화이트나 그레이가 있다면 고민도 안 했겠지만 그나마 선호하는 파란색 방을 고른다. 알록달록한 것보단 푸른 게 낫지.
숙소의 주인장은 시크했지만 과하지 않아서 좋았다. 방에 들어서니 취향이 아닌 몇 가지 소품만 제외하고는 상당히 깔끔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창밖의 뷰는 내가 지금까지 강화도를 잘못 알고 있었구나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장관을 자랑했다. 따스하게 그을린 노을을 한참 바라본다. 질리지도 않는다. 노을을 뒤로하고 가져온 책을 꺼낸다.
법문집에 입문한 것은 30대를 맞이하고 나서였다. 힘든시기를 보내야 할 때 친오빠의 추천으로 보게 됐는데, 뜻밖의 깨달음과 가르침을 깨우쳤다. 그렇게 법문집은 내가 힘들 때마다 그 어떤 인간의 말보다 큰 힘이 되고 위로가 됐다.
법문집이라고 하면 대부분 불교의 교리를 떠올리겠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인간으로 태어나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우리가 살아가는 순간순간의 소중함을, 자만과 교만이 가져다주는 어리석음을 깨닫게 해 준다. 물론, 하나님을 섬기는 교인들에게는 읽기가 조금 어렵다고는 하더라. 뭐, 난 나만 믿고 살기 때문에 괜찮다.
전등사를 마음에 담고 노을이 지는 모습을 고즈넉이 바라보며 여유롭게 읽는 법문집은 그간의 고생을 한방에 날려주는 선물 같았다. 거기에 즐겨 듣는 잔잔바리 음악까지 곁들이니 그야말로 로맨틱 성공적. 법문집을 완독하고 맥주를 마시며 나의 아저씨 11화를 돌려봤다. 동운이가 절에 있는 겸덕에게 자신을 날려 보낸 장면, 몇 번째 보는지 모른다.
정말이지 완벽한 하루였다. 시간을 선물하는 남편에게 항상 고맙다. 주변을 둘러봐도 나만큼 시간을 선물 받는 경우를 보지 못한 것 같다. 결혼 참 잘했다. 그러니 조금 벅차고 힘들고 지쳐도 에너지 충전해서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아보련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에도 잘 부탁해!